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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추석 밥상에 기절하다

서승욱 정치팀장
① 메뉴를 결정하면 몸의 긴장이 풀린다. 웨이터는 손님의 그 뒷모습만 보고도 ‘메뉴를 결정했구나’라고 알아채야 한다. ② 화장실 청소 때는 변기를 쳐다보지만 말고 변기에 직접 앉아보라. 손님의 시각에서 서비스를 궁리해야 한다. ③ 도어맨은 도착한 택시의 미터기부터 체크하라. 공항에서 왔는지, 주변 전철역에서 왔는지를 상상해야 적절한 인사말을 건넬 수 있다. ④ 손님의 골반과 평행이 되도록 바른 자세로 마주하라. 몇 해 전 칼럼에서 소개했던 일본 최고급 호텔 오쿠라의 종업원 교육 매뉴얼이다.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일본 서비스 업계의 접객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고객을 왕으로 여기는 일본식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성의가 담긴 환대)’는 오랜 세월 세계인을 감동시키며 서비스 강국 일본을 떠받쳐왔다. 한국의 접객 문화도 일본을 맹렬하게 추격했지만 업계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진단한다. 서비스를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손님의 만족도보다 일하는 자신의 만족이 더 중요한 공급자 중심 사고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여, 무반성 ‘윤핵관 비대위’ 급조
야, 기-승-전-김건희 특검 폭주
100% 공급자 취향의 밥상 메뉴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만났다. 이 대표의 취임 인사였다. 두 사람은 중앙대 법대 선후배 사이다. 김성룡 기자
연휴 말미에 서비스 업계의 접객 문화까지 소환한 건 수요자 대신 100% 공급자의 취향을 강요당한 추석 밥상의 불쾌감 때문이다. 추석 연휴 기간 내내 울며 겨자 먹기로 마주한 밥상은 국민 여론과 무관하게 정치권이 멋대로 차린 메뉴였다.

먼저 여당이 준비한 ‘급조 신장개업 쇼’가 그랬다. 이준석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 인용이란 강펀치를 맞은 여당이 “무조건 추석 전 배달하겠다”며 밀어붙인 메뉴였다. 맷집 하나로 정계를 평정한 권성동 원내대표가 총대를 메고, 당 전체가 미션 수행을 위해 페달을 밟았다. 체리 따봉의 흑역사를 조속히 정리하고 인생 새 출발을 추석 전에 선포하고 싶은 다급한 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돌고 돌아 당도한 결말은 ‘윤핵관 비대위’였다. 아니, 이준석식 표현을 빌리면 ‘윤핵관 호소인 비대위’였다.

새 비대위원장과 이 전 대표가 벌였던 수준 낮은 논쟁이 아직도 선명한데, 비대위의 시간표도 내용도 모두 공급자 마음대로였다. 게다가 이회창·이명박·박근혜 시대엔 개혁과 쇄신의 상징이었던 당내 초·재선들이 정권의 결사대처럼 밥상 차리기를 진두지휘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집권 4개월여 만에 민심의 철퇴를 맞은 비참한 현실 진단과 진지한 반성은 밑반찬으로도 밥상에 오르지 못했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차린 밥상도 최악이었다. 집단 최면을 방불케 하는 ‘기-승-전-김건희’ 모드 속에서 연휴 시작 직전 소속 의원 169명 전원 명의로 김건희 특검법이 발의됐다. “초강수 극약 처방이자 핵무기다. 함부로 핵 버튼을 누르면 안 된다”는 당 일각의 우려도 무력화됐다. 철없는 강경파 의원들의 불장난 수준이던 특검법 논의를 당 전체의 미션으로 끌어올린 이는 추석을 앞두고 검·경 수사에 몰렸던 이재명 대표였다. ‘추석 밥상에 이재명·김혜경만 올릴 수 없다’는 비장한 분위기가 느닷없이 급조됐다. 결과적으로 이 대표의 생존 투쟁을 위해 국민 전체는 김 여사가 메인 요리로 등장하는 물귀신 메뉴를 추석 밥상으로 받았다. “소중한 추석 밥상을 짜증 나게 하는 특검법 추진에 반대한다”는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의 말은 중도층의 정서를 대변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용산 대통령실이 준비한 메뉴도 실망스럽다.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스캔들에 용산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선제적 사과나 설명은커녕 사후 조치도 전혀 없었고, 이는 민주당이 추석 밥상을 온통 김 여사 메뉴로 도배질하는 빌미가 됐다. 김 여사 의혹에 대한 검·경의 수사를 공정하다고 여기는 국민도 많지 않다.

명절은 국민이 원하는 메뉴를 놓고 경쟁하는 무대가 돼야 한다. 일본 고급 호텔의 접객 매뉴얼처럼 뒷모습만으로도 여론을 알아채고, 국민의 ‘변기’에 앉아 고충을 탐색하고, 국민의 ‘골반’에 키를 맞춰 국민이 바라는 대박 메뉴를 궁리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기절할 만큼 정반대였다. 국민의힘이 ‘반 이준석 비대위’ 속도전보다 포용과 반성에서 해법을 찾았다면, 이 대표가 김건희 특검을 외치기 전에 검찰 소환에 당당하게 응하는 반전을 연출했다면, 대통령실이 김 여사 의혹에 귀를 막는 대신 진정성을 갖고 설명했다면 국민은 그들이 차린 감동의 밥상에 박수를 쳤을 것이다. 정치 소비자의 취향이 철저하게 무시된 관객 모독적인 밥상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현실과 반대로 가는 쪽이 이긴다.



서승욱(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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