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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잊어버린다는 것은 축복이다

십여 년 전 일이다. 이사 온 집, 뒤뜰 모퉁이의 모양새 없는 아름드리나무 한그루가 눈에 거슬려 없앨 기회를 엿보고 있던 중 마침 아내가 교회 행사로 집을 비운다는 낭보(?)를 접했다. 떠밀다시피 버스 정류장까지 모셔다드리는 친절을 과시한 뒤 곧장 홈디포에 들러 전기톱을 빌렸다.
 
어디를 어떻게 톱질할까 생각하다 그루터기는 너무 굵어 힘에 부칠 것 같아 가슴높이 부분을 자르기로 하고 무섭게 회전하는 톱날을 갖다 대자 사방이 휘날리는 톱밥으로 정신이 없다. 잘린 나무는 톱날 방향으로 넘어지기 마련이다. 먼저 넘어질 방향으로 톱질하다 적당한 순간 반대편을 가격하면 원했던 방향으로 넘어질 것이라고 계산하니 희열이 넘쳤다. 그런데 인간의 계산은 항상 오류가 동반하기 마련인가 보다. 이날이 그랬다. 한참 톱질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큰 나무가 위아래로 죽 갈라지며 몸통 전체가 반대방향으로 밀리며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순간의 아찔함 가운데도 얼굴 부분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고개부터 깊이 숙인 채 한쪽 어깨를 나무쪽으로 뒤 밀었다.
 
그리고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조용히 어깨를 움직여본다. 아프지 않다. 분명 어깨로 넘어지는 나무둥치를 막았는데 하며 손을 보니 여전히 톱을 움켜쥐고 있다. 대신 톱날 부분은 나무둥치에 깔려 처참하다. 이날 이후 눈만 감으면 가상상황 즉, 단 몇 센티만 내 어깨가 나무쪽으로 다가갔었다면 단 몇 인치만 톱을 쥔 내 손이… 하며 끔찍했던 순간의 파편들이 트라우마가 되어 밤잠을 괴롭혔다.
 
사실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그때의 상황을 묘사함은 시간이라는 치료제 덕택이다. 시간은 놀랍게도 뇌의 신경 수준에 영향을 끼치며 몸과 마음에 남겼던 흔적들을 조금씩 지워 없애는 모양이다. 그렇다 보니 지금은 당시의 위험을 거울삼아 나무 한 그루를 자르는데 1시간을 예상한다면 2~3시간 이상의 안전조치를 강구하며 도움의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신이 사람에게 준 선물 중 특별한 것은 ‘잊혀짐’이 아닐까? 세월호 사건과 같은 악몽도 시간이 지나면 잊을 수 있다는 것은 사람만이 갖는 축복일 것이다. 물론 기억을 떨치지 못하고 어렵게 사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 이름하여 ‘과잉 기억 증후군’ 환자로 전 세계에 80여 명이란다. 이분들은 지나간 일들이 마치 녹화영상처럼 생생하게 살아 기억케 함에 더해 기쁨, 슬픔, 위험, 우울한 감정까지라니 안타깝다.
 
‘신은 죽었다. (Gottisttot.)’ 라는 독설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프레드리히 니체는 그의 저서 ‘도덕의 계보’에서 ‘인간은 본성상 망각의 동물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는 ‘망각은 단순한 타성력이 나이성 능력의 부재가 아니라 삶을 기능하게 하는 하나의 동력이자 적극적인 장치다’라면서 ‘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을 수 있으며 잊어버림이 있기 때문에 현재에 이르러 행복할 수 있다’는 멋진 해설까지 곁들였다.
 
성경 인물 가운데 ‘므낫세’라는 사람이 있다. 애굽에 종으로 팔려왔으나 대기만성하여 제국의 총리가 된 요셉의 두 아들 가운데 장남이다. 이름의 뜻은 ‘그러므로 하나님이 잊어버리게 하셨다’이다. 자신을 흙구덩이에 파묻어 죽이려다 종으로 팔아넘긴 이복형들의 범행을 생각하면 치를 떨었지만, 므낫세를 얻은 뒤 깨달은 하나님의 뜻은 잊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한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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