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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해법 돌고돌아…한·일 기업이 낸 돈으로 배상 가닥

지난 두 달간의 민관협의회 회의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으로 대위변제 방안에 무게가 실렸다. 다만 대위변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재원 마련 방식과 지급 대상 등 '각론'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사진은 2018년 11월 김성주 할머니 등 일제 강제징용 근로정신대 피해자가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직후 소감을 밝히는 기자회견에 나선 모습. 뉴스1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은 돌고 돌아 대위변제로 기우는 모양새다. 지난 2개월간 총 4차례의 회의를 개최했던 민관협의회의 의견 수렴 절차가 종료되며 이제 정부의 결단만 남았다. 정부는 외교부를 중심으로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한 최종안을 마련한 뒤 이르면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첫 과제로 강제징용 문제를 꺼내 들 때부터 결론은 대위변제가 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우회하는 ‘외교적 해법’으로는 제3자가 대신 배상하는 대위변제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2019년 11월 강제징용 피해자 및 관련 시민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제안한 대위변제 방안을 비판했다. 뉴스1
대위변제는 2019년 당시 문희상 국회의장의 제안으로 법안까지 발의됐으나 피해자 측과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을 넘지 못한 채 끝내 무산된 ‘실패한 해법’에 해당한다. 이후 피해자 측에서 일본 기업의 배상을 강제하기 위해 요청한 현금화 명령까지 임박했단 점에서 상황은 3년 전보다 한층 첨예하고 복잡해졌다. 재원 마련 방식과 변제 시기·방법, 일본 측과의 후속 협상 등 각 단계에서 예상되는 핵심 쟁점을 짚어봤다.


대위변제 선결 조건은 ‘재원 마련’
재원 마련은 대위변제의 선결 조건이다. 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대신 변제한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피해자 측이 대위변제를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으로 수용하기 위해선 돈의 성격도 중요하다. 지난 5일 민관협의회 4차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정부 예산을 활용한 대위변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뜻을 모은 이유다.


재원 충당의 주체는 크게 정부와 기업, 민간으로 나뉜다. 2019년 문희상안에는 한·일 기업의 출연금과 국민 성금, 정부 예산까지 투입되는 포괄적 형태의 재원 마련 계획이 담겼다. 다만 국민 성금의 경우 모금액을 예상하기 어렵고, 정부 예산의 경우 민관협의회에서 부정적 의견이 표출된 만큼 한·일 기업의 출연금이 대위변제를 위한 재원의 주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6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신정부 새로운 한일관계를 위한 양국 협력방안' 세미나에서 한일 기업 출연을 바탕으로 한 대위변제를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으로 재차 제안했다. 뉴스1
문희상 전 의장 역시 6일 '신정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양국 협력방안' 세미나에서 한·일 기업의 자발적 기금 출연을 통한 피해자 배상 방안을 제안했다. 문 전 의장은 그러면서 “피해 당사국인 한국의 선제적 입법을 통해 한·일 양국이 갈등 현안을 포괄적으로 협의하고 양보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고, 화해 협력의 물꼬를 틀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日 기업 ‘자발적 동참’ 끌어내야
한국 기업 측 출연금으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수혜 기업인 포스코가 출연한 60억원을 활용할 수 있다. 이 돈은 현재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관건은 일본 측에서 미쓰비시중공업·신일철주금(일본제철) 등 전범 기업이 출연금 지급에 참여할지 여부다.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단 및 법률대리인은 지난달 외교부가 대법원에 '외교적 노력'울 강조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데 항의하며 민관협의회 불참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법률대리인 등 피해자 측에선 일본 전범 기업의 기금 출연을 대위변제의 필수 조건으로 삼고 있다. 반면 일본 측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배상이 완료된 만큼, 일본 기업의 출연을 강제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정부로선 일본 기업을 재원 마련에 참여시키되 ‘자발적 동참’의 성격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피해자가 대위변제를 수용할 명분을 마련하는 고난도 외교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셈이다.

대위변제 대상 어떻게 정하나
지난 7월 이후 네 차례의 민관협의회를 통해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으로 대위변제 방안이 논의됐고, 지급 대상에 대해선 대법원 판결을 통해 승소한 피해자 및 소송을 진행중인 피해자로 한정하는 방안에 무게가 실렸다. 사진은 지난 7월 4일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이 민관협의회 첫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연합뉴스
현 단계에서 대위변제를 위한 소요 재원은 추산하기 어렵다. 대위변제라는 해법을 공식화하지 않은 만큼 아직 그 대상 역시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민관협의회에선 강제징용 피해자를 ▶대법원 판결을 통해 승소한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인 피해자 ▶소송을 진행하지 않은 피해자 등 3그룹으로 분류했다. 대위변제의 대상으론 승소한 피해자 및 소송을 진행 중인 피해자로 대상을 한정하는 방안에 무게를 실었다.


