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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현장을 가다] "다들 이상하다고 해"…알래스카에 한달째 비

"알래스카 빙하, 겨울철에도 눈보다 비에 더 노출" 빙하 녹아 후퇴한 자리엔 풀밭, 호수…폭우도 내리기 시작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다들 이상하다고 해"…알래스카에 한달째 비
"알래스카 빙하, 겨울철에도 눈보다 비에 더 노출"
빙하 녹아 후퇴한 자리엔 풀밭, 호수…폭우도 내리기 시작


[※ 편집자 주 =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 세계적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기의 수위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북미, 유럽, 아시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글로벌 특파원망을 가동해 세계 곳곳을 할퀴고 있는 기후위기의 현장을 직접 찾아갑니다. 폭염, 가뭄, 산불, 홍수 등 기후재앙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현장을 취재한 특파원 리포트를 연중기획으로 연재합니다.]

(수어드·글레이셔뷰[미 알래스카주]=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올해 여름 미국 알래스카주의 가장 큰 관심사는 비다.
그렇다. 눈이 아닌 비에 온통 신경이 쏠려 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알래스카 최대 도시 앵커리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오늘만 빼고 한 달째 비가 내리고 있다"고 했다.
비가 많이 오거나 아니면 잔뜩 흐린 한국의 장마같은 날씨가 8월 내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주민은 "알래스카에 정착한 이후 처음 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앵커리지의 장마철은 보통 8월 중 1∼2주 정도였다고 한다.
"다들 이상하다고 얘기해요. 기후변화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냐는 말들을 합니다."
알래스카주 남부 항구도시 수어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엑시트 빙하 인근에서 숙소를 운영하는 수 마리스 씨는 31일 체크아웃하면서 아직 물기가 남은 초행길을 걱정하자 "당신은 운이 너무 좋았다. 8월 내내 비가 오다가 당신이 투숙한 이틀만 날씨가 맑았다"라고 말했다.
전날 찾은 미 국립공원관리청(NPS) 소속의 파크레인저 해나 씨 역시 "오늘은 두 달 만에 처음으로 비가 안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엑시트 빙하를 보고 하산하는 길에 여지없이 소나기를 몇 번 만났다.


◇ "비 때문에 빙하 녹는 속도 빨라질 수도"…베어 빙하는 5㎞ 후퇴
비가 거의 내리지 않은 이틀이 '대단한 행운'이었다는 덕담이 반복되자 길어진 장마철이 알래스카의 빙하에 미치는 영향이 궁금해졌다.
해나 씨는 "비가 빙하를 녹이는 주요 원인까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어느 정도는 역할을 한다. 폭우로 빙하의 얼음덩어리가 깨지면 빙하가 녹고 후퇴하기 쉬워진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전 세계 평균보다 두 배 빠른 이 지역의 온난화가 빙하에 가장 큰 위협이지만 비, 특히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뇌우 또한 '빙하 실종'을 가속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비가 빙하에 미치는 영향을 시사하는 최신 연구 결과도 있다.
미 워싱턴대와 NPS가 알래스카주 키나이피오르 국립공원 내 빙하 19개의 위성사진을 분석해 8월 초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크기가 커져 전진한 빙하는 2곳 밖에 없고 13개는 상당히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말단부가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베어 빙하와 페더슨 빙하가 가장 빠른 속도로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1984∼2021년 베어 빙하는 5㎞, 페더슨 빙하는 3.2㎞ 각각 물러났다.
이 연구에 참여한 워싱턴대 박사과정 연구원 타린 블랙은 논문에서 "이러한 빙하들은 기온이 따뜻한 저고도에 있는 데다 겨울철에도 눈보다 비에 더 많이 노출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말 한겨울 알래스카의 온도는 섭씨 19.4도까지 올라가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 한파 대신 고온 다습한 겨울이 찾아온 것이다.
'알래스카에서 냉장고를 판다'는 말은 이제 더는 농담이 아니다.



