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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재 데려다 바보 만든 경찰대…로스쿨 간다던 후배가 현명했다 [경찰 달나라금토끼가 고발한다]

충남 아산시에 있는 경잘대의 간판석. 배경은 경찰대생 졸업 및 임관식(2014년). 그래픽=차준홍 기자
※여러 경찰관과 관련된 일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경정 A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프롤로그)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주변에서 나보다 공부 잘하는 사람을 세 명 이상 찾기 어려웠다. 전교 석차가 3을 넘어본 적이 없다. 동네 사람들은 삼 형제 키우느라 평생 공장 다니며 고생한 부모님이 내 덕에 곧 호강할 거라며 부러워했다. 서울대 대신 경찰대를 선택한 주요 이유도 학비 없이 졸업만 하면 바로 높은 계급의 경찰관이 되는 매력적인 조건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사법시험 뒷바라지할 집안 형편이 안 되니 학교 다니면서 고시 공부를 하겠노라 다짐했다.

(대학교 4학년) 학교생활은 상상과 달랐다. 차석으로 졸업한 고교 졸업식엔 참석도 못 하고 1월부터 교육을 받았다. 구타를 동반한 악랄한 훈련을 견뎌냈다. 기동복 입고 훈련받을 때나, 경찰 근무복 입고 수업 들을 때나 "너희는 미래 엘리트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말 외에 다른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전혀 없다. 빡빡한 일과와 훈련으로 가득한 일상 속에서 고시 공부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수재 모아 바보 만드는 학교"라고 동기들끼리 자조하며 4년을 보냈다. 그나마 전교 1등이던 친구가 IMF 외환위기 탓에 취업을 못 하고 고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취업 고민할 필요가 없어 난 참 다행이구나, 싶었다.

(경위 3년 차) 대통령이 임석하는 성대한 졸업식 후 경찰관이 됐다. 기대가 컸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또래 전경대원들과 구조조정에 반발하는 노조 시위 현장에 출동했다. 주먹만 한 차량용 너트가 날아드는 공장 앞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밤낮없이 대기하던 어느 날, 죽창과 각목을 들고 달려드는 노조원들의 폭행으로 동료 대원 몇 명이 피를 흘리자 모두 이성을 잃었다. 저항하는 노조원들을 체포해 경찰서로 보낸 후 녹초가 되어 부대로 돌아왔다. 다음 날부터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을 비난하는 뉴스가 줄을 이었다. 동료들의 피와 노력, 그리고 노조원 아닌 시위꾼들의 선동을 직접 목격한 경찰관으로서 분노가 치밀었다.
지난 2019년 5월 민주노총 금속노조 시위 현장에서 노조원들에게 끌려가는 경찰관들. 중앙포토
(경위 5년 차) 그렇게 소대장을 마치고 지방의 한 경찰서 수사과에서 '의무 복무'를 했다. 수사관에게 뇌물 주는 관행이 아직 남아있던 시절이었지만 젊은 경찰 간부로서 그런 악습을 따를 수는 없었다. 상사들에게 바칠 명절 휴가비 갹출에 동참하지 않는 나를 동료들은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나는 선을 지켰다. 고시 공부하듯 연구해가며 사건을 처리했다. 하지만, 검찰이 한 번씩 이해할 수 없는 재수사 지휘를 할 때면 혼란스러웠다. 고소인과 피고소인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해 내린 현장 수사관의 결론을 책상머리에 앉아 서류로만 보는 검사가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나. 검찰 지휘를 받는 수사 제도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같은 고민을 하는 선배들과 모임을 하면서 그 의문은 확신이 됐다. 이런 부조리에 대항해 정의로운 경찰을 세우는 게 경찰 발전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위 7년 차) 수사권 연구 모임에서 알게 된 선배의 추천 덕분에 경찰청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동료들의 놀라움 섞인 눈빛과 축하를 한몸에 받으며 서울로 상경했다. 이제 능력에 걸맞은 일을 하면서 경찰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출근 첫날부터 수많은 일이 떨어졌고, 매일같이 계장님과 과장님에게 욕설 섞인 꾸중을 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본청에는 경찰대 출신이라고 뒤에서 시기하고 험담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오히려 바로 옆자리 경위는 자신은 3년째 본청에 있어도 나만큼 일을 못 한다며 부러워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에 매달렸다. 용인 언저리 신혼집은 너무 멀어서 아내와 두 돌이 갓 지난 아들 얼굴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그렇게 2년을 버틴 후 승진을 생각할 때다 싶어 새로 과장으로 온 선배에게 '심사 승진'을 준비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하지만 선배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경찰대 나온 젊은 친구가 시험으로 승진해야지"라고 했다. 결국 승진에 실패했다. 그리고 항상 나를 칭찬하던 옆자리 경위는 2년 동안 내가 쌓은 공적을 간판 삼아 그해 승진 심사를 통과했다.

