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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의 실패 처세학

 이사의 실패 처세학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역사상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사람을 질못 써서 패가망신하고 나라를 한순간에 망하게 한 사건들은 수를 헤아리기 힘들게 많다. 이른바 간신이라 불리는 별종들. 지금 정치의 계절을 맞아 권력에 빌붙어 제 뱃속을 채우고 나라를 망치게 하는 간신들이 정치판을 흐려놓고 있다. 욕망에 타오르는 간신은 집요하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 많아도 사나운 개 한 마리만 있으면 조직이 무너지는 법이다. 사나운 개는 빨리 내쳐야 한다. 하지만 하나의 도둑을 열이 못 막듯, 간신은 때려잡을 존재 이전에 멀리해야 한다. 그걸 볼 안목도 실력이다. 가까이 왔다면 간신만의 탓은 아니다. 어차피 간신은 생기고 동시에 간신은 내가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안목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나라와 백성을 해치는 간신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꼽았다. “통치자로서 제거해야 할 인물에는 다섯 가지 유형이 있는데 첫째가 마음을 반대로 먹고 있는 음험한 자이고, 둘째가 말에 사기성이 농후한데 달변인 자이고, 셋째가 행동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고집만 센 자이고, 넷째가 뜻은 어리석으면서 지식만 많은 자이고, 다섯째가 비리를 저지르며 혜택만 누리는 자이다. 이 다섯 가지 유형의 자들을 보면 모두 말 잘하고 지식 많고 총명하고 이것저것 통달하여 유명한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진실이 없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이런 자들의 행위는 속임수투성이며 그 지혜는 군중을 마음대로 몰고 다니기에 충분하고, 홀로 설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이런 자들은 간악한 무리의 우두머리라 죽이지 않으면 큰일을 저지른다. 꼭 죽여야 할 자는 낮에는 강도짓을 하고 밤에는 담장을 뚫고 들어가는 그런 도둑이 아니다. 바로 나라를 뒤엎을 그런 자를 죽여야 하는 것이다.  
 
이사(李斯)-. 그는 진왕 시절부터 영정을 보필해 천하쟁패를 가능케 한 최고의 책사였고, 시황제 치하에서는 승상으로서 나라의 경영전략을 수립했다. 하지만 이사는 시황제의 유서를 위조해 호해를 황제로 추대하는 역신의 길을 선택했다. 그 최후는 비참했다. 함께 역모를 꾸민 환관 조고의 음모로 허리가 잘리는 요참형을 당했다. 그의 가족과 식솔 모두 죽어 이사의 후손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이사는 사상이나 행적으로 볼 때 존경할 만한 인물은 아니다. 그의 생은 한마디로 ‘권력을 향한 집념의 행군’이었다. 그는 권력을 잡고 그 권력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책략과 폭정을 일삼는 등 간신을 넘어 역신의 길을 선택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에게 배울 게 있는 것이다.  
 
이사는 위대한 사상가 순자에게 유가를 배우고 진나라로 떠났다. 당시 진나라는 장양왕 치세였지만 실권자는 여불위(呂不韋)였다. 여불위는 장양왕을 왕위에 올린 절대 공신이자 천하제일의 거부였다. 영리하고, 정세판단이 빠르고, 꾀가 있는 이사는 여불위의 눈에 들기 시작했다. 기원전 247년, 장양왕이 죽고 그의 아들인 13세의 영정이 왕위에 올랐다. 여불위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세간에는 ‘여불위가 영정의 모후인 선태후와 통정해 영정을 낳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불위는 어린 왕의 옆에 감시병이자 시종을 두었다. 눈치 빠른 이사가 적임이었다. 여불위는 이사를 왕의 시종인 낭관으로 천거했다. 이사는 드디어 실세 여불위를 등에 업고 최고 권력자인 왕의 측근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한 것이다.  
 
