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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불로 조선인 태워"…간토학살 99년 희생자 추도

진상규명 촉구…고이케 도쿄지사 올해도 추도문 안 보내 "학살은 사실, 왜곡하거나 감추지 않아야"

"장작불로 조선인 태워"…간토학살 99년 희생자 추도
진상규명 촉구…고이케 도쿄지사 올해도 추도문 안 보내
"학살은 사실, 왜곡하거나 감추지 않아야"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남자 4∼5명이 장작불 위에서 조선인이 큰 대(大)자가 돼 움직이지 못하게 팔다리를 잡고 태우고 있었다. (중략) 조선인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이미 약해진 비명이었다. 그리고 살해된 조선인이 차례로 강에 던져졌다."
99년 전인 1923년 9월 1일 일본 수도권 일대를 강타한 규모 7.9의 지진(간토대지진) 직후 피난을 가던 시노하라 교코(당시 만 10세)가 목격한 조선인 학살 장면이다.
그의 목격담은 1일 오전 일본 도쿄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 있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 낭독됐다.

9·1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 실행위원회가 주최한 간토대지진 99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니시자키 마사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국가책임을 묻는 모임' 운영위원이 같은 단체 다나카 마사타카 사무국장의 추도사를 대독했다.
현장에 200명 넘는 이들이 모인 가운데 재일 한국인 무용가 김순자 씨가 99년 전 희생된 조선인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무를 선보였다.
한국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 추진위원회 손미희 공동추진위원장은 일본 정부가 지금이라도 간토학살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진심으로 희생자를 추도하라고 촉구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는 올해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았다.
그는 취임 첫해인 2016년에는 추도문을 보냈으나 2017년부터는 보내지 않았다.
이노세 나오키, 마스조에 요이치 등 전임 도쿄지사들은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별도의 추도문을 보냈다.
심지어 '원조 극우'로 불린 이시하라 신타로(1932∼2022)도 도쿄지사 재임 중 추도문을 보낸 점에 비춰보면 고이케 지사의 대응은 매우 이례적이다.
고이케 지사는 도지사로서 도쿄도위령협회가 주최하는 추도행사에서 "희생된 모든 분을 추모한다"고 표명하고 있기 때문에 조선인을 위한 개별 행사에 따로 추도문을 안 보낸다는 입장이다.
간토지진 희생자는 지진이라는 자연재해로 목숨을 잃은 이들이다.
그러나 9·1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 실행위는 지진을 겪고 살아남았음에도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살해된 이들을 추모한다.
목숨을 잃은 과정이 전혀 다른데 이를 뭉뚱그리고 조선인을 위한 별도의 추도문을 거부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등 우익 사관을 추종하는 행보를 보인 고이케 지사가 조선인에 대한 추도문을 거부한 것은 내심 학살을 부정하려는 행동으로 풀이된다.
2017년 9월 26일 열린 도쿄도 의회 본회의에서 오야마 도모코 일본공산당 의원으로부터 '조선인 학살이라는 이렇게 명백한 역사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고이케가 내놓은 답변에서 그의 역사 인식이 엿보인다.
당시 고이케 지사는 간토대지진 직후 희생된 조선인을 "도쿄에서 벌어진 큰 재해와 그 후 이어진 여러 가지 사정으로 불행하게 돌아가진 모든 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조선인이 학살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으며 "무엇이 명백한 사실인지에 관해서는 역사가가 밝힐 일"이라고 말했다.
고이케 지사의 추도문 거부에 관해 다나카 사무국장은 "조선인 학살은 역사가가 밝힐 것도 없이 역사적 사실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조사와 연구에 기반을 둔 것이며 부정할 수 없다"고 1일 대독된 추도사에서 지적했다.
그는 "도쿄지사와 일본 정부는 과거를 진지하게 마주할 용기를 가지면 좋겠다. 그것이 일본의 배외주의를 극복하는 사회 인식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겠냐"고 당부했다.
고이케 지사와 같은 정치인이 간토 학살의 역사를 직시하지 않는 것에 대해 추도식에 온 도쿄 시민은 우려를 표명했다.
와타나베 쓰무기(49) 씨는 정치인들이 학살이 있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면서 "학살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므로, 그 사실을 왜곡하고 감추거나 없었던 것으로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 재일조선인 집단 거주지인 우토로 지구에서 방화 사건이 벌어지는 등 특정 민족에 대한 혐오감이 범죄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매우 염려스럽다"며 "과거의 것을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으면 그런 상황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도식 현장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간토학살의 희생자가 6천명에 달한다는 분석을 부정하는 우익단체가 기미가요를 틀어놓고 집회를 하고 있었다.
혐한 감정을 부추기는 행동이나 민족 차별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근처에서 이 단체의 행동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1923년 9월 1일 규모 7.9의 간토대지진 직후 일본 각지에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방화한다'는 등 조선인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는 유언비어가 유포됐으며 재일 조선인과 중국인, 일본인 사회주의자 등이 일본인 자경단, 경찰, 군인에 의해 조직적으로 학살됐다.
희생자의 규모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독립신문에는 희생자가 6천661명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이보다 많다는 분석도 있다.
sewon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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