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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안중근의 담담함, 이재명의 비장함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훈의 소설 『하얼빈』에서 안중근과 동료 우덕순의 대화는 건조하다. 블라디보스토크 술집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토 히로부미를 쏘는 대의명분 따윈 입에 올리지 않는다. 서로 뜻을 확인한 뒤 이틀 뒤 하얼빈행 열차를 탈 뿐이다. 하얼빈에서의 거사 준비도 일상적 업무처리마냥 담담하다. 동선과 역할을 점검하고, 새 옷을 사입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비장하지 않아 더 비장하다. 작가가 "가장 아름답다"고 자평한 대목이다.

'사소한 꼬투리' 넘어서는 의혹들
수사 본격화되자 탄압·전쟁 운운
대선 도전 정치인답지 않은 처신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앞둔 민주당이 사뭇 비장하다. 탄압·보복·전쟁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김대중 납치 사건' 비유까지 등장했다. 마음 같아선 독재 시절 야당의 고초(苦楚)에 빗대고 싶을 터다. 그러나 요샛말로 '오버'다. 이 대표 의혹은 새로운 게 아니다. 검경이 선거를 의식해 미뤄 놨던 건(件)들이다. 담담해서 더 비장한 일이 있듯이, 비장해서 더 남루해지는 일도 있다.

지난해 10월 20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에서 열린 경기도청 국정감사에서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 지사는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 등이 박근혜 정부의 협박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포토]
문제의 발언은 지난해 10월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있었다. "2015년 9월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은 박근혜 정부 때 국토부 협박 때문에 할 수 없이 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막상 국토부는 "용도 변경은 성남시가 알아서 판단하라"는 공문을 보낸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민주당은 '꼬투리 잡기식 정치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 논리라면 이 대표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설사 거짓이라도 해도 사소한 말실수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TV토론회 중 "형을 강제 입원시키려 한 적 없다"는 허위 발언으로 기소됐다가 2020년 대법원 무죄 판결로 생환한 적이 있다. 민주당은 '어게인 2020'을 떠올리는 모양이다.

그러나 TV토론과 국감은 다르다. TV토론에선 예상 밖 질문에 엉겁결 답변이 나올 수 있다. 석연치는 않지만, 대법원 무죄 판결은 그런 정상을 참작했다. 그러나 국감은 사전에 준비하는 자리다.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 대표는 도지사 사퇴까지 미루며 국감에 임했다. 대장동·백현동 등 세간에 떠돌던 여러 의혹을 해명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그 자리에서 문제의 '국토부 협박' 발언이 나왔다. 엉겁결 말실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국회증언감정법상 위증죄 형량은 1년 이상 10년 이하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는 형법상 위증죄보다 무겁다. 국회 증언대의 거짓말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중죄라는 의미일 게다. 국회 위증죄는 증인을 조사한 위원장 명의로 고발돼야 하고, 제삼자 고발을 통한 기소는 불가능하다. 민주당이 장악한 국회 지형이 아니었다면 공직선거법보다 훨씬 더 엄중한 법이 이 대표를 압박했을지 모른다. 사소한 꼬투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대표 말대로 협박이 사실이라도 문제다. 힘 있는 중앙정부가 힘없는 지방정부를 협박했다면 보통 갑질이 아니다. 그야말로 박근혜 정부의 적폐 행태다. 그런 일을 보고도 억강부약(抑强扶弱) 이재명의 정의감이 가만히 있었다면 '완전 실망'이다. 협박받았다는 직원에게 녹취나 서류 확보라도 지시해 분연히 싸웠어야 할 일 아닌가. 그러기는커녕 기다렸다는 듯 자연녹지에서 준주거지로 4단계나 용도를 높여준 이유는 뭘까.

안중근이 대의명분을 거론치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둘이서만 나눈 대의명분은 중얼거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안중근이 자신을 던진 것은 '동양평화론'을 세상에 외칠 기회를 얻기 위해서였다. 이 대표는 각종 의혹을 세상에 당당히 해명할 기회를 거부했다. 대통령직 도전자답지 않다. 이 대표는 검찰 출석 대신 서면진술서를 냈다. 내 귀엔 그저 '개딸'들과 주고받는 중얼거림으로밖엔 들리지 않는다.

사족: 안중근·이재명 비교가 가당하냐는 시선도 있을 것 같다. 변명하자면, 대선 때 한 '맛 칼럼니스트'가 "이재명은 안중근, 윤석열은 이토 히로부미"라는 페이스북 글을 올린 적 있다. 그 황당무계함을 보고 용기를 냈다. 안중근 의사님, 죄송합니다.



이현상(lee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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