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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피난 숙박

김현예 도쿄 특파원
“역시 일본인은 된장국(미소시루)이지.” 지난 6일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사세보(佐世保)시의 한 호텔. 따뜻한 된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하던 80대 어르신이 혼잣말을 한다. 조용히 식사하던 그는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 두 분에게 “간밤에 잘 잤냐” 인사를 건넸다. 식사를 어느 정도 마쳤는지, 어르신들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 집 아들은 도쿄에서 일하냐”부터 “며느리가 참 예쁘고 좋더라”는 흔한 대화가 오갔다. 그러고 보니, 이 호텔, 뭔가 달라 보인다. 옆자리도, 앞자리도, 창가 자리에도 백발 어르신 20여 명이 앉아 식사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이들은 이곳에서 아침을 드시고 있는 것일까.

단체 여행객인가 싶기도 했지만, 사정은 전혀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은 집을 무너뜨릴 정도의 위력을 가진 11호 태풍 ‘힌남노’가 나가사키를 훑고 넘어간 바로 그날이었다. 퇴실하며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의 말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큰 태풍이 나가사키에 오면 어르신들이 하룻밤 숙박을 하러 많이들 찾아옵니다. 이 때문에 시내 호텔에 빈방이 없을 정도가 되기도 해요.” 퇴실 신청을 하는 40대 여성 곁에는 단출한 손가방 하나를 든 80대 여성이 서 있었다. 사세보시에서 떨어진 곳에 사는 딸은 태풍에 홀로 지낼 엄마가 걱정돼 호텔에서 하루를 보냈다고 말했다.

태풍 힌남노를 피해 홀로 사는 다나카 할머니가 하룻밤을 호텔에서 피난 숙박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비가 그친 아침. 호텔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다나카 치유키(88) 할머니를 만났다. 사세보에 홀로 산다고 했다. “바깥양반이 있을 때는 태풍이 와도 걱정이 없었는데, 돌아가신 뒤로는 혼자 살고 있어서요. 태풍 피해가 생기면 혼자서 어떻게 안 되니까, 무섭기도 하고 해서 언제나 태풍이 오면 이렇게 하룻밤을 묵어요.” 택시가 오자 다나카 할머니는 “건강하게 지내라”는 덕담을 남기며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태풍 취재처에서 만난 일본은 그간 막연히 알던 모습과는 달랐다. 지진과 화산, 태풍까지 재해 우려가 커 대비를 잘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재난 대비는 그보다 더 깊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일상에 녹아든 모습이었다.

일본 지방정부는 일반 주민 외에 ‘고령자’ 등을 대상으로 별도 피난 지시 경보를 보냈다. 강풍에 넘어져 다칠 위험이 높아서다. 이 때문에 어르신들은 피난 지시가 내리기도 전에 피난 숙박을 하거나, 대피소로 이동했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아직 복구 작업이 한창인데, 태풍 소식이 또 들린다. 지나쳐도, 호들갑이라도 괜찮으니 생명을 지키는 촘촘한 재난 방비책을 기대한다.



김현예(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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