(경감 4년 차) 경찰청에 새로 들어온 2년 후배가 내 몫의 일을 다 해준 덕분에 다음 해 경감 승진 시험에 통과했다. 잠시 고향에서 계장님 소리 들으며 근무하던 중 경찰청장 직속 혁신단장으로부터 같이 일하자는 연락을 받고 본청으로 돌아갔다. 혁신단은 새 청장이 강조하는 성과주의 도입과 부패 근절을 위한 강제 순환 근무 도입을 추진했다. 공문에 찍힌 기안자인 내 이름이 전국적으로 조리돌림 당하는 수모를 겪은 끝에 결국 성과평가와 순환 근무는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었다. 본청 전입자 공모제 역시 내 작품이었다. 원래 옆자리 직원의 업무였지만 성과가 미미해 결국 나에게 돌아왔다 이런 성과 덕에 소속 부서장이던 혁신단장은 경무관으로 승진해 지방으로 내려갔다. 반면 혁신단은 오히려 규모가 줄어 나는 자리를 옮겨야 했다. ‘본청 전입자 출신별 안배 방침’ 탓에 본청에 못 남고 서울경찰청으로 밀려났다.
(경감 7년 차) 이듬해 경찰청장이 바뀌면서 출신별 안배가 사라져 본청 진입에 성공했다. 그런데 요즘 후배들은 업무 강도가 센 본청에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고시니 뭐니 다른 생각만 한다는데, 가뜩이나 경찰대에 대한 안 좋은 여론을 더 나쁘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표 내고 로펌이나 기업에 취직하는 후배들이 늘면서 '먹튀' 경찰대 출신들을 비난하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지난해 들어온 경위 후배 하나도 올해 새로 생긴 로스쿨에 입학한다면서 자원해서 경찰서로 나가버렸다. 퇴직 후 로펌에 다니는 동기에게 들어보니, 변호사도 똑같은 월급쟁이 생활일 뿐이라는 데도 이렇게 다들 딴생각을 한다.


(경정 5년 차) 우여곡절 끝에 경정으로 승진하고 슬슬 총경을 바라보는 연차가 됐다. 총경 승진이 상대적으로 쉬운 본청 계장으로 가려고 수십 번 지원했다. 본청 근무 시절 얼굴을 익힌 많은 면접관이 "아, 혁신단 그 친구!" 하면서 면접장에서 반겨주었지만 결과는 번번이 낙방. 겨우 서울의 한 경찰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지만, 2013년 이후 경정 승진자가 대폭 늘어 총경 승진은 하늘의 별 따기고 이제는 경정 계급 달고 서울에서 남아있는 것조차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성과 평가 제도 옆에 내 이름은 남아있지 않겠나 하는 자조 섞인 웃음이 돈다.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며 전국경찰서장회의를 주도했다가 대기발령 처분을 받은 류삼영 총경. 중앙포토
(에필로그) 코로나 19에 걸려 원치 않는 휴식을 1주일 갖게 됐다. 7년 전 경정 승진하고 지방에서 근무할 때 여름 휴가 간 게 가족과 긴 시간을 같이 보낸 마지막이었으니, 가족들도 지금 상황이 어색할 거다. 사춘기가 된 아들과 딸, 그리고 아내와는 어차피 평소 대화를 하지 않으니 다른 방에 갇혀 하릴없이 뉴스만 보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행안부 경찰국 설치를 비판하며 전국 총경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총경을 보며 성과주의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다 해임된 채수창 전 총경이 떠올랐다.


경찰의 정치적 중립화, 수사권 조정 등 경찰의 고비마다 경찰대 출신들의 헌신 덕분에 경찰 전체의 행정 수준이 높아졌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남은 건? 직원들 괴롭혀 업무 성과를 내야 겨우 노려볼 수 있는 총경 승진에 실패하면 애들 대학 졸업도 전에 직장을 잃는 상황, 실제론 한 번도 경찰을 장악한 적이 없었지만 세간엔 경찰을 장악한 권력집단이라고 알려진 탓에 후배들은 앞으로 학비도 내고, 군대도 다녀와야 하는데, 이마저도 불공정하다면서 아예 경찰대를 폐지하자고들 한다. 내가 고3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경찰대를 다시 선택할까? 아닐 거 같다. 나라를 위해 헌신할 준비가 돼 있는 유능한 학생을 뽑아놓고는 승진만 바라보는 바보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문득 로스쿨 준비한다던 경찰대 출신 후배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그가 현명했다.



달나라금토끼(c_projec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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