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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북극곰보다 위급한 반지하

최현철 사회디렉터
배달 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이 2015년부터 진행해온 배민 신춘문예에는 해마다 음식 관련 기발한 카피가 쏟아진다. 그중에서도 2017년 대상작 ‘치킨은 살 안쪄요, 살은 내가 쪄요’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통념과 실상 사이에서 벌어진 표현의 간극을 참 맛깔나게 짚어냈다.

올 초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라는 기후변화 입문서를 접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래, ‘지구가 아파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지만, 실상 지구는 멀쩡하구나. 45억년 지구 역사로 보면 찰라에 불과한 몇십만년의 상황에 적응한 인간이 기후가 약간 바뀌자 견디기 힘들어진 것일 뿐이다.

기후변화, 지구 아닌 인간의 문제
극한 기후가 평범한 일상 위협
기후적응 기술 발전 서둘러야

전례없는 집중 호우가 발생한 지난달 8일, 서울 서초동 아파트 단지 앞에서 한 남성이 침수된 차량 위로 올라가 몸을 피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그동안 기후변화의 마스코트는 단연 북극곰이었다. 빙하가 녹아 떨어져 나온 작은 얼음 조각 위에서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은 연민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잦아진 가뭄과 산불, 홍수와 태풍은 우리도 북극곰 신세와 비슷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왔다. 사람들은 경유차 대신 전기차를 타고 가죽백 대신 재활용 에코백을 들고선 정부에도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결국 각국 정부들은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탄소 감축안에 동의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부족해 보인다. 북극곰은 너무 멀리 있고, 정부간 탄소감축 협약은 잘 실천되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막막하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산불과 폭우도 시간이 지나면 그치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기후변화가 위기를 넘어 재앙 수준이 됐다고 머리로는 알고있지만,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못한다.

이같은 인지부조화는 어쩌면 지구 온난화, 기후 변화에 대한 이미지 때문인지도 모른다. 위기나 재앙이라는 말에선 공룡과 맘모스를 순삭(순간삭제)시킨 빙하기, 소돔과 고모라의 불기둥, 노아의 방주를 띄운 대홍수가 연상되곤 한다. 종말론적인 미래상에 인간의 무절제에 대한 자연의 보복이라는 선악개념까지 덧칠해지면 개인이든 국가든 무력감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하는 작은 노력은 재앙을 막을 수 있을까. 어쩌면 재앙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앞서 언급한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는 이런 인지부조화와 무기력을 통렬히 깨주는 책이었다. 저자 곽재식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는 카이스트를 최단 기간에 졸업하고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과생인데, 역사·기담·SF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소설을 쓴 괴짜다. 책은 저자 이력에 걸맞게 농도 짙은 과학적 지식과 최근 과학자들이 발표한 학술적 성취도 빠짐없이 담고 있지만, 그걸 쉬운 표현과 재미있는 비유로 전달한다. 무엇보다 저자의 시선이 신선하다. 그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재난과 사고로 희생되는 사람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지, 분노한 지구가 인류를 징벌하는 최후의 순간을 피하기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구름과 바람에 사죄하기 위해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하는 것은 아니다”고 일깨운다.

대책 역시 소박하고 실천적이다. 신재생 에너지와 전기차·수소연료 등 탄소를 줄이기 위한 기술과 노력은 물론 꼭 필요하다. 하지만 내일 당장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들어도 기후변화는 쉽게 멈추지 않는다. 더 심해진 기후변화는 필연적인 미래다. 그러니 당장 둑이 터지지 않을지 점검하고, 넘칠만한 곳에 제방을 쌓고, 반지하 집이 침수될 때를 대비해 경보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른바 ‘기후변화 적응 기술’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너무 평범해 그냥 흘려보낸 경고는 책이 나온 지 딱 반 년 만에 현실이 됐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가던 차가 물에 잠겨 멈추고, 신림동 반지하에선 일가족 3명이 쏟아져 들어온 물에 목숨을 잃었다. 엊그제 한반도를 스쳐간 태풍 힌남노가 쏟아낸 물폭탄에 포항의 하천이 넘쳤고, 바로 옆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빼려던 7명이 숨졌다.

따지고 보면 어느 것 하나 겪어보지 않은 것이 없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일이 좀더 자주, 좀더 강하게 닥칠 것이란 점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실무그룹이 올 상반기 내놓은 전망보고서를 보면, 탄소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적용해도 100년 재현빈도 극한 강수량이 31% 늘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서울의 수방 대비 설계기준은 대부분 30년 예상 빈도인데 지난달 내린 비는 시간당 최대 141㎜로 100년 빈도를 훌쩍 넘었다.

이제 기후변화의 피해는 먼 나라의 일도, 먼 미래의 일도 아니다. 바로 내 옆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수시로 위협하고 있다. 그러니 대책도 먹고 사는 일 만큼이나 중요해졌다. 너무 멀리 보다 자포자기 하지 말고, 당장 시급한 것부터 차근히 해나가야 한다. 명절이 코 앞인데, 멀리 남쪽 바다에선 12호 태풍 무이파가 발생했다.



최현철(choi.hyeon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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