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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몸으로 활력 만든다"…DJ가 노래트는 수제맥주집 진짜 정체 [김현예의 톡톡일본]

김현예 도쿄 특파원
영업 개시 시간인 오전 11시가 되자, 가방을 짊어진 젊은 손님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5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10명이 넘는 손님들이 찾아왔는데, 목욕탕 입구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이도 보였다. 지난달 31일 만난 이곳의 신보 타쿠야(新保卓也) 사장은 “2년 전 내부를 새로 단장하면서 젊은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동네목욕탕이 달라지고 있다. 올해로 창업 90년을 맞은 도쿄 스미다구의 목욕탕 고가네유는 DJ부스에서 음악을 틀어준다. 목욕을 마친 뒤 시원한 수제 맥주도 마실 수 있다. 입소문을 타면서 동네목욕탕에서 젊은층 손님들이 몰려드는 '핫플'로 바뀌었다. 사진 김현예 도쿄 특파원
일본 동네 목욕탕이 최근 달라지고 있다. 단순히 목욕하러 가는 곳에서, 경험 중심의 ‘즐기러 가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
목욕 문화가 발달해 있는 일본에선 동네 대중목욕탕을 센토(銭湯)라 부른다. 전후 집집마다 목욕탕이 없던 시절, 동네 목욕탕은 마을의 ‘중요 시설’로 구심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위기가 왔다. 동네 목욕탕은 대개 가족 단위로 운영해 왔는데 청소 등 손이 많이 가는 고된 일이다 보니 고령화와 더불어 가업 계승이 어려워진 곳이 많았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새 코로나19가 터지고,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손님도 줄고 연료비 등 비용도 급상승했다. 이름있는 오랜 동네 목욕탕이 폐업한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할 정도로 문 닫는 곳이 늘었다. 실제로 지난 4월 기준 일본 전역에 있는 동네 목욕탕은 총 1865곳. 지난 2년 새 200여 곳이 문을 닫았다. 사가(佐賀)현처럼 동네 목욕탕이 한곳인 동네도 생겨났다.

목욕 마친 뒤 맥주 한 잔
올해로 창업 90년을 맞은 도쿄 스미다구의 고가네유 목욕탕에선 목욕을 마친 뒤 시원한 수제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이 목욕탕의 신보 사장이 지난달 31일 수제 맥주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김현예 도쿄 특파원
고가네유도 그랬다. 경영 악화와 노후화, 가업을 이을 후계자 부재로 폐업 위기에 놓였다. 전통 있는 동네 목욕탕이 폐업한다는 소식을 접하곤, 신보 씨는 2020년 고가네유 인수에 나섰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70년 넘은 동네 목욕탕, 다이고쿠유(大黒湯)를 부모님 대신 운영하고 있던 때였다. “목욕탕은 신분이나 지위, 돈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누구나 맨몸으로 들어와 하루 일의 피로를 풀고 내일을 위한 활력을 만드는 곳”이기에 “동네 목욕탕 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었다”는 게 인수 이유였다. 하지만 난관에 봉착했다. 코로나로 당연히 영업이 어려웠다.

