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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싱크홀 못 잡아낸다…"1000만원 수주, 250만원에 하청" [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강주안 논설위원
지난달 26일 정오쯤 강원도 양양 낙산해수욕장 인근 디자인 거리. 막바지 피서객이 삼삼오오 찾는 해수욕장 바로 옆 상가에 안전 펜스가 쳐있다. ‘지반 침하 위험’ 표지판이 보인다. 지난달 3일 편의점 한쪽이 무너져내린 싱크홀 현장이다. 아직 여행객이 제법 오지만 싱크홀을 둘러싼 상가와 숙박업소는 폐업 상태다.

1. 지난달 초 편의점 한쪽이 무너져내리는 싱크홀 사고가 발생한 강원도 양양 낙산해수욕장 인근 상가의 지난달 26일 오후 모습. 옆 건물들은 전부 폐업 상태다. 다른 지역에서 온 피서객들은 “여기가 싱크홀 사고 장소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2. 땅속 지도 제작 현장서 나온 시멘트 관로가 일부 파손된 듯 보인다. 3. 지난달 3일 낙산 싱크홀 사고 직후의 모습. 강주안 기자, [연합뉴스]
사고 당시 CCTV 영상을 보면 순식간에 편의점 한쪽이 붕괴한다. 사고 직후 인근 펜션 등에서 수십명이 긴급 대피를 했다. 만약 땅 꺼짐이 고층건물 쪽에서 발생했다면 대형 참사를 빚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해수욕장에 놀러 왔다는 한 부부는 ‘여기가 싱크홀 사고 장소라는 걸 아느냐’고 묻자 “전혀 몰랐다”면서 “낙산에서 싱크홀이 발생했다는 뉴스는 봤지만 이곳인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주변 차단막에 ‘지반 침하 위험지역’이라는 표지판을 세워놨지만, 피서객들은 싱크홀을 떠올리진 못하는 듯했다. 공사 현장의 작업자들에게 ‘싱크홀 복구가 잘 되느냐’고 묻자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얼굴을 돌렸다.

바로 옆 대형 호텔 공사장 펜스에 붙은 분양 안내 전화번호를 눌러봤다. 전화를 받은 남성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싱크홀이 생겼는데도 원래대로 공사하는 거냐’고 묻자 "싱크홀이 우리 공사로 인해 발생한 게 아니라 계획대로 진행된다"고 말한다.
낙산 싱크홀 원인 아직 오리무중
대형 참사를 빚을 뻔한 땅 꺼짐 사고였지만 추가 사고에 대한 대비나 방문객의 불안을 달래주기 위한 노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인근 식당 주인은 "피서객이 줄면서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지만, 보상도 안 해준다"고 불만을 토로했고, 상점 주인 역시 "여기저기 붙였던 플래카드를 떼면 보상해 준다고 하더니 아무 소식이 없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현재 싱크홀 원인을 조사 중이며 10월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고 한 달이 지나도록 원인조차 모르는 상태다.

싱크홀 대비 땅속 관로 탐사 현장 가보니
낙산 싱크홀 사고는 전국에서 빈발하는 땅 꺼짐 사고 중 하나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최근 5년간 1176건의 지반 침하가 발생했다. 원인은 세 가지다. ▶연약 지반이 충분히 다져지지 않은 경우 ▶지하수의 흐름이 바뀌어 공동이 생긴 경우 ▶상ㆍ하수관로 손상으로 누수가 발생하는 경우 등이다.


다른 두 가지는 진단과 예방이 쉽지 않지만, 상ㆍ하수관로 누수는 대비책을 세울 수 있다. 정부가 ‘지하공간통합지도’를 구축해온 이유다.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의 땅밑에는 상수도ㆍ하수도ㆍ전력시설물ㆍ전기통신설비ㆍ가스공급시설 등이 설치돼있다. 상수도관 등이 파손되거나 물이 새면 위험해진다. 정부는 2009년부터 7대 지하시설물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갖가지 부적절한 업무 처리로 위험 예방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낙산사 싱크홀 사고에 이어 수도권 폭우 때 남매가 맨홀에 빠져 숨지는 등 지하 공간에 대한 불안도 커진다.
예방 위한 땅속 지도 제작도 허술
지하공간통합지도의 작업 현장을 가봤다. 지난 3일 오전 경북 지역의 한 관로 공사 현장. 왕복 2차선 도로의 두 개 차선을 막고 새 관로를 묻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스팔트를 적당한 넓이로 뜯어냈다. 포크레인으로 아스팔트 아래 흙을 파낸다. 땅속에 가스관이 나타난다. 이를 파손하면 큰 사고가 된다. 통신선도 나왔다. 1m 정도 깊이에서 시멘트로 된 커다란 관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시설들을 피해 새 관로를 묻는 동안 좌표를 측정해 땅속 지도를 만들어 간다. 새 관로는 기존 관로들과 교차해 설치됐다. 겨울철 동파 등을 막기 위해 1.2m 깊이에 묻는데, 시멘트 관로가 돌출한 지점에서 이 깊이를 유지하려면 공사가 커져야 한다. 시멘트 관로 위로 그냥 새 관로를 올린다. 이를 본 전문가는 "신설한 관이 시멘트 관로를 계속 누르게 돼 나중에 파손과 누수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멘트 우수관은 연결 부위가 일부 파손된 듯 보였다. 공사 과정에서 충격을 받은 게 아닌지 의심됐다. 그러나 공사는 계속됐고 새 관로는 돌출한 시멘트 관로 때문에 깊이가 얕아졌다. 새 관로의 좌표와 깊이를 측정한 뒤 관로 위에 흙을 덮어 작업을 마무리했다. 동행한 전문가는 100여m에 불과한 공사 구간에서 여러 건의 문제 요소를 찾아냈다. 안전을 확보하려면 땅속에서 돌출하는 위험 요인을 전부 제거하며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인건비를 비롯한 비용이 커지기 때문에 대충 넘어간다는 게 업계 관계자 얘기다.

