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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빈 스컬리를 추모하며

‘LA다저스의 목소리’였던 빈 스컬리의 부음 뉴스를 접하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곧장 응접실로 가 그의 친필 사인이 있는 야구공을 움켜 잡았다. 고인은 내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명이며 롤 모델이었다. ‘67년간의 야구중개를 끝내고 결국 돌아가셨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 한번 그를 생각하게 됐다.
 
그와의 첫 대면은 다저스 야구장의 미디어 관계자용 화장실이었다. 큰 체격에 발그스름한 얼굴, 노랗고 빨간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옆에서 “하이 젠틀맨”이라고 인사했다. 목소리만으로도 빈 스컬리임을 알 수 있었으나 당황했는지 나도 “하이”라고만 답하고 더 이상의 대화를 못 했다. 그 후 그의 중계실로 찾아가 그의 야구 중계 방법과 방송 철학 등을 들었다. 그는 짧은 시간에 함축된 말을 표현하기 위해 매일 시를 읽는다고 했다. 그의 어휘 구사력을 닮아보고 싶어 그 후 나도 30여년 동안 열심히 시를 읽고 있다.  
 
고인은 훌륭한 인품도 갖췄다. 젊은 시절엔 담배를 끊기 위해 담뱃갑 옆에 항상 가족사진을 두었다고 한다. 가족의 얼굴이 눈에 어른거려 집었던 담뱃갑을 다시 놓으면서 금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인의 은퇴식에서는 ‘wind beneath my wing’(내 날개 아래서 바람이 되어 나를 날개해주었다는, 그래서 너는 나의 영웅이라는…)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수십 년 전 이 노래를 테이프에 담아 아내에게 생일 선물로 주었었다고 한다. 은퇴식에서 이 노래를 튼 것은 그동안 내조를 아끼지 않은 아내의 수고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다. 그의 로맨틱하면서도 서민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타인에 대한 겸손과 공정, 배려심도 있었다. 중계방송을 할 때는 상대 팀도 홈팀과 똑같이 응원해주었으며 박찬호 선수처럼 외국에서 온 선수들 ,소수민족 출신 선수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였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인의 집 정원 공사를 했던 친구가 전한 일화도 있다. 고인은 공사하는 며칠 동안 매일 손수 운전하고 나가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사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그의 이런 모습에 모두가 감동했다고.
 
고인의 명성에 걸맞게 다저스 구단에서는 동상 건립을 추진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인은 극구 사양하며 본인은 유명 방송인보다는 올바르게 살다 간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고 한다.  
 
우리는 살면서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고인은 존경심이 우러나오게 하는 사람이었다.  
 
다저스 팬들에게 빈 스컬리의 음성이 없는 중계방송은 크리스마스날 산타클로스가  빠져버린 느낌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모든 행적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좋은 사람으로, 존경받는 사람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존경하는 빈 스컬리씨의 명복을 빈다.

최청원 /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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