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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무라토프, 고르바초프 영정 들었다…추모객 수천명

91세를 일기로 별세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장례식이 3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엄수됐다. 추모객 수천 명이 몰린 가운데, 노보데비치 묘지로 가는 운구 행렬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영정 사진을 든 채 이끌었다.
3일(현지시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고인의 영정 사진을 든 채 운구 행렬을 이끌고 있다. EPA=연합뉴스
고인이 생전 절친했던 무라토프는 러시아 정부의 언론 탄압에 맞선 공로로 지난해 10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지난 6월엔 러시아가 침공한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자신이 받은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놔 노벨상 메달 경매 사상 최고가(1억350만 달러·약 1410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무라토프가 1993년 독립신문 노바야 가제타를 창간할 당시 자금을 지원했다. 이 신문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포함한 러시아 정부의 비리를 폭로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하다 지난 3월 러시아 당국의 탄압으로 폐간했다.

냉전을 평화적으로 종식한 공로로 19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역시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목숨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며 군사작전 중단을 촉구했다. 고르바초프의 마지막 길 메시지는 '평화'였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무라토프가 3일(현지시간)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영정 사진을 들고 운구 행렬을 이끌고 있다.AP=연합뉴스
시민 수천 명 추모 행렬..."정부 향한 슬픈 항의"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추모하기 위해 3일 러시아 시민들이 긴 줄을 서 있다. AFP=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 가디언 등에 따르면 고르바초프의 장례식은 이날 오전 모스크바에 있는 하우스 오브 유니언 필라홀에서 거행됐다. 고인의 외동딸 이리나와 두 손녀가 곁을 지켰다.

수천 명의 러시아인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길게 줄을 섰으며, 많은 이들이 고인의 관 앞에 헌화 후 눈물을 흘리며 떠났다고 NYT는 전했다.

고르바초프를 추모한 한 32세 청년은 "모스크바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그의 죽음은 민주주의의 죽음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20세 청년은 "그는 우리에게 햇빛(평화)을 주었는데, 이제 어둠만 있다"고 슬퍼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선임연구원은 고르바초프 장례식에서의 이같은 추모 열기에 대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한 평화롭고 슬픈 항의"라고 평했다.
3일 거행된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장례식. AFP=연합뉴스
國葬 안하고, 푸틴 불참
고르바초프의 장례식은 러시아 정부로부터 의장대와 경호를 지원받았지만, 국장(國葬)으로 치러지지 않았다. 또 푸틴은 앞서 지난 1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시신이 임시 안치된 병원을 찾아 헌화했지만, 바쁜 일정을 이유로 이날 장례식엔 불참했다. 2000년 집권한 푸틴은 고르바초프에 의한 소련 붕괴를 "20세기 최대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NYT는 2007년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서거 당시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푸틴 대통령이 국가 애도일을 선포한 것과 대조된다고 지적했다. BBC는 "국장이 아닌 점은 현 러시아 지도부가 고르바초프의 유산을 기리는 데 거의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시신이 임시 안치된 병원을 찾아 조문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3일 그의 장례식엔 참석하지 않았다. AP=연합뉴스
고르바초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동서로 갈랐던 '철의 장막'을 걷어내고 냉전을 평화적으로 종식한 주역으로 평가 받지만, 러시아 내 일각에선 소련의 몰락을 가져왔단 비판을 받았다.

이번 장례식에 참석한 외국 지도자는 친러시아 인사로 꼽히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거의 유일했다. NYT는 이를 두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잔혹한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러시아의 처지를 보여준 일"이라고 평했다. 러시아 측 인사로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 세르게이 스테파신 전 총리 등이 참석했다.

고르바초프는 당뇨와 심장 질환 등으로 인한 투병 끝에 지난달 30일 별세했다. 그는 1999년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라이사 여사 옆에 안장됐다.



임선영(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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