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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뜨자마자 공항 폭격"…'모가디슈' 뺨치는 대사의 세계


"밤새 총소리가 들리고 우방국 헬기가 공항을 맴돌았습니다. 영화에서 보던 전쟁 그 자체였습니다."

최태호 주 아프가니스탄 대사는 지난해 8월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함락 당시가 아직도 생생하다. 최 대사는 아직도 카불로 돌아가지 못한 채 바로 인근 국가인 카타르에 차린 임시 사무실에 머무르고 있다.

'대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현실이다. 대사의 정식 직함은 '특명 전권 대사'다. 국가원수로부터 임명돼 한 나라를 대표해 외국과의 교섭 전권을 위임받은 사람을 뜻한다. 외교적 교섭교민 보호라는 두 가지 주요 임무를 수행한다. 외교부 본부 근무가 비교적 예상 가능한 범위 안이고 신변 안정이 보장된 데 비해, 대사를 비롯한 공관원들의 근무 환경은 주재국 사정에 따라 천지 차이다.

지난해 8월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하자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필사적인 탈출 행렬이 이어졌다. 사진은 카불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탑승구와 연결되는 계단에 수십명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모습. 트위터.
절반 이상 공관이 5인 이하
12일 외교부에 따르면 전 세계 167개 외교 공관 중 대사관은 122곳, 총영사관은 45곳이 있다. 총영사는 대사와 달리 외교 교섭권이 없이 교민 보호에만 주력한다. 재외 공관은 생활 여건에 따라 가급(미국, 일본 등), 나급(중국, 일부 유럽, 동남아 등), 다급(러시아, 남미 등), 라급(이라크, 아프간, 아프리카, 중동 일부 국가 등) 순으로 나뉜다.

흔히 공관 생활이라고 하면 전용 요리사가 딸린 으리으리한 관저에서 연회를 주최하는 화려한 모습을 떠올리지만, 막상 공관 근무를 거친 외교관들은 "현실은 딴판"이라고 입을 모은다. 외교부에 따르면 12일 현재 공관원이 5명 이하인 소규모 공관이 전체 공관의 절반 이상인 53%다. 대사와 참사관 혹은 서기관급의 실무 담당자, 행정 담당 직원까지 단 세 명만으로 구성된 '초 미니 공관'도 있다.

김완중 외교부 재외동포영사실장은 "2010년 중남미 국가에서 근무할 당시 치안이 너무 안 좋아 가족들과 '우린 집에 돌아올 때까지 돌아온 게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며 "차 유리창을 깨고 강도가 들어오는 경우도 많아 운전을 할 때는 앞, 뒤, 옆을 다 보면서 해야 했다"고 말했다. 또 "2012년 싱가포르 근무 당시엔 소말리아 해적을 상대로 선사를 지원해 교섭하느라 4개월 넘게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정부종합청사 별관) 2층에는 임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외교관 명단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사진은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5월 취임식을 마친 뒤 추모 묵념을 하기 전 동판을 살펴보는 모습. 연합뉴스.
내전ㆍ자연재해ㆍ역병 버텨야
2018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의 초대 대사로 부임했던 임상우 현 외교부 북미국장은 "초기에는 예산이 없어서 필요한 인력을 채용하지 못해 바쁠 때는 대사도 대사관 대표 전화에 응대하고, 관저 행사에 오는 손님을 위해 요리하고, 출장단을 위한 호텔도 예약하는 등 온갖 일을 챙겨야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개발협력 사업 발굴을 위해 인디애나 존스 영화에 나올 법한 비포장 흙탕 길을 며칠간 가야 하는 등 여건은 쉽지 않았지만 마다가스카르 측에서 한국 대사의 목소리에 다른 어떤 국가보다 관심을 갖고 귀기울여 주거나 코로나19 와중 우리 교민 전세기 귀환 작전이 극적으로 성공했을 때 등 고생스러운 만큼 보람찬 순간도 많았다"고 말했다.


