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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 58% 상주약사 없다…어르신 '약물중독' 마약 맞는 셈

여러가지 알약들의 모습
전국 요양병원에는 41만여명의 어르신이 입원해 있고, 요양원에는 23만여명이 입소해 있다. 어르신들은 이번 추석에도 가족의 손을 잡을 수 없다. 대면 면회가 불가능하다. 64만명의 어르신들에게 이번 추석이 우울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시설의 노인들은 평소에도 우울하다. 낯선 환경에다 옆 환자의 신음 소리, TV 소음, 대부분 누워있는 생활 등에 우울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다. 이들의 우울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또 있다. 과도한 약물이다.

전문가들이 요양병원에서 약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약물 안전사고가 빈발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24개 요양병원에 약사가 아예 없고, 시간제 약사만 있는 데가 절반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약사가 아닌 무자격자가 심지어 마약을 조제하고 관리하는 실정이다.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이 지난 6일 대한약사회·한국병원약사회와 공동으로 '요양병원 의약품 관리 강화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 인사말에서 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요양병원의 약물 오류는 환자 안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가혁 인천 은혜요양병원 원장(대한요양병원협회 학술위원장)은 주제 발표에 앞서 토론회 청중에게 "여기 계신 분 중에서 요양병원·요양원에 올 사람 있느냐. 자녀가 모실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모실 것이라고 여겨서 대답을 하지 않는 거냐"며 물었다. 가 원장은 "아마 요양병원에 가긴 싫어도 어쩔 수 없다고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요양병원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를 이렇게 풀어냈다.

가 원장은 약물 오류가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사례를 들어 경고했다. 어느 요양원에서 자신의 병원으로 온 환자의 영상을 보여줬다. 이 환자가 자꾸 옷에 실례를 했다. 요양보호사가 "아이 벌써 몇 번째야"라고 당혹해 했다. 가 원장은 "약이 문제였다. 항히스타민제는 젊은 사람에게 줘도 조는데…. 약을 끊고 사흘 지나자 요양보호사가 필요 없게 됐다"고 말했다.

가 원장은 "약을 뺄수록 어르신은 더 좋아진다. 친척 어르신이 화장실에 가서 수도꼭지 털고 잠그기를 반복하고, 볼일을 보고 나서 뒤처리를 하지 않았다. 약이 주범이었다"며 "지금은 잘 걷고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가 원장은 "2019년 정부가 요양병원의 진료 수가 체계를 개정했는데, 2020년 1월부터 향정신병 약 처방이 늘었다"며 "이런 약을 처방하지 않는 환자는 수가가 가장 낮은 등급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굳이 필요 없지만 4분의 1로 쪼개 약을 주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그는 요양원 촉탁의사의 고민을 소개했다. 그 의사가 한 환자의 딸에게 "어머니가 약을 너무 많이 먹는다. 스물 다섯 가지"라고 지적하자 딸이 "병원 4곳에서 약을 타는데, 다들 뺄 약이 없다고 하네요"라고 답했다.

가 원장은 "일본은 여섯 가지 이상의 약을 쓰는 환자에게서 두 개를 줄이면 의사에게 2만5000원의 인센티브를 준다. 약국이 환자를 설득하면 1만2000원을 준다"며 "약물 복용을 유도하는 (잘못된) 수가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약제 복용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고, 노인 전문가를 양성하자고 제안했다.


환자안전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요양병원 환자안전사고 1위는 낙상, 2위 약물 오류였고, 올해 4~6월에는 약물 오류가 1위를 차지했다.

서울대 약대 이주연 교수는 이날 주제발표에서 한 학회지에 실린 논문을 소개했다. 7개 요양병원 입원 노인 466명의 평균 복용 약물 수는 11개였다. 5개 이상 다약제 복용자가 93%, 10개 이상은 62%를 차지했다.

요양병원에서 약물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이유는 허술한 약사 인력 규정 때문이다. 200병상이 넘으면 1명 이상의 약사를 둔다. 200병상 이하는 약사가 주당 16시간만 근무하면 된다. 200병상 이하가 전체의 58%를 차지한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김미정 약제팀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지난해 전국 1615개 요양병원 중 약사가 아예 없는 데가 24곳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런 병원에서 약사 없이 마약류를 조제하고 관리했다.
지난 7월 서울 마포구 시립서부노인전문요양센터에서 한 어르신이 가족들과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비대면 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한국병원약사회가 올해 전국 23개 요양병원을 조사했더니 200병상 이하 병원 약사는 하루 5시간만 근무했고, 약제 부서에 약사가 0.62명, 비(非) 약사가 1.2명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처방 검토 업무의 11%, 조제 27.5%, 비상 마약류 관리 29.3%, 고농도전해질·인슐린·진정약(중등도) 등의 고위험 약 관리 18.3%를 약사가 아닌 무면허자가 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팀장은 "기본적인 조제, 조제약 검토를 약사가 하는 수행률이 90% 이하여서 조제 오류, 투약 오류의 위험성이 상존한다"며 "약물 부작용 감시가 제대로 안 되고, 환자들이 입원할 때 갖고 들어온 여러가지 약물의 관리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요양병원에서 시간제로 7년 근무한 적이 있는 한 약사는 이날 토론회에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퇴근한 후, 주말에 내가 없는 사이에 무수한 약이 환자에게 갔다"고 폭로했다.

한국병원약사회 이영희 회장은 "현행 법령에는 500~800병상 규모의 요양병원에도 약사가 1명만 근무하면 된다"며 "과연 안전하게 약을 관리하고 사용하는지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김미정 팀장은 "시간제 약사(주당 16시간 근무 약사) 허용 기준을 200병상 이하에서 100병상 이하로 강화하고, 나아가 시간제 약사 제도를 폐지하고 최소 2명의 약사가 되게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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