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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의 코멘터리] 영국여왕의 ‘통치않고 군림하는 법’


엘리자베스 여왕 운구행력이 12일 장례식장인 성당으로 가기위해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시내를 통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1.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추모열기가 상당합니다.
11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에서 장례일정이 시작됐습니다. 윈스턴 처칠 국장 이후 57년만에 유해가 공개되면서 추모객들이 몰려들었습니다. 19일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장례절차가 마감될 예정입니다.


2. 추모열기의 근본 배경은 여왕의 헌신에 대한 존중일 겁니다.

영국 입헌군주제에서 왕의 역할을 규정하는 한 마디는 ‘군림(reign)하되 통치(rule)하지 않는다’입니다.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전통과 관습이 그렇습니다. 국왕은 존재하지만 현실 정치에는 개입하지 못한다..입니다.


3. 그래서 국왕의 역할은 매우 상징적이고 제한적입니다.

상징적인 건..명목상 국왕은 영국의 주인이자 주권이자 대표란 말입니다. 그런데 실제 할 수 있는 것은 ‘총리의 상의를 받고 격려(encourage) 하거나 경고(warn)’하는 겁니다. 총리는 격려와 경고에 구애받지 않으며, 그 내용은 외부로 공개되지도 않습니다.


4.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신의 역할을 일찌감치 정확히 인식했습니다.

취임 5년만인 1957년 크리스마스 연설에서 여왕은 선언했습니다.
‘나는 사법이나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대신 한가지는 할 수 있다. 여러분에게 내 마음을 줄 수 있다. ( I can give you my heart)’


5. 마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여왕은 70년간 품위있고 신중하게 애국심ㆍ자긍심을 전파했습니다.

지난 70년은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에서 퇴장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영연방(Commonwealth)이란 이름의 ‘56개국 연합체’를 이끌며 영향력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영국이라는 연합왕국(United Kingdom)을 구성하는 4개국(잉글랜드ㆍ스코틀랜드ㆍ북아일랜드ㆍ웨일즈)의 분열을 막는데 기여했습니다.


6. 여왕이 이런 성과를 극히 최소한의 행위로 거둔 점도 평가받아야 합니다.

여왕은 2012년 북아일랜드를 방문해 독립을 주장해온 테러조직(IRA) 두목 마틴 맥기네스와 악수했습니다. 북아일랜드 평화협상에 힘을 더했습니다.

여왕은 2014년 스코틀랜드의 독립찬반 주민투표 하루전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래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한마디 했습니다. 여왕 치세 70년중 가장 정치적인 발언으로 논란이 됐습니다. 독립은 부결됐습니다.


7. 그 과정에서 많은 위기도 있었습니다.

가장 큰 위기는 1997년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교통사고였습니다. 다이애나는 BBC 인터뷰에서 불륜을 폭로하고 왕실을 탈출했습니다. 여왕은 조의를 표하지 않았고 왕궁에 조기를 달지 못하게 했습니다.
다이애나를 동정하는 여론이 왕실폐지론으로 들끓었습니다. 여왕은 5일만에 버킹엄궁에 조기를 달고 운구차에 목례했습니다. ‘다이애나 추모열기의 의미를 새기겠다’는 조의는 여왕의 거의 유일한 사과발언입니다.

8. 여왕은 갔지만 왕실의 역할은 남았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의 브렉시트 이후 다시 독립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아직도 상당한 다이애나 추모열, 어머니처럼 왕실을 탈출한 헨리 왕자에 대한 동정심은..왕실의 존재이유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9. 찰스가 왕위에 올랐습니다만..우려가 많습니다.
어머니 같은 헌신과 배려가 없어 보입니다. 10일 즉위식에서 서명을 하려다 책상위 만년필통을 치우라고 수행원에서 인상 쓰는 모습이 벌써 실망스럽습니다. 여왕이 최후를 스코틀랜드에서 마감하고, 장례식을 에딘버러에서 시작한 깊은 뜻을 모르는듯 합니다.
〈칼럼니스트〉
2022.09.13.


오병상(oh.byung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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