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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민관협의회 '마침표'…피해자 설득 넘어 '대위변제' 가나

5일 외교부가 4차 회의를 끝으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한 민관협의회를 종료했다. 정부가 지난 두 달 동안 피해자와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했다는 명분을 어느정도 마련했다는 판단 하에 정부 주도의 이른바 '대위변제 안(案)' 추진을 본격화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2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이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고(故) 김혜옥 씨 묘소를 참배하는 모습. 연합뉴스.
"민관협의회 포맷은 종료"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민관협의회는 조현동 외교부 1차관 주재로 학계와 법조계, 언론계, 재계 인사 1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회의가 끝난 뒤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한 달에 두 번 꼴로 네 차례의 민관협의회를 했는데 이제 같은 형태의 포맷은 그만하게 될 것 같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피해자, 소송 대리인, 피해자 지원 단체와 소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이어 이날 회의 주요 쟁점에 대해 "피해자 지원 단체, 소송 대리인의 입장, 2018년 10월과 11월 대법원 확정 판결의 이행 , 배상금 지급을 위한 재원, 강제징용 피해자의 범주, 일본의 사과와 추가 조치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항간에 논의되는 대위변제 방법에 대해서는 피해자, 즉 채권자의 동의를 전제하지 않는 '채무 인수 방안'에 대해서도 토론했다"며 "어떤 방안을 택하든 정부 예산만을 사용한 대위 변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참석자들의 컨센서스"라고 설명했다.

대위변제는 채무자 대신 제3자가 변제에 나선 뒤 채권자로부터 권리를 넘겨 받아 추후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강제징용 문제에 이를 적용할 경우 기금이나 재단 등 제3의 주체를 만들어 여기서 2018년 10월, 11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손해 배상 권리를 인정받은 피해자들에게 보상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일본 전범 기업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게 마지막 단추다. '채무 인수'까지는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이뤄지더라도 결국 핵심은 이후 단계인 '보상'과 '구상권 청구'라는 지적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어떤 민사 소송에 있어서도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변제를 하면 구상권이 취득되고 이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법적 토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2일 오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의 광주 광산구 우산동 자택을 방문해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재원ㆍ사과 방식 등 논의
이날 회의에서는 대위변제를 위해 새로운 기금 혹은 재단을 신설할 경우 재원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논의도 오갔다.

외교부 당국자는 "국가 예산이 투입될 수 있고, 그 다음에는 일본 기업, 그 중에서도 전범 기업이나 다른 일반적 일본 기업, 한국 국내 기업, 양국의 여러 경제 단체 등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기금이나 재단을 신설하는 대신 2014년 설립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대위변제 주체로 활용하는 방안도 비중 있게 논의됐다고 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일본 정부 혹은 기업의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박 장관이 지난 2일 광주를 찾아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와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 등을 만났을 때도 피해자들은 일본의 사과를 우선적으로 요구했다. 양 할머니는 박 장관에게 쓴 자필 편지에 "돈 때문이라면 진작 포기했다"며 "일본에 사죄와 배상을 받기 전에는 죽어도 죽지 못하겠다"고 썼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의 사과는 피해자 분들, 특히 대법원으로부터 2018년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바이고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며 "다만 사과 주체와 수위, 내용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고 말했다.
사실상 대위변제 답 내렸나
이날 4차 회의는 피해자 측 의견 경청이 중심이 됐던 1차 회의와 달리, 피해자 대리인이 없는 상태에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 때부터 무게를 뒀던 대위변제 안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논의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지적이다. 네 차례의 회의를 거치면서 협의회 성격 자체가 바뀌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 내부적으로는 일본과 본격적인 교섭에 나서기 전 피해자와 관련 당사자 의견 수렴이라는 '명분 쌓기' 과정을 사실상 마쳤다는 판단을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2일 오후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일본 후생연금 탈퇴수당으로 받은 931원을 건내는 모습. 공동취재단. 연합뉴스.
"긴장감 갖고 속도 낼 것"
당장 지난달 현실화할 것 같던 일본 전범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가 미뤄진 것도 정부가 연내 문제 해결에 속도를 내는 이유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현금화 사건 심리의 주심 대법관이 지난 2일 결론을 내지 않은 채 퇴임하면서 정부로서는 외교적 해결을 위한 시간을 벌게 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심리가 길어진다고는 하지만 언제든지 기각 판정이 내려질지 모른다"며 "긴장감과 진정성을 갖고 가급적 신속하게 방안을 마련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전범 기업 미쓰비시가 특별현금화명령에 불복해 대법원에 낸 재항고 사건이 기각되는 즉시 미쓰비시의 국내 자산은 현금화 수순에 들어가게 된다.

한편 이날 피해자 단체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입장문을 내고 "정부는 일본의 가해 기업이 져야 할 배상 책임에는 침묵한 채 피해국인 우리 정부가 해결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해괴망측한 접근법을 버리고, 지금이라도 일본 기업의 사죄와 조속한 배상 이행을 촉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현주.이경은(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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