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파도타기
고국의 광복 8월을 맞이하며 지나온 많은 이야기를 손자에게 하고픈 여름밤이다.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고요 속 긴 역사의 자부심을 이어온 할아버지의 나라에 대해서다. 이국땅에서 태어나 겪어보지 않은 3세대들에게 전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손자는 어릴 적 파도타기를 좋아했다. 몰려오는 파도를 리듬 타듯 올라타며 물살에 묻히면서도 보드에 엎드렸다. 밀려오는 푸른 등줄기에서 아찔한 속도를 즐겼다.
파도는 대양에서 중력, 바람, 밀물과 썰물의 영향에 의해 하얀 포말을 그리며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밀 당긴다. 서퍼(surfer)는 파도의 파동, 바람의 방향에 따라 앞을 향해 나가거나 이동한다. 널(board)을 이용하여 파도 위에 올라야 한다. 무서워하지 않고 두려움을 떨쳐버린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는 손자의 모습은 긴장하는 기색이 없다. 꼬마는 일찍이 모험의 매력을 알았을까. 새로운 곳을 향하기 위해 먼저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것을 자연스레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손자는 방학 동안 태평양 한가운데 마우이섬 Hokiokio에서 도전해본다. 첫 단계로 균형을 잡고 서야 하는데 양팔과 다리를 벌려야 밸런스를 잡기 쉽다고 한다. 이때 아래를 내려다보지 말고 눈은 파도를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려면 앞으로 다가오는 상대를 직시해야 한다고 할까. 적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생의 깊이에서 오는 강한 고통을 감수해야 옳고 풍성한 삶을 이룰 수 있다. 의를 행하기 위해 나아가는 세상 속으로의 도전을 통한 극복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넓은 바다는 역동적인 한 모멘트로 감정을 가진 생명체인 듯싶다. 달라지는 날씨에 의해 하늘과 바다는 한마음 되어 서로를 전한다. 찬란한 햇빛을 반사해 환희로 가득 차다가도 갑자기 어두워져 검정빛으로 분노하며 비를 쏟아내기도 한다. 마치 인생의 항해처럼. 서퍼는 이런 변화무쌍한 날씨를 뱃머리에서 부딪혀 맞아내는 것이다.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선택해 여러 상황과 마주하며 가는 것이다. 우리 삶은 창의적인 타기(ride)를 통해 숭고하고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다.
거친 파도가 몰려온다. 높은 산 같은 물이 밀려올 때도 있다. 집채보다 더 큰 파도가 벽처럼 덮친다면. 쓰나미를 다룬 영상을 보며 공포에 싸인 적이 있다. 위기를 맞는 순간에 오싹한 스릴, 소름 끼치는 공포를 이겨내는 노력과 작업이 필요하다. 오히려 더 큰 속도에 도전해보자.
구름 속에서 얼굴 내민 달빛이 백사장을 고요하게 비추고 있다. 뜨겁게 타오르던 대지의 열기가 바닷바람에 식어가며 파도도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적막 속에서 밀려오는 파도는 모래사장에 흡수되는 듯하지만 되돌아 넓은 세계로 나간다. 역사의 흐름과 진리는 그렇게 반복해 왔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에 맞추어 할머니는 읊조린다.
타 문화 속의 소수민족으로서 새로이 창조된 고유하고 풍부한 숨결을 숨 쉬며 자라나거라. 파도를 올라타는 기상으로.
이희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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