진왕은 이사를 신임했다. 그를 다른 나라에서 온 대신 즉 ‘객경(客卿)’으로 임명하며 정위 직책을 맡겼다. 정위는 비록 승상이나 어사대부보다 직급은 낮지만 법의 운용과 적용을 담당하는 직책으로 실세만이 임명되는 자리였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이사에게 위기가 닥친다. 바로 한비의 등장이다. 한비는 이사와 순자 문하의 동문이다. 그가 법가의 사상을 정리한 책 〈한비자〉는 당대의 베스트셀러였다. 특히 진왕 영정은 이 책의 열렬한 애독자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비자〉의 법가는 ‘군주의, 군주에 의한, 군주를 위한’ 이론서였다. 진왕 영정은 “내가 한비를 만날 수만 있다면 지금 죽어도 후회가 없을 것 같다”고 할 정도로 한비에게 매료되어 있었다. 그가 진왕에게 온 것이다. 이사는 전전긍긍했다. 실력에서 한비를 당할 수 없는 이사의 유일한 무기는 바로 모략과 이간질이었다. 이사는 왕의 측근인 요가와 담합했다. 그리고 진왕 영정에게 한비를 모함했다. 진왕 영정은 이사의 말을 들었다. 한비는 영문도 모르고 옥에 갇히고 말았다. 한비는 진왕에게 면담 신청을 했으나 이사가 진왕에게 올라가는 모든 보고를 막았다. 그리고 이사는 한비에게 독약을 보내 자살을 강요했다. 한비는 몇 번에 걸친 진왕 면담 신청이 좌절되자 자신의 운명을 원망했다. 그리고 독약을 먹고 죽었다. 이사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즉 권력욕으로 동문수학한 한비마저 죽일 정도로 잔인하고 치밀한 성품이었다.기원전 221년,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했다. 진왕은 시황제가 되었다. 이사는 황제의 최측근으로 부상했다. 그는 천하 경영 계획을 수립했다. 우선 군현제였다. 반대도 거셌다. 승상 왕관, 어사대부 풍겁 등의 중신들이 주나라 봉건제를 본받자고 시황제에게 권했다. 이사는 “망한 나라의 제도를 본받을 필요가 없다”고 시황제를 설득해 군현제를 완성했다. 군현제는 행정단위를 군과 현으로 나누는 제도이다. 진나라는 36개 군을 두고 그 아래 현을 두었다. 군에는 군수, 군위, 군감을, 현에는 현령, 현위, 현승이 파견되었다. 이들은 각기 행정, 군사, 감찰을 담당해 권력을 분리했다. 이들 관리는 모두 황제가 임명했다. 시안의 궁정에서부터 시골의 작은 마을까지, 시황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통치 시스템을 완성한 것이다. 기원전 210년 7월, 시황제는 순행 도중 사망했다. 시황제의 곁에는 승상 이사, 환관 조고 그리고 시황제의 막내아들 호해가 있었다. 시황제는 유서를 남겼다. ‘북방에 가 있는 장남 부소는 3만 대군을 몽염에게 맡기고 급히 와 내 유해를 맞으라. 그리고 장례를 주관하고 차기 황제에 등극하라’였다. 간특한 조고는 음모를 꾸몄다. 그는 호해를 설득하고 이사에게 달려와 시황제의 유서를 조작하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이사도 조고의 끈질긴 설득에 뜻을 접었다. 유서는 ‘부소는 불효하고 몽염은 불충하니 즉시 자결하고 내 후사는 호해가 잇는다’로 조작되었다. 부소는 효성스럽게도 자살하고 호해가 진나라의 2세 황제로 등극했다. 이사와 조고는 협력했다. 하지만 조고는 이사를 제거하려고 마음먹었다. ‘권력은 나눌 수 없다’는 역사의 진리가 여기서도 적용된 것이다. 인품과 능력 그 어느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2세 황제는 그야말로 흥청망청했고 정사는 모두 조고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다. 조고의 권력은 그야말로 황제 이상이었다. 유일한 견제 세력은 이사였다.  
 
기원전 208년 이사는 우승상 곽거질, 장군 풍겁 등과 함께 황제에게 아방궁 축성 중지를 건의했다. 하지만 이들의 상소는 황제에게 전달조차 되지 않았다. 조고는 이미 황제의 옆에 인의 장막을 친 것이다. 이에 곽거질, 풍겁은 자결하고 이사는 재차 상소를 올렸다. 조고는 이사를 모함했다. 이사는 옥에 갇히고 모진 고문을 받았다. 이사는 결국 ‘초나라와 내통해 반란을 꾀했다’는 죄를 시인했다. 황제는 이사에게 허리를 잘라 죽이는 요참형을 명령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다. 이사가 한비에게 저질렀던 모함과 악행이 그대로 이사에게 닥친 것이다. 함양 시장 바닥에서 이사는 온 가족과 함께 요참형을 당했다. 이사는 둘째 아들에게 “너와 함께 누런 개를 끌고 고향인 초나라 상채 동문에서 토끼를 사냥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겠구나”하고 울었다고 전해진다. 이사가 죽자 조고의 세상이 되었다. 조고가 사슴을 바치면서 황제에게 “폐하, 이것이 바로 말입니다”라고 했다. 황제는 아무리 보아도 사슴이었다. 주위에 물었다. “이것이 말인가, 사슴인가?” 주위에 있던 대신과 시종들은 모두 한 대답을 했다. “폐하, 이것은 말입니다.” 그들에게 황제는 조고였던 것이다. 역사는 이 일화를 ‘지록위마(指鹿爲馬)’라 하여 무능한 군주와 간악한 간신의 모습을 기록했다. 진나라는 급격히 멸망의 길을 걸었다. 각처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장군들과 대신들은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길을 걸었다. 시황제가 만년을 설계했던 제국은 불과 15년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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