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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歷知思志)] 조총

유성운 문화팀 기자
“왜노가 전투에서 승리를 얻은 것은 실로 이 조총 때문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

임진왜란 당시 날아가는 새도 잡는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조총(鳥銃)은 조선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데다 소리도 요란했기 때문에 왜군 수백 명이 연달아 조총을 쏘면 말 그대로 혼비백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 때문에 조선은 선조 26년(1593)부터 조총 개발에 착수했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결국 선조는 “왜인의 정밀한 조총을 기준으로 삼아 일체 그대로 제조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기술을 아는 왜인 포로는 특별히 대접하게 했다.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생포한 왜인은 조총을 만들 줄 안다고 하니 철이 생산되는 고을에 보내면 조총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족쇄를 풀어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이 왜인은 포수로서 쏘는 법이 귀신처럼 빨라 견줄 데가 없으니, 훈련도감에 소속시켜 급료를 주어라. 지나치게 의심할 필요 없다. 영웅의 수단이 어찌 이와 같은가” “왜인이 투항해 왔으니 후하게 보살피지 않을 수 없다. 묘술을 터득할 수 있다면 적국의 기술이 곧 우리의 기술이다.”(『선조실록』 26년 6월 16일, 27년 2월 29일, 27년 7월 29일) 국왕의 관심과 독려 덕분인지 전쟁 후반이 되자 조선은 자신감을 가질 정도로 조총 기술이 향상됐다.

영화 ‘한산’에 조선인을 돕는 일본인이 등장한다. 실제로 조선 편에 섰던 일본인 장수 사야가(沙也可)는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받고 조선에 정착했다. 이때 조총 개발을 돕고 이름을 남기지 못한 일본인은 어떻게 됐을까.



유성운(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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