임 국장은 2008년 내전이 격화하던 콩고민주공화국에도 대사관 창설 멤버로 투입됐다. 그는 "다른 유럽 국가는 철수하는 상황에서 공관 창설을 위해 콩고에 부임했다"며 "우여곡절 끝에 확보한 대사관 건물 문에 총알이 박혀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또 "퇴근하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집에서 말라리아 모기에 물리지 않기 위해 윙윙거리는 모기를 잡는게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임 국장의 사례 외에도 외교부에는 "내전 중이라 대사관까지 철수했던 리비아에 우리 국민 피랍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됐다가 상황이 악화돼 급히 탈출했는데 비행기가 뜨자마자 공항이 폭격됐다", "우리 공관원들이 묵고 있는 숙소 바로 옆에 포탄이 날아들었고 방탄차 한 대를 돌아가며 타며 이동했다" 등 영화 '모가디슈'를 방불케 하는 사건이 상당수 회자된다.

"동남아 지역 공관에서 근무 중 홍수가 나는 바람에 대사관 건물이 잠겨 배를 타고 집기를 옮겼다", "한밤에 자녀가 맹장이 터졌는데 주변에 병원이 없어 울면서 사방팔방을 돌아다녔다", "급하게 아프리카 공관에 부임하느라 말라리아 예방약과 각종 예방 주사를 한꺼번에 맞아 쓰러질 뻔 했다" 정도의 에피소드는 흔한 수준이다.
지난해 7월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영화 '모가디슈'. 1991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 내전 당시 남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함께 탈출한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 강신성(85) 전 주(駐) 소말리아대사는 지난해 8월 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모가디슈의 이탈리아 대사관 앞에서 북한 외교관들과 함께 죽을 힘을 다해 태극기를 흔들었다. 이념을 초월해서 함께 살아 나가보겠다는 거였다"고 회고했다. 실제 험지 근무 외교관들은 영화에나 나올법한 생사의 기로에 놓이기도 한다. 롯데 엔터테인먼트.
생사 갈림길서 '미라클'도
그러나 주어진 환경이 어려울수록 느끼는 보람은 더 크다.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펼쳐진 '미라클 작전'에 투입됐던 김일응 당시 주아프가니스탄대사관 공사참사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아프간이 탈레반에 함락되면서 생사의 기로에 놓인 한국 정부 조력자(특별 기여자)와 가족 390명을 군 수송기를 이용해 한국으로 데려왔다. 미라클 작전의 성공은 한국 외교의 위상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고 아프간인들을 수용한 충북 진천군에는 찬사가 쏟아졌다.

김 참사관은 "IS의 자살 폭탄 테러 첩보, 탈레반의 위협 등이 있었지만 수백명이 저만 믿고 카불로 와서 기다리는데 한국도 우리 국격에 맞는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분명히 성공 가능성이 있었고 다만 상황이 유동적이어서 현장 조율이 필요했기에 카불로 다시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외교관으로서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복싱 선수들이 시합 중에는 아픈 줄 모른다고 하던데 당시에는 '일이 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정강 외교부 언론담당관은 "대사를 비롯한 전 세계 공관원들은 치안이 불안하고 내전을 겪는 나라에선 신변의 위협을, 환율과 물가 변동성이 큰 국가에선 생활의 어려움을 겪곤 한다"며 "한국이 점점 선진국이 될수록 전 세계 각지에 흩어진 외교관들이 겪는 노고가 최근 들어 상대적으로 더 부각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면서 앞으로 한국 외교관이 세계 각지에서 맡을 역할은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우여곡절 끝에 한국 정부 조력자(이후 '특별 기여자'로 명명)들이 무사히 버스를 타고 카불 공항으로 들어온 직후 김일응 공사참사관이 버스에서 내린 대사관 직원과 부둥켜안는 모습. 한 손에는 휴대전화와 보조배터리를 든 채 현지인과 꼭 끌어안은 사진이 큰 화제가 됐다. 한국으로 온 아프간인들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여론도 조성됐다. 외교부.



박현주(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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