현장서 문제 보여도 대충 덮고 가
신설 관로보다 까다로운 건 이미 오래전에 설치한 수도관 등을 땅속에 둔 채로 탐지하는 작업이다. 오래된 지하 관로를 지표면에서 찾기가 어렵지만 낙후한 시설물일수록 누수 발생과 그로 인한 싱크홀 사고 우려가 크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 지난달 초 서울의 한 이면도로에서 진행된 지하 상수관로 탐지 작업을 관찰했다. 도로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곳곳에 맨홀 뚜껑이 보인다. 크고 작은 금속 덮개가 어지럽게 바닥에 박혀있다. 상수도 덮개를 열고 탐사 작업에 들어갔다. 기술자가 땅 안에 있는 상수도관에 기계를 연결했다. 일정한 전파를 내보내는 장비다. 그러면 다른 작업자가 탐지기를 도로 위에서 훑는다. 땅속 상수도관의 수직 지점에 다가갈수록 탐지기 반응이 세진다. 상수도관 위치가 특정되면 도로에 페인트로 표시한다. 측량 기술자가 표시 지점의 좌표를 측정해 입력하면서 땅속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하수관 등 시멘트로 만들어진 관로다. 시멘트는 기계로 전파를 보내도 전달이 되지 않기 때문에 금속관처럼 쉽게 찾을 수 없다. 훨씬 큰 장비로 땅 위에서 지하로 파장을 쏘아 시설물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이 기계로 작업하는 모습을 보니 금속관 탐지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땅속 형태가 희미하다.

하지만 싱크홀을 발생시키는 누수는 노후 관로가 위험하다. 어떻게든 찾아내야겠지만 현장에선 다른 얘기가 들린다. A사 관계자는 "오래 작업해서라도 끝까지 관로를 찾는 게 원칙이지만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다 보니 그냥 ‘탐지 불가’로 처리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털어놨다. 못 찾는다고 해도 별다른 불이익이 없으니 큰 비용을 들여 어려운 관로를 찾기보다 쉬운 시설을 빨리빨리 찾는 방식이 업체들엔 이익이라는 얘기다.
“저비용 하청에 제대로 탐사 못해”
이런 실태는 탐사 불가 구간 자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감사원이 2015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개 시설물의 탐사 불가 구간은 1만5675㎞에 이른다. 특히 상수도의 경우 9만6308㎞ 중 1만1496㎞가 어디에 묻혀있는지 모른다는 얘기다. 막대한 예산을 써가며 장기간 작업을 진행했지만 정작 위험한 노후 관로 중 상당 부분을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하 시설물 탐사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는 업계 관계자들의 증언이 나온다.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등 사회 곳곳의 부실을 초래한 하청의 문제가 지하 탐사에서도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탐사업체인 A사 관계자는 "정부나 지자체가 발주하는 작업을 1㎞당 1000만원에 수주하면 250만원 정도로 하청을 주는 경우까지 있다"며 "1000만 원짜리를 250만원에 진행하려니 투입 인력을 줄이고 작업을 서둘러 진행하게 된다"고 밝혔다. B사의 한 임원은 "업계 관행이 이렇다 보니 유능한 기술자를 양성하는 것도, 인력을 확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C사 측 인사는 "정부나 지자체가 발주한 공사를 몇몇 업체가 독식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과연 이 업체들이 그 많은 공사를 진행할 인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감사원 감사에서도 하청의 심각성이 지적됐다.

그러나 정부 발주를 많이 확보한 업체 쪽에선 오해라고 반박한다. D사의 대표는 "우리는 지역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며 "회사가 업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홍식 성균관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일부 탐사업체가 하청을 주고 재하청으로 이어지면서 100을 받으면 30만 주는 상황까지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통합지도를 담당하는 한국국토정보공사 관계자는 "하청을 줄 경우 일정한 조건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하고 있다"며 "현장에서 그런 주장이 나온다니 다시 한번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지하시설물 관리는 큰 사고가 터지고서야 대책이 나오곤 했다. 1994년 서울 마포구 아현동 가스폭발사고와 1995년 대구 지하철 가스폭발사고를 계기로 전산화 작업이 시작됐고 2014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 지하차도 안전사고로 싱크홀에 대한 불안이 커지자 지하공간통합지도 구축에 들어갔다. 이젠 사고가 터지기 전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홍식 교수는 "측량기계의 성능 검사가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이뤄져야 하는 등 지하시설물 탐사 작업에 개선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강주안(joo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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