키나이피오르에서 가장 빨리 사라지는 베어 빙하를 실제로 보기 위해 30일 수어드항에서 빙하 근처 바다를 지나는 배에 올랐다.
50여분 뒤 베어 빙하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에서 보더라도 자료사진에서 보던 모습과는 확연히 구분됐다. 높은 산골짜기 위에서 발달한 곡빙하(谷氷河)와 달리 완만하게 흘러 내려오다 끝부분이 바다로 이어지는 형태다.
이 빙하를 처음 보는 사람이더라도 이 빙하가 곧 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될 만큼 베어 빙하의 끝자락은 안쪽으로 한참을 녹아 들어갔다.
NPS의 자료 사진을 보면 2002년 사진에서 호수의 3분의 1 정도를 뒤덮은 빙하의 말단부가 5년 뒤인 2007년 사진에서는 칼로 깔끔하게 베어낸 것처럼 사라졌다.
빙하가 약해져 깨져버린 것이다.

그나마 바다와 직접 맞닿은 조수빙하들은 아직 안정적인 형태를 유지하는 편이었다.
3시간 뒤 다다른 아얄릭 빙하는 베어 빙하와 달리 얼음층이 두껍고 단단한 것은 물론 눈이 시릴 정도의 푸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100년 전 사진과 비교해도 큰 차이를 못 느낄 정도지만 일부 얼음덩어리가 빙하 본체에서 떨어져 나가 바다로 풍덩 빠지는 '카빙'(calving)도 10여 분만에 두어 차례 볼 수 있었다.
선원으로 일하는 올리비아 씨는 "빙하에서 커다란 얼음 덩어리가 바다로 빠지는 것은 정말 멋진 광경"이라면서도 "날씨가 더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높아지고 우리의 생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빙하와 북극권 해빙이 빠르게 녹으면서 벌어지는 해수면 상승은 이미 알래스카 주민의 터전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전 세계 해안 도시들에 위협이 될 수 있다.


◇ 마타누스카도 못 피한 온난화…"벼락 맞으면 더 빨리 녹을까 걱정"
1일 찾아가 본 앵커리지 북동쪽 글레이셔뷰의 마타누스카 빙하도 희망과 새로운 불안이 뒤섞인 현장이었다.
육로로 접근할 수 있는 빙하 중 미국 최대 규모인 길이 43㎞의 마타누스카는 다른 빙하와 반대로 최근 2년간 오히려 전진했다고 지역 주민 케이디 스카롤라 씨가 말했다.
가을로 접어든 이날 밤새 내린 눈으로 추가치 산맥의 높은 봉우리들이 하얗게 변한 모습에서 마타누스카 빙하의 힘이 느껴졌다. 최고 2천m가 넘는 산 정상에서 눈이 많이 내리면 빙하 말단부에서 녹아 사라지는 것보다 많은 얼음을 빙하에 공급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지역 빙하 가이드 켄들 베누아 씨의 말은 달랐다.
마타누스카 빙하 끝에서 최소 500m 이상 떨어진 지점을 가리키며 "1960년대에는 빙하가 저기까지 내려와 있었다"며 "이것이 기후변화 영향의 증거"라고 단언했다.
그가 손끝으로 가리킨 빙하가 물러난 자리는 수풀과 호수가 차지했다.
역대 가장 더웠던 2019년 여름에는 빙하가 너무 많이 녹는 바람에 외부 도로와 주차장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 위로 물이 넘쳤다고 한다.
온난화로 빙하 윗부분의 얼음 두께가 얇아지고 폭이 좁아진 것은 물론, 접근하기 어려워진 구역도 늘어났다고 베누아 씨는 안타까워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이드 없이 오를 수 있었던 마타누스카 빙하에서 최근 전문 가이드 동반이 의무화된 것도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비를 맞으며 빙하 위를 두 시간 이상 걷는 동안 곳곳에서 얼음 녹은 물이 틈새로 흘러내리고, 빙하에서 떨어져나온 작은 조각들이 물웅덩이로 퐁당퐁당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견고했던 빙하가 녹으면서 전문 가이드없이는 매우 위험한 코스가 돼버린 셈이다.

마타누스카 빙하는 규모와 높이, 연간 18㎝의 강설량 덕분에 후퇴 속도가 느린 편이지만 잦아진 뇌우가 걱정거리다.
대학에서 기후변화를 전공한 베누아 씨는 "이 지역은 추가치 산맥이 비구름을 막는 덕분에 원래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며 "그러나 기후변화로 최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은 그런 사례가 보고된 적이 없지만, 빙하 위를 벼락이 직접 때리면 더 빨리 녹아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며 "주변 산악 지역에서는 번개가 내리친 일이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firstcircl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강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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