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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무의 그림세상] 아트페어, 그 빛과 그림자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미술 작품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바로 작품이 팔린 그 순간이다.” 아트 딜러의 입장에서 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면 누구나 공감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화랑에서 어떤 그림을 보고 있는데 직원이 다가와 이 그림을 떼어 내면서 “이 작품 팔렸습니다”라고 한다면, 한편 당황하면서도 작품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18세기 프랑스 화가 앙트완 와토가 그린 ‘제르셍의 그림가게’는 바로 이 순간을 담고 있다. 화랑 직원 두 명이 상자 안에 그림을 넣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이 그림에 쏠려 있다. 화랑 안에는 여러 그림이 빼곡히 벽을 채우고 있지만 단연코 우리의 관심은 팔려나가는 그림이다.

프리즈·키아프 인기 폭발
미술장터의 활기 보여줘
500년 전 유럽에서 시작
돈이 미술의 전부 아니야

18세기 프랑스 화가 앙트완 와토의 ‘제르셍의 그림가게’(부분·1720).
그림 오른쪽을 보면 멋진 옷을 입은 젊은 커플이 화랑을 들어오고 있는데 이들도 고개를 돌리면서 작품을 싸는 장면을 보고 있다. 이들은 좋은 작품을 놓쳤다는 아쉬움과 함께 그림 구매욕을 한층 더 느꼈을 수 있다. 한편 평범한 옷을 걸친 왼쪽의 행인은 그림이 실제로 거래되는 순간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다.

지난 주말 한국 미술시장을 뜨겁게 달군 프리즈 아트페어나 키아프에 가봤다면 이 그림이 담고 있는 상황을 생생하게 목격했을 것이다. 영국에 본사를 둔 프리즈 아트페어에는 110개의 국제적 화랑들이 참여했고, 한국화랑협회가 주관하는 키아프에는 164개의 국내외 대표 화랑이 참여했다. 두 아트페어가 동시에 열리면서 미술계가 크게 들썩였다.

‘아트페어(art fair)’는 문자 그대로 ‘미술장터’이다. 실제로 장터처럼 시끌벅적해야 제 맛인데, 이런 어수선한 장터에서는 제대로 된 미술 감상이 불가능하다고 불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활력이 넘치는 아트페어가 좋다. 수백여 개 화랑이 한 곳에 모여 만들어내는 시골 장날같이 떠들썩한 활기는 착 가라앉은 미술관과 잘 대비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트페어의 한 모퉁이를 거닐다 보면 수백 년 전의 중세 미술시장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환영에 잠길 수도 있다.

16세기 플랑드르 화가 브뤼헐의 ‘화가와 구매자’. 1565년경.
사실 오늘날 유행하는 아트페어에서 현대 미술시장의 원류를 찾아낼 수 있다. 미술시장의 근대적 원조는 중세 아트페어로 볼 수 있는데, 역사상 최초의 미술장터가 500년 전 플랑드르 지역에서 열렸다. 플랑드르는 오늘날 벨기에 북부 지역에 해당하는데, 이 지역의 브뤼헤라는 도시에서 10여 개 미술 상점이 모여 한시적으로 미술장터를 연 기록이 전해 온다. 그런데 인근에 있는 안트베르펜에 가서 최대 86개까지 늘어난다. 500여년 전에 이미 미술품 가게가 이렇게 많이 한 곳에 몰렸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당시 대가들의 이름을 이 장터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얀 반 에이크, 로히어르 반 데르 베이던, 브뤼헐, 아르트센 같은 대가들이 명단에 보이지 않는다. 진정한 대가들은 이러한 미술시장에 기웃거리지 않았던 것일까. 이미 다른 곳에서 잘 팔렸기 때문에 굳이 장터에 나가 작품을 팔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이들은 시장 논리에 발을 담그는 것을 경계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브뤼헐은 아트딜러 같은 구매자를 불편하게 하는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화가와 구매자’를 보면 나이가 지긋한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그의 등 뒤에서 구매자로 보이는 사람이 안경을 쓴 채 그림을 뚫어지라 보고 있다. 이 구매자는 그림이 마음에 들었던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을 꺼내려는 듯하다. 여기서 화가의 표정이 인상적인데 삐쭉 내민 입이 자기 작품을 돈으로만 생각하는 세태에 짜증이 난 듯하다. 물론 그림 속 화가는 브뤼헐 자신일 것이다. 아트페어가 등장하면서 미술시장이 막 열리던 시점에 그려졌다는 게 흥미롭다.

당시 대가들의 작품이 아트페어에서 거래되지 않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이 순간 아트페어에서 우리 눈을 사로잡은 수많은 작품 중에 먼 미래까지 기억할만한 작품은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아트페어에 초대받지 못한 작가들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미술의 역사에서 주목받는 대가들은 시장에 순응하기보다 때로는 시장과 파열음을 내면서 자본의 논리에 변화를 주었기 때문이다. 미술 속엔 인간적 도전과 고뇌가 담겨 있기에 미술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앞으로도 결코 쉽고 단순한 수치로 재단되지 않을 것이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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