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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현장을 가다] 오바마의 그 알래스카 빙하 7년만에 330m 후퇴

오바마 "지키겠다" 다짐한 알래스카 엑시트 빙하 녹아내려 연도별 빙하 위치 표지판은 기후변화의 증거…"녹는 속도 빨라졌다" 빙하 전망대가 숲으로 변해…모기철 지났는데도 빙하 주변에 '웽웽'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오바마의 그 알래스카 빙하 7년만에 330m 후퇴
오바마 "지키겠다" 다짐한 알래스카 엑시트 빙하 녹아내려
연도별 빙하 위치 표지판은 기후변화의 증거…"녹는 속도 빨라졌다"
빙하 전망대가 숲으로 변해…모기철 지났는데도 빙하 주변에 '웽웽'

[※ 편집자 주 =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 세계적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기의 수위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북미, 유럽, 아시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글로벌 특파원망을 가동해 세계 곳곳을 할퀴고 있는 기후위기의 현장을 직접 찾아갑니다. 폭염, 가뭄, 산불, 홍수 등 기후재앙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현장을 취재한 특파원 리포트를 연중기획으로 연재합니다.]

(수어드[미 알래스카주]=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우리 손자들이 이 빙하를 볼 수 있냐고요? 그렇지 못하겠죠. 녹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2015년 9월1일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알래스카주 남부 키나이피오르 국립공원의 한 빙하를 찾았다.
그는 '엑시트'(Exit)라고 불리는 이 빙하를 바라보며 "우리 손자들이 반드시 이 빙하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방문으로 엑시트 빙하는 '기후변화의 아이콘'으로 유명해졌다.
그가 찾은 날로부터 만 7년이 된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앵커리지에서 차로 두 시간 반을 달려 국립공원으로 들어서자 빙하기의 흔적을 볼 수 있다는 소개와 달리 삼림욕장처럼 우거진 푸른 숲이 펼쳐졌다.
빙하가 물러난 흔적으로 보이는 넓은 자갈밭 사이로 흐르는 여러 갈래의 물줄기도 눈에 띄었다.
빙하에서 녹은 회색빛 물이 이제는 빽빽한 나무숲 또는 빙퇴석(빙하에 의해 침식·운반돼 하류에 쌓인 돌무더기) 무더기로 변한 옛 자취를 따라 멀리까지 흘러내려 온 것이다.
방문자센터인 '엑시트 빙하 네이처센터'로 향하는 도로 곳곳에는 19세기 특정 연도를 적은 표지판들이 이어졌다.
산 위에서 시작된 빙하가 해당 연도에는 표지판이 세워진 지점까지 이어져 있었다는 뜻이다. 관측 사상 엑시트 빙하가 가장 멀리까지 팽창했다는 '1815년'을 알리는 표지판은 생각보다 빨리 등장해 당황스럽기도 했다.

빙하 트레킹의 시작점인 네이처센터는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빙하로 뒤덮였을 1917년 표지판 바로 뒤에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미 국립공원관리청(NPS) 관리인 테건 해처는 빙하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묻는 기자에게 1950∼2020년까지 연도별로 엑시트 빙하의 경계선을 그린 지도를 내밀었다.
가장 최근인 2020년의 빨간색 경계선은 빙하의 길이는 물론 폭과 넓이도 어마어마하게 줄어들었음을 실감케 했다.
엑시트 빙하를 직접 트레킹하며 "기후변화를 얘기할 때 이만큼 좋은 증거는 없을 것"이라던 오바마 전 대통령의 호소를 아는지 모르는지 빙하는 지난 7년간 더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관리인 해처는 "2015년 오바마의 방문 이후 330m쯤 후퇴했다"며 "아직 지도에 표시되진 않았지만 지난해엔 40m 이상 더 물러났다"라고 말했다.



이날 전망대까지 가는 길을 안내한 '해나'라는 이름의 NPS 파크레인저는 "1980, 90년대에는 연간 약 12m씩 빙하가 물러났는데 작년에만 약 43m 가까이 후퇴했다"고 했다.
올해는 하루에 1피트, 즉 30㎝씩 후퇴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빙하의 후퇴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빙하는 겨울철에 쌓인 눈이 녹지 않고 얼음으로 응축돼 더해지는 양보다 여름철에 녹아서 없어지는 얼음양이 더 많으면 당연히 길이가 짧아져 후퇴하고 폭과 두께도 얇아진다.
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고 겨울 강설량이 줄어들면 빙하가 수축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다짐처럼 '손자 세대들도 엑시트 빙하를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해나는 "녹는 속도가 빨라서 손자들은 보지 못할 것 같다"며 자신없는 표정으로 답했다.
옆에서 대화를 듣던 워싱턴DC에서 온 한 방문객은 "아이들은 이 빙하를 다시 볼 기회가 없겠네"라며 안타까워했다.



최근 들어 엑시트 빙하가 빠르게 녹는다는 증거는 후퇴 현상뿐만이 아니다. 키나이피오르 국립공원 내 30여 개 빙하에 얼음을 공급하는 하딩 아이스필드에서도 얼음 두께가 얇아지고 있다.
빙하 옆 산책로 초입의 1917년 표지판을 시작으로 1926년, 1951년, 1961년 위치를 각각 알려주는 표지판을 차례로 지날 때는 한 세기 동안 진행된 기후변화의 연대기를 눈으로 확인하는 듯했다.
숲속 한복판에 돌기둥으로 세운 오래된 휴게소 같은 건물에 도착하자 해나는 이 건물의 35년 전 모습을 담은 사진을 꺼냈다.
지금은 얼음 한 조각 구경할 수 없지만 사진 속 건물 옆까지 거대한 빙하가 뻗어있었다. 이 건물의 원래 용도는 숲속 쉼터가 아니라 빙하 전망대였다고 한다.



15분쯤 더 걸어 올라가 2005년 표지판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멀리 산등성이에서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거인의 혀처럼 아래로 길게 뻗은 엑시트 빙하가 드러났다.
현재 모습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찾았을 때와도 뚜렷하게 달랐다.
2010년 표지판에 도착하기 직전 해나가 당시 같은 장소에서 촬영된 사진을 보여줬다. 지금은 푸른 초목과 회색 암벽이 섞인 맞은편 산자락이 12년 전까지만 해도 상당 부분 두꺼운 빙하로 덮였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해나는 "지금은 나무와 돌만 있는 푸른 산이 예전에는 다 빙하였다"며 "불과 10년 사이에 이렇게 변한 것을 아직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빙하 해동의 주범은 기후 온난화다. 2018년 제4차 미국기후평가(NCA) 보고서에 따르면 알래스카에서 기온이 따뜻해지는 속도는 전 세계 평균의 2배로 그 중 북극권 지역은 평균치의 3배 이상이다.
등반 내내 괴롭힌 모기떼는 알래스카 온난화의 증거와도 같다. 예전 같으면 7월 말부터 사라지는 모기가 8월 말에도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해나는 "여기보다 북부와 내륙 지방이 더 심하다. 늪이 많고 온난화가 더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50년 알래스카의 연 평균 기온이 화씨 4도(섭씨 2.2도) 이상 오른다는 비관적인 시나리오대로라면 빙하는 더 빠르게 녹을 수밖에 없다.
NPS의 측정치를 보면 지난 13년간 엑시트 빙하가 약 701m 후퇴했다. 앞으로 이보다 더 빠르게 빙하가 녹는다면 손자 세대가 살게 될 30, 40년 뒤 빙하가 남아날 리는 없을 테다.
firstcircl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강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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