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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가와 외가 후손이 번갈아 벌초"…허례허식 없던 조선시대 추석 풍경

조성당일기(김택룡, 1616년 8월 15일).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 조선 추석 풍경 일기 공개
예절·법식을 지난치게 따지는 등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일 것 같은 조선시대 유림의 추석 풍경은 어땠을까. 조촐함은 없고, 번드레한 허례허식(虛禮虛飾)만 가득했을까.

한국국학진흥원이 5일 조선시대 추석 풍경을 담은 일기를 공개했다. 약 54만점의 민간 기록유산을 보유한 한국국학진흥원은 조선시대 선비 일기 780여점을 소장 중이다.

조선 선비 일기를 살펴보면, 성묘와 차례를 별도의 장소에서 나눠 지내지 않는 등 유림의 추석은 허례허식이 없고, 간소한 편이었다.

허례허식 없고, 간소한 명절 지내기
경북 예천군에 살았던 초간 권문해는 『초간일기』 1582년 8월 15일자에서 "용문에 있는 선조 무덤에서 제사를 지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산소에 올라갔다"고 적었다. 안동 예안 조성당 김택룡은 『조성당일기』 1617년 8월 15일자에서 "술과 과일을 마련하여 누이의 아들 정득, 조카 김형, 손자 괴를 데리고 가동(지명)의 선산에 올라 선영에 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고 적었다. 김택룡은 1616년 같은 날 일기에서도 "가동의 선조 무덤에 제사를 지내므로 직접 그곳으로 갔다"고 썼다.

경북 상주 청대 권상일은 1745년 8월 15일자 『청대일기』에 “시냇물이 불어나 건너기 어려워 산소에 성묘하러 갈 수가 없었다. 해가 저문 뒤에 손자 복인과 아우 상기가 술과 포를 조촐하게 갖추어 성묘하고 돌아왔다”고 기록했다.

한국국학진흥원 측은 "추석 차례를 가족과 친척이 산소에 한 번에 모여 지내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간소한 제물로 성묘를 지낸 모습도 일기에 쓰여 있다"고 설명했다.
추석을 앞둔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중부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굴비 등 제수용품을 구매하고 있다. 뉴스1
친가와 외가 구분도 없어
친가·외가·처가 구분 없이 차례를 지낼 만큼 보수적이지도 않았다. 김택룡의 『조성당일기』 1616년 8월 15일자에는 “가동에서 합제(여러 사람에게 함께 제사를 지냄)를 지냈는데, 영해의 외조부모도 함께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다음 해 추석에는 "산소에 가기에 앞서 집에서 외조부모 제사를 지냈고, 선조 무덤에서 차례를 지낸 후에는 제물을 나누어 영해 장인에게도 절을 올렸다”라고도 기록돼 있다. 안동 예안의 계암 김령은 『계암일기』 1621년 8월 15일자에서 “먼저 외가의 추석 차례를 지낸 후, 집의 사당에서 추석 차례를 올렸다”고 적었다.

추석 차례에 참석하는 친족 범위도 지금과 달랐다. 대구의 모당 손처눌은 『모당일기』1601년 8월 15일자에서 “오후에 조부와 부친의 묘에서 돌아왔다. 동생 희로가 두 사위를 데리고 와서 참석하였다”고 적었다.

추석 준비도 형편에 맞게 가족이 함께했다. 김택룡은 "조카 김형을 시켜 수록동에 있는 조부 묘소를 벌초하고 음식을 올리도록 했다", "누이의 아들 정득의 무리가 수록동에서 벌초했다"와 같이 친가와 외가 후손이 번갈아 산소 벌초와 차례를 맡았다고 적었다.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 내부 모습. 중앙포토
제례문화, 조선후기 보수화해
음식 마련도 서로 도왔다. 김택룡은 “가동의 제사에 범금과 임인이 술을 가지고 와 올렸다”, “포태(泡太, 두부를 만드는 데 쓰는 콩)를 보냈다. 내일 누님이 가동의 선조 무덤에 가려하시기 때문이다” 등의 추석 준비 일상을 일기에 기록했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형식에 치우친 차례 문화는 명절의 본래 취지에 맞지 않는 것이다. 조상을 기리며 함께 모여 수확의 기쁨을 누린다는 추석의 의미를 되살려, 가족 모두를 포용하는 추석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보수화된 제례 문화=보수화된 제례 문화는 조선 후기 가례의 보급이 그 출발점이다. 당시 양반 가문에 사당이 건립되고, 제례 순서와 제사상 음식의 조리법·배치가 정례화하면서다. 여기에 신분제 동요와 재산상속 문제 등이 맞물려 더 보수화된 제례 문화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주요한 가족 갈등 원인이 되기도 한다.



김윤호(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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