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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버킹엄궁 앞 밤샘 추모인파…"여왕을 구해주소서" 국가 합창

여왕 위독 소식듣고 모이기 시작…"군주제 싫지만 여왕은 좋았다"

[르포] 버킹엄궁 앞 밤샘 추모인파…"여왕을 구해주소서" 국가 합창
여왕 위독 소식듣고 모이기 시작…"군주제 싫지만 여왕은 좋았다"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재위 기간이 70년이었으니 지금 영국인 대부분에겐 태어났을 때부터 엘리자베스 2세는 여왕이었을 것이다.
다른 국왕은 경험해보지 못한 '엘리자베스 2세 세대'인 셈이다.
국왕은 '고정된 상수'처럼 당연히 엘리자베스 2세였던 이들 영국인에게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은 큰 구멍이 생긴 듯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서거를 알리는 긴급 뉴스가 전해진 8일(현지시간) 런던 버킹엄궁 앞은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도 추모하는 인파로 가득했다.
서거 소식은 현지시간으로 저녁 6시 반쯤 발표됐다.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았는데도 버킹엄궁 담과 정문 앞에는 벌써 여왕에게 전하는 조화가 많이 쌓여있었다.
런던 시민들은 꽃을 가져다 두고 기념사진을 찍는가 하면 영상 통화로 친구나 가족에게 버킹엄궁의 모습을 중계했다.

런던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앤디(52)씨는 격식을 차리는 자리에 다녀온 듯 나비 넥타이 차림으로 생각에 잠겨 혼자 서성이고 있었다.
"근처에서 열린 디너 행사에 참석했다가 여왕에게 인사를 하고 싶어서 들렀습니다. 정말 기분이 이상해요. 행사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
이틀 전만 해도 정정한 모습으로 신임 총리를 직접 임명하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터여서 이날 서거 소식은 더 충격적인 듯했다.
그는 "여왕은 사명감이 대단하고 모두에게 존경받았다"며 "군주제는 평생 봐온 것이기도 하고, 독특하게 영국적인 것으로 우리에겐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IT관련 일을 하는 팀(64)씨는 "집이 근처에 있는데 여왕이 떠나는 길에 인사하고 싶어서 아내와 함께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여왕은 늘 침착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늘 책임을 다 했으며 품격이 있었다"며 "세계적으로 그런 지도자를 찾기 어렵다"고 기억했다.
그는 "새로 즉위한 찰스 3세 국왕은 그런 여왕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으니 잘 하길 기대하고 있어서 슬픔과 희망이 섞인 감정"이라고 말했다.


런던 외곽에서 7개월된 아기와 온 티나(39)씨는 "어릴 때 여왕 행사 때마다 부모님과 같이 왔기 때문에 오늘 같은 날이 오면 꼭 데려오려고 했다"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온 20대 제임스씨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여왕의 건강이 염려된다는 뉴스를 보고 울었다"며 "지난 10년간 매년 여왕 생일 때마다 발코니 인사를 보러 왔는데 이제 못보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잉글랜드 북부 출신으로 박사 학위 중이라는 그는 "군주제는 반대하지만 여왕은 좋아했다"고 기억했다.

1시간 전쯤 버킹엄궁 앞에서 제임스씨를 처음 만나 어울리게 됐다는 마크씨는 "할아버지에게서 1953년 여왕 대관식 때 구경한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당시 20대였던 젊은 여왕이 신선했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며 "저녁에 소식을 듣고 나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획도 없이 버킹엄궁으로 발을 옮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로 즉위한 찰스 3세 국왕은 문화 다양성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어서 기회를 한 번 줄 만하다"며 "영국이 어려운 시기에 동시에 새로운 국왕과 새로운 총리가 등장했지만 잘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버킹엄궁 앞 이곳저곳에선 영국 국가 '하느님 여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Queen) 합창 소리가 들렸다. 영국 국기 유니언잭을 들고 나온 시민도 많았다.
피카딜리 서커스 등 런던 도심 곳곳엔 여왕의 사진과 함께 '엘리자베스2세 여왕 폐하. 1926~2022'라는 문구가 적힌 입간판이 세워졌다.

이곳에 왔다고 해서 여왕을 모두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국가 합창에 질세라 음악을 크게 튼 대학생 로라(22)씨에게 이유를 묻자 "여왕도, 군주제도 싫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치학이 전공인 그는 "여왕이 훌륭하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글쎄, 더 잘할 수 있었다"며 "특히 앤드루 왕자의 (성폭행 혐의) 사건을 무마시킨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찰스 3세에 관해 묻자 옆에 있던 그의 친구는 "윌리엄 왕세손이 아니라 찰스 왕세자가 왕이 된 것이냐"라며 모르는 척하며 묻기도 했다.

이날 버킹엄궁으로 가는 길에 우버 차량 기사는 "지금 버킹엄궁을 간다니 기자일 것으로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안간다"고 했지만 정작 현장엔 '평범한' 영국인이 많이 모여 있었다.
35년 전 영국의 대학에 진학하면서 파키스탄에서 이주해왔다는 그는 "여왕은 잘 했고, 서거는 슬픈 일이지만 누구나 죽기 마련이다"라며 "이미 활동을 많이 줄이고 찰스 3세가 대신 해왔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mercie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최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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