대법원 확정 판결을 통해 승소한 강제징용 피해자는 규모는 총 15명이다. 소송을 진행 중인 피해자의 경우 약 1000명 규모로 추산되는데, 이 중 약 800명은 지방법원 단계에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2심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는 140여명, 대법원 계류는 110여명으로 추산된다.

1심 재판을 진행 중인 이들 800명가량의 피해자는 수백명 단위의 집단 소송인 경우가 많고, 이 중 일부는 강제징용 피해자임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 자료가 부족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자칫 소송에서 패소하게 됨으로써 손해배상 청구권을 확보할 수 없는 피해자에 대해서도 대위변제 배상금이 지급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 관계자는 “여러 조건과 상황을 따져봤을 때 소송 진행 중인 피해자 중 100여명 정도만 재판에서 승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재판의 결론이 나기 전 정부가 피해자를 승소할 피해자와 패소할 피해자로 나눠 분류할 순 없다”며 “대법원 판결을 통해 승소한 피해자를 대위변제가 시급한 1순위로 상정하고, 이후 소송을 진행중인 피해자의 경우 대위변제를 위한 별도의 절차와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피해자·기업 ‘동의’ 가능한가
민관협의회에선 대위변제의 구체적 방법론으로 ‘병존적 채무인수’ 방안이 논의됐다. 제3자가 채무자의 채무 자체를 인수해 대신 변제하는 방식이다. 이를 강제징용 문제에 대입하면 정부·재단 등 제3자가 채무자(일본 전범 기업)의 채무(대법원 판결에 따라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금)를 이양받아 채권자(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민관협의회에선 대위변제의 구체적 방안으로 피해자 동의가 필요없는 병존적 채무인수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사진은 지난 2일 광주에서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를 만난 박진 외교부 장관. 공동취재단
당초 대위변제를 위한 선결 조건으로는 ‘피해자 동의’가 꼽혔는데, 이같은 병존적 채무인수의 경우 채권자인 피해자의 동의 없이도 절차 진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도저히 그 채권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3자가 채무를 인수하는 방식”이라며 “병존적 채무인수는 민법상의 개념이 아닌 판례로 축적된 관행인데, 법적으로는 채권자의 동의가 필요 없다고 이해된다”고 말했다.


다만 채권자 동의 없는 대위변제가 법률적으로 가능하다 해도, 이 경우 피해자 반발은 불가피하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대표는 “피해자들은 단 한 번도 돈을 원한 적 없는데, 피해자 동의를 배제하는 것은 대위변제를 불우이웃 돕기 정도로 생각하는 것 아니겠냐”며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 마련이 상대국이 있는 외교적 협의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방적인 대위변제를 추진할 경우 결단코 이를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日 사과, 통제하거나 관리할 부분 아니다"
피해자들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 사실에 대한 일본 측의 진정성 있는 사과도 요구하고 있다. 민관협의회에서도 일본의 사과가 대위변제 등의 해법과 연계돼 정부안에 담겨야 한다는 의견이 일부 제기됐다. 일본 측의 사과 역시 주요 의제에 올랐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측의) 사과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건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면서도 “일본의 사과가 필요하지만 정부가 통제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대위변제 등 한국 정부 차원의 해법 모색 절차와 달리 사과 문제는 선택권이 온전히 일본 측에 넘어가 있다는 의미다. 최근 일본 내에서 윤석열 정부의 행보에 발맞춰 일본 정부도 호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부 나오고 있지만, 일본의 사과를 강제할 현실적 방법은 전무하다. 더구나 외교적 협의를 통해 일본의 사과를 끌어낸다 해도 일본 측은 강제징용 문제의 불가역적 종결을 전제 조건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은 “민관협의회가 강제징용 해법 도출 과정의 ‘워킹 그룹’이었다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보다 권위있고 초당적인 차원에서 책임 있는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는 현인회의 형태의 기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강제징용 문제는 외교 이슈이면서 동시에 여론 휘발성이 높은 사안인 만큼 여야 협치의 차원에서 다뤄야 피해자와 국민, 일본 측을 설득할 수 있는 정치적 결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진우(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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