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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필립스(Philips)의 성공 신화

전자제품 기업으로 유명한 필립스(Philips)는 1895년 1월 네덜란드의 아이든호븐에서 출발했다. 미국의 토머스 에디슨이 1879년 10월 성공적으로 백열등을 발명해 1881년  프랑스 파리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독일이 에디슨의 특허를 취득해서 500만 마르크의 자금으로 1883년 독일-에디슨 회사를 설립한 이후였다.
 
필립스의 창업자인 제럴드 필립스는 수년간 런던에서 독일 공장들을 위한 대리점 역할 같은 일을 했다. 이후 1889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서는 전구 제품 등의 연구 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전구용 탄소섬유 제조에 성공하고 1890년 전구용 탄소섬유의 대량생산을 위한 제조공장 준비에 착수했다.
 
그렇게 공장을 설립한 후 전국 생산에 나섰다. 1892년 필립스의 연간 전구 생산량은 1만1000개,1893년엔 4만5000개로 늘었다. 그리고 1895년에는 하루 생산량 500개로 급증했다. 아이든호븐의 공장시설은 규모가 작았지만 영국, 프랑스 등으로부터의 주문이 늘었다. 하지만 가장 주문량이 많았던 것은 독일이었다.    
 
필립스의 경영을 진두지휘한 것은 제럴드의 동생인 앤톤 필립스였다. 그는 넘치는 에너지로 새벽 5시에 일어나 시장개척과 제품효율을 높이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기업의 경영자였지만 3등급 기차를 타고 출장을 다녔고 식사도 저렴한 가격에 해결하는 등 비용을 아꼈다. 앤톤은 독일을 방문할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규모의 현대적인 산업 시설이  아이든호븐의 필립스 공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앤톤과 형 제럴드는 필립스가 유럽에서는 물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특히 앤톤보다 16살이 많은 형 제럴드는 기술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고 혁신적인 제품개발을 통해 국제 경쟁에서 필립스의 위치를 확고하게 다지는 일에 집중했다.    
 
필립스는 일찍이 판매(Sales)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1907년 기술작업부서와  영업담당부서의 업무를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직원들을 훈련했다. 이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새로 건물을 신축하기도 했다. 또한  필립스 제품이 판매되는 러시아,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 등에서 대표 역활을 담당할 직원을 양성하는데도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특히 앤톤은 출장시 이들을 동행시켜 협상 능력은 물론 그  지역 시장 상황도 정확히 파악하도록 했다.  
 
필립스는 금속필라멘트 전구(Lamp) 제조에도 성공했다. 1909년의 금속필라멘트 전등 생산량은 156만개, 1911년에는 412만개로 증가했다. 이 시기 제품 결함 비율이 6.4%에 달했으나 기술의  향상으로 개선했다.  금속필라멘트 전구는 과거 전구에 비해 밝기가 3배나 됐다. 이처럼 탁월한 기술력과 앤톤의 마케팅 전문성은 필립스를 20세기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시키는  저력이 됐다.    
 
필립스가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전등이었으나 1951년에는 라디오, 텔레비전 생산을 시작했고 이후 새로운 제품들로 분야를 확대했다. 2차 세계대전 전에는 면도기도  인기가  높았으며  냉동기, 마이크로 오븐, 컬러 텔레비전 및 카메라 등도 각광을  받았다. 이후 필립스는 휴대용 소형 레코드, 비디오 레코드 제품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김기천 / LA카운티 중소기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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