손님을 다시 끌어오기 위해 시설 단장에 나섰다. 온라인으로 새 단장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에 도전했다. 역사 있는 동네 목욕탕을 되살리는 데 동참하겠다는 젊은이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동네 주민들도 선뜻 돈을 보태겠다고 나섰다. 신보 사장은 “주위에서 힘내라는 목소리가 컸기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아이디어를 냈다. ‘목욕할 때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목욕 후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는 것도 좋으니, DJ 부스를 만들고 맥주도 마실 수 있게 하자’는 거였다. 그 길로 DJ 부스를 만들고 목욕탕 이름을 딴 수제 맥주도 들여왔다. 달라진 동네 목욕탕은 입소문을 탔고 동네 주민들뿐만 아니라, 젊은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난해 2월엔 목욕 후, 기분 좋은 노곤함을 즐기면서 자고 싶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목욕탕 위층에 숙박시설도 작게 꾸렸다. 신보 사장은 “목욕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동네 목욕탕이 아닌, 전통을 지키면서도 세상 변화에 적응해 변화해 가는 목욕탕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만화방 도입한 목욕탕
오랜 역사를 가진 일본 동네목욕탕이 변신하고 있다. 밤샘 목욕인 '올 나잇' 목욕을 하며 도쿄 스카이트리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한 '노천탕'을 도입한 도쿄 다이고쿠유. 사진 김현예 도쿄특파원
달라지고 있는 곳은 고가네유뿐만이 아니다. 그가 운영하는 다이고쿠유는 동네 목욕탕치곤 희귀한 노천탕을 운영한다. 도쿄 스카이트리를 뜨끈한 탕에서 바라볼 수 있다. 늦은 밤, ‘올 나잇 목욕’도 할 수 있게 하면서 다이고쿠유에도 젊은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일본에선 아예 젊은 청년을 중심으로 전통 있는 동네 목욕탕을 대신 경영해주는 회사도 생겨나고 있다. 니코니코온센이 대표적이다. 옛 풍취는 남기면서 젊은 층이 즐길 수 있도록 동네 목욕탕에 서점을 입점시키거나 만화책을 7000여 권 구비하는 등 ‘즐기는 목욕탕’으로 바꾸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2019년 문 닫았던 도쿄 시나가와(品川)구 도쿄요쿠죠(東京浴場)에 2층짜리 책장을 짜 넣고 만화책과 그림책을 진열했다. 한쪽에선 맥주도 판다.
도쿄 신주쿠(新宿)역에서 가까운 코스기유(小杉湯)는 1933년 창업 당시 건물은 살리고 명물 ‘우유탕’ 전통은 지키는 대신, 요가나 필라테스 교실을 열면서 손님을 끌고 있다. 최근엔 국가등록 유형문화재로 선정되기도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처럼 달라지고 있는 동네 목욕탕에 대해 “오락의 장소로서 동네 목욕탕의 매력을 높이려는 움직임으로 도쿄에서 1985년 이후 처음으로 목욕탕 이용자 수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목욕탕에 '이것' 꼭 있는 까닭
일본에서 도쿄 일대의 대중목욕탕에 가면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목욕탕 벽에 그려진 ‘후지산(富士山)’이다. 일본인들에게 영산(靈山)으로 꼽히는 후지산은 어쩌다 목욕탕 벽에 장식됐을까.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후지산이 목욕탕 그림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12년의 일이라고 한다. 도쿄 치요다(千代田)구에 있던 목욕탕인 ‘키카이유’에서 유래됐다. 지금은 사라진 키카이유는 1884년 생겨난 목욕탕이었는데, 1912년 증기선의 보일러를 가져와 목욕탕에서 물을 끓이는데 썼다고 한다.

도쿄 스미다구 고가네유 벽에 그려진 후지산. 후지산 아래에서 태어난 아이가 후지산 밑에서 목욕을 하며 자라나, 장성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후지산 아래에서 목욕을 한다는 이야기가 담겼다. 사진 김현예 도쿄 특파원
목욕탕 주인은 당시 증축을 하면서 벽면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데 그게 후지산이었다고 한다. 당시 그림을 의뢰 받은 화가의 고향이 후지산 일대로, 이 그림이 인기를 끌면서 도쿄 일대에 유행처럼 번졌다는 것. 1960년대 들어 일본에선 대중 목욕탕이 크게 인기를 누렸는데, 이때는 목욕탕 그림 전문 화가가 존재하기도 했다. 목욕탕이 습해 벽화가 자주 지워지다보니 벌어진 일이었다.

목욕탕 벽화 화가들 사이에서는 ‘하늘 3년, 소나무 10년, 후지산 일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후지산 그림은 생을 걸고 그려야 하는 궁극의 그림으로 꼽혔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후지산 그림도 계절별로 인기가 다른데, 여름 후지산보다 겨울 후지산이 인기가 많다.



김현예(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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