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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혈액암 의사 67명뿐…춘천 사는 지훈이 또 밤에 서울 간다


강원도 춘천시에 사는 5살 지훈(가명)이는 백혈병을 앓고 있다. 집 근처에는 소아 혈액암 치료가 가능한 병원이 없어서 서울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집에 돌아가기를 반복한다. 먼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지훈이 부모에게 가장 걱정스러운 건 응급상황이다. 소아암 환자의 경우 작은 감염도 패혈증으로 번질 수 있어 열이 나면 무조건 응급실로 가야 한다. 혹시나 감기나 식중독에라도 걸릴까 봐 사람 몰리는 곳을 피하고 음식 하나를 먹일 때도 신경 쓴다. 그런데도 가끔은 열이 올라 응급실로 달리게 된다. 춘천에 대학병원이 2곳 있지만, 백혈병 치료를 하는 소아 혈액암 전문의는 한 명도 없다. 지훈이 부모는 매시간 열을 재며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러다 지훈이에게 미열만 나더라도 서너 시간 차를 몰아 서울의 응급실로 달려가곤 한다.


대한소아혈액암학회는 6일 소아청소년암 진료체계 붕괴로 지훈이처럼 수도권 외 지역에 사는 소아혈액암 환자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회는 국내 소아혈액암을 치료하는 의사 수가 턱 없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전국에서 진료 중인 소아혈액암 전문의는 67명 뿐이다. 그나마도 이 가운데 62%(42명)는 서울ㆍ경기ㆍ인천 병원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강원ㆍ경북은 전문의가 아예 없다. 울산은 최근 은퇴한 교수가 외래 진료를 맡고 있지만 후임이 없어 입원 진료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4~5명이 있는 지역도 각 병원 별 근무 인원이 1~2명에 불과해 항암 치료 중에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응급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고 한다. 현재 활동중인 전문의들의 고령화도 문제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50.2세다. 이들 중 50%가량이 10년내 은퇴 예정인데, 최근 5년간 배출된 신규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연간 평균 2.4명에 불과하다. 10년 후에는 소아혈액종양 진료 공백이 지금보다 더 심화될 수 밖에 없다. 학회는 “소아청소년암 환자 치료에 필요한 시설과 인력유지를 유도하기에는 현재 수가 및 각종 지원체계가 비현실적이다”라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전국 소아혈액암 전문의 현황. 자료=대한소아혈액암학회

소아청소년암 치료의 가장 큰 부작용은 면역력의 심각한 약화인데, 항암치료가 암세포만 공격하는게 아니라 면역을 담당하는 몸 속의 좋은 세포들과 장기까지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 가거나 음식 하나를 먹을 때에도 감염으로부터 안전한지를 신경 쓰는 것이 소아청소년암 환자와 가족에게는 당연한 일상이다.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는 지표인 발열이 나타나면 패혈증과 같은 중증 감염으로 빠르게 진행할 수 있어서 신속하게 입원해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학회 측은 “현재 소아청소년 암환자들은 거주지의 대형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어려운 현실”이라며 “소아혈액종양 전문의의 부재로 소아청소년암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이 줄어드는 상황이고, 소아응급실도 문을 닫게 되면서 소아암 환자들은 열이 나면 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전전하다가 결국 치료 시작이 몇 시간이 지연되고 중증 패혈증으로 악화돼 중환자실로 가는 경우도 발생한다”라고 지적했다.
비수도권 인력 공동현상으로 환자가 수도권으로 몰리게 되고 비수도권 지역의 소아청소년암 의료체계는 더 악화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비수도권 지역에 사는 환자 가족들은 아이 치료를 받으러 수도권으로 이동하면서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지게 되고 가족끼리 생이별하는 가족해체까지 겪는다.


소아청소년암 환자 수는 성인암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이지만 조혈모세포이식,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면역치료 등 치료의 강도나 환자의 중증도는 오히려 성인에 비해 높은 편이라고 학회는 설명한다. 성인암 환자는 통원 치료가 상당하지만 소아청소년암 환자는 대부분 입원치료가 필요하다. 숫자가 적어도 입원 치료가 필요한 소아청소년암 환자가 있는한 365일 24시간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전문의가 병원별로 최소 2~3인 이상 필요하다. 최근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없는 지방 병원에서는 1~2명의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주말도 없이 매일 입원환자와 외래환자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한다.

소아청소년암의 경우 성인암에 비해 치료 성적이 좋은 편이다. 현재 국내 소아암 환자들의 완치율, 생존율은 꾸준히 증가해 5년 생존율이 약 85%로 국제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치료만 잘 받으면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다는 얘기다.


학회는 “병원에서 의사를 더 고용하면 되겠지만, 중증 진료를 할수록 적자인 우리나라 건강보험수가 구조와 소아청소년암 진료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전무한 현실에서 어느 병원도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를 더 고용하지 않는다”라며 “어느 의사도 주말도 없이 혼자서 중증 환자 진료를 책임질 수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학회는 또 “몇 명 남지 않은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들이 사명감만으로 버티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안전한 소아청소년암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고, 국내 소아청소년암 완치율 생존율은 점차 낮아질 위기에 처해 있다”라며 “저출산 시기에 출산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태어난 소중한 아이들을 한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소아청소년암 치료에 국가적인 지원이 매우 시급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에스더(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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