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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론] 나는 법무부장관을 존경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아니, 미국의 갈랑드 법무부 장관 말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스파이법 위반이나 내란 음모죄로 기소해야 하는 가에 대해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국가 안위가 걸린 기밀 서류를 은닉했고 민주적 선거의 결과를 뒤집으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만약 연방 대배심이 기소를 결정한다면 의도하지 않게 트럼프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돕거나 정치 내전이 벌어지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붕괴되어가는 미국 공화국의 제도적 기반을 지키기 위해 트럼프를 기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작의 끝이 어디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가 오직 공정한 법의 적용이라는 법치주의 가치에 따라 일관되게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누가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갈랑드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한동훈 장관은 지난 미국 출장길에 아쉽게도 갈랑드 장관을 만나지 못했다. 만약 그를 만났다면 갈랑드 보유국과 아닌 국가의 국격의 차이를 뼈저리게 절감했으리라 생각한다. 한때 대한민국도 갈랑드 스타일의 법무부 장관들을 보유한 자랑스러운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민주당의 내로남불과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국민의 힘 덕분에 대한민국은 갈랑드 보유국을 부러워해야 하는 시대로 퇴행하고 있다. 그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첫째, 갈랑드는 한동훈과 달리 언론에 자주 나와 온갖 분노와 조롱을 내뱉지 않는다. 왜냐하면 ‘복수는 나의 것’이 아니라 ‘법의 공정한 적용이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즈(FT) 8월 17일자 기사에 따르면 그는 취임 직후 법무부 내부 회의에서 민주당을 위한 법과 공화당을 위한 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의 언어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는 평생에 걸쳐 내로남불과 싸워왔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가장 대법관에 어울리는 인물 1순위이자 초당적 지지를 받아왔다. 하지만 공화당의 야비한 지도부는 어처구니없게도 293일간 대법관 인준 청문회 지연 음모를 꾸몄고 결국 그는 대법관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2020년 바이든의 당선으로 반전 드라마가 시작된다.
 


이제 법무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극적인 상황은 한국에서 흔한 복수극의 2막으로 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분노의 감정 대신에 합리적 논증과 신중함으로 오직 법의 공정한 적용에만 힘을 기울이고 있다. 미디어에서의 화려한 스펙터클 대신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치 견고한 건축물의 벽돌을 차근차근 쌓듯이 증거를 신중히 탐색하고 축적하는 갈랑드의 일상은 지루하기까지 하다. 오죽하면 일부 진보파들이 왜 아직까지 트럼프를 처벌하지 않는 가 토로하며 강한 압박을 가할 정도였다.
 
둘째, 갈랑드는 한국의 그간 검찰의 일부 관행과 달리 별건 수사와 영장 남발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꽃인 ‘듀 프로세스’(적법한 절차)의 신중한 행사로 유명하다. 사실 그는 이번 트럼프 거주지 압수수색 이전에 다양한 절차들을 거쳤다. 국가기록원의 자료 반환 요청에 이어 트럼프 측 변호사와의 협상 및 시민들로 구성된 연방 대배심의 소환장 요구 등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 갔다. 하지만 트럼프 진영이 거듭된 거짓말로 기밀 서류를 은닉하자 최후의 수단으로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그는 이 압수수색 후 발표한 성명에서 “모든 미국인은 법의 공정한 적용과 적법한 절차, 그리고 무죄 추정의 원칙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그의 흠잡을 데 없는 미 연방수사국(FBI) 지휘 과정은 심지어 트럼프 지배 정당 내에서 조차 내부 분열을 만들어 내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은 주변에 갈랑드와 같은 가치와 인격을 가진 이들을 전국에 걸쳐 무수히 보유하고 있다. 제 2, 제 3의 갈랑드가 있는 한 미국의 민주주의는 비틀거리면서도 붕괴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기간에 ‘트핵관’(트럼프 핵심 관계자)인 윌리암 바 법무부장관 등이 온갖 공작으로 법무부와 FBI를 정치적 도구로 타락시키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한국의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들도 신뢰를 복원해 집권하고 싶으면 해법은 간단하다. 근사하게 보이는 강령 만들기 이전에 기본을 우선 충실히 지키면 된다. 가치와 인사에서 누가 보더라도 공정한가? 시민들로부터 신뢰자본이 축적되어 가는가? 한동훈 장관과 내로남불, 법치주의 논쟁에서 승리할 공평함과 내공을 가진 이들이 도처에 있는가? 우선 이것부터 축적해 놓고 권력을 달라고 했으면 좋겠다.
 
아마 당분간 갈랑드 장관은 한동훈 장관이나 의원들이 다시 방미해도 만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대신에 갈랑드의 법치주의 가치를 정확히 공유하고 있는 프릿 바라라 전 뉴욕 남부 연방지검 검사장 인터뷰는 어떨까? 그는 한국에도 번역된 책,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에서 이렇게 일갈한다.
 
“절차상 허용된 권한을 무조건 최대로 행사하는 리더는 독재자가 될 것이다.”

안병진 /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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