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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현장을 가다] "거대한 미륵불이 온몸을 드러낸 듯했다"

3개월 폭염·가뭄에 러산 대불 받침대 밑바닥 드러내 풍부한 수력발전 쓰촨성에 용수 부족으로 전력난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거대한 미륵불이 온몸을 드러낸 듯했다"
3개월 폭염·가뭄에 러산 대불 받침대 밑바닥 드러내
풍부한 수력발전 쓰촨성에 용수 부족으로 전력난

[※ 편집자 주 =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 세계적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기의 수위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북미, 유럽, 아시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글로벌 특파원망을 가동해 세계 곳곳을 할퀴고 있는 기후위기의 현장을 직접 찾아갑니다. 폭염, 가뭄, 산불, 홍수 등 기후재앙으로 시름하는 지구촌 현장의 특파원 리포트를 연중기획으로 연재합니다.]



(쓰촨성=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 거대한 좌상 미륵불이 마치 온몸을 드러내는 듯했다.
25일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높이 71m에 달하는 '러산 대불'(樂山大佛)의 모습은 그랬다. 높이가 족히 10m는 넘어 보이는 석불 받침대의 밑바닥까지 완전히 드러났다.
주변에 있는 식당의 주인은 "민장(岷江)이 넘치는 것은 걱정했어도 강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배가 못 뜨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중국 서부 쓰촨성 성도(省都) 청두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러산 대불은 거대한 암석을 새겨 의자에 앉아 세상을 멀리 내려다보는 형상으로 조각된 좌상 미륵불이다. 높이가 71m에 달한다.
당나라 개국 원년인 713년 제작이 시작돼 90년 만에 완성했다는 세계 최대 석불이다.





'대륙의 젖줄'로 불리는 양쯔강 상류의 큰 물줄기인 민장(岷江)과 칭이장(靑衣江), 다두허(大渡河)가 합쳐지는 지점이라 어지간한 가뭄에는 물이 마르는 일이 없는 곳이다.
그런데 러산 대불 앞을 유유히 흐르는 강의 모습은 없었다. 강 중간에 모래와 자갈 퇴적물이 바닥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현지 관광 가이드는 "3개의 강이 합수하는 지점이라 수량이 풍부한 곳"이라며 "대불의 받침대 바닥까지 드러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석달 가량 지속된 폭염과 가뭄으로 수위가 평소보다 8~10m 낮아져 민장 상류에서 러산 대불 앞까지 오가는 유람선 운항은 중단됐다.
한 주민은 "2년 전 홍수에 이어 평생 겪은 적이 없는 가뭄까지 닥쳤다"며 "변덕스러운 자연의 재앙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2년 전 홍수 땐 대불의 밑바닥까지 강물이 차올랐다.




이날 쓰촨의 낮 최고기온은 44도를 기록,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지난 6월부터 30도를 웃돌던 폭염은 이달 들어서 40도를 넘기는 것이 예사가 됐다.
농작물들은 타들어 가고, 먼지가 풀풀 나는 황무지처럼 변한 농지가 많았다.



쓰촨성 네이장현에서 만난 60대 농민은 "옥수수, 단콩 등 밭작물이 자라기도 전에 말라비틀어졌고, 겨우 열매를 맺은 것도 내다 팔 수 없을 정도로 품질이 떨어졌다"며 "수확량이 예년보다 40%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예년 같으면 밭벼를 수확하고, 채소를 파종해야 하는 시기인데 씨를 뿌려도 나지 않고, 설령 나더라도 자라지 않으니 후기 작물 재배를 포기하고 놀리는 땅이 많다"며 "비가 오기만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한숨을 지었다.
50대 후반의 종자 판매상은 "태어나서 이런 폭염과 가뭄은 처음"이라며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해 종자가 아예 팔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쓰촨성에서 이번 가뭄으로 48만㏊의 농작물이 피해를 봤다.
고온 건조한 날씨로 인해 규모가 큰 산불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가뭄은 쓰촨성에 심각한 전력난을 불러일으켰다.
시짱(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해 쓰촨-충칭-후베이-장쑤-상하이를 거쳐 동중국해로 빠져나가는 창장(양쯔강)의 수위가 낮아졌다.
풍부한 용수 덕분에 전력의 80%를 수력발전으로 생산하고, 넘치는 전력을 2천800㎞ 떨어진 저장·장쑤성에도 공급해 '중국의 전력 기지'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됐다.
청정에너지 생산 거점이라고 자부했지만, 극심한 폭염과 가뭄 여파로 심각한 물 부족에 직면하면서 모든 생산시설 가동을 중단하고 화력발전을 15% 늘리는 극약 처방을 내놓는 처지가 됐다.
쓰촨성의 전력난은 전세계 전기차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쓰촨성은 중국 내에서 리튬과 태양광 배터리 산업의 중심지다. 쓰촨성 내 도요타, 폭스바겐, 지리 등 완성차 업체들과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CATL(닝더스다이)이 최근 전력 공급 중단으로 조업을 중단했다.



상하이의 와이탄에 버금가는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던 쓰촨성 성도 청두는 '어둠의 도시'로 변했다.
번화가 춘시루와 위안양타이구리는 북적거리는 인파가 아니라면 낙후한 변방의 시골을 연상케 할 정도로 밤거리가 어두웠다.
지난 15일부터 전력 사용을 제한하면서 대형 전광판 사용이 전면 중단되고, 가로등도 절반만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역의 자동 발매기 역시 3분의 2는 작동되지 않고 있으며, 호텔들은 객실 온도가 25도 밑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설정해놨다.
중국 국가기상대는 이달 말이나 내달 초에는 폭염이 수그러들 것이라고 예보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홍수와 폭염·가뭄이 번갈아 가며 반복되는 기상 이변이 고착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청두의 한 주민은 "빈번하게 발생하는 자연재해를 보면서 개발과 고도성장만 추구해온 것에 대한 자연의 경고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쓰촨성은 폭염과 가뭄으로 피해를 본 주민이 600만명에 달하고 35억위안(약 6천800억원)의 재산 피해가 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pj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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