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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흔들리지 않는 활

 요즘 내 금요 북클럽에서는 “The Color of Water(한국명 컬러 오브 워터)’라는 책을 읽고 있다. 흑인인 저자 James McBride가 자신의 백인 엄마 Ruth에게 바치는 자전적 에세이다. 그의 엄마는 유대교 랍비였던 아버지의 성폭행과 학대 끝에 뉴욕으로 와 할렘가에서 흑인 목사와 결혼한다. 두 번이나 남편을 잃는 고난과 평생의 가난 속에도, 교육과 신앙 두 기둥으로 아이들을 양육해, 열두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다 대학 혹은 대학원까지 마치고 의사, 교사, 교수 등 전문인이 되었다. 엄마는 아이들을 늘 장학금 주는 먼 학교로 밀어 보냈다. 그리고 아이들이 떠날 때, 앞에서는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저자 제임스가 대학으로 떠나던 날, 형들 쓰던 낡은 가방을 들고 그레이하운드에 오르는 그에게, 엄마는 꼬깃꼬깃한 지폐와 동전을 손에 쥐여준다. 14달러, 엄마가 가진 돈 전부다. 애써 눈물을 참는 제임스 눈에, 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 입술을 쫑긋쫑긋하며 인상을 쓴 채 정류장 앞길을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엄마가 보인다. 그래도 안 우시니 다행이다. 하지만 출발한 버스가 코너를 돌 때 다시 보이는 엄마의 얼굴. 아들 앞에서 참았다가 비로소 담벼락에 기대어 오열하는, 눈물로 얼룩진 엄마의 얼굴이다.
 
와, 난 이 쿨한 엄마와 완전 반대다. 일단, 아들만 둘인 내게 둘째 기원이는 어려서부터 딸처럼 곰살맞은 존재였는데, 이 아이가 카운슬러에게, 최소 여섯 시간 거리 대학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 바아로 배신감 느꼈다. ‘흠, 그래, 멀리 가거라 아들’ 이래야 하는데, 나 완전히 치를 떨었다는 사실! 기어코, 가까운 대학의 좋은 조건을 거절하고, 비행기로 여섯 시간 걸리는 학교로 정하신 나의 차남!  
 
샌프란시스코 UC 버클리 기숙사에 내려주고 돌아오던 날, 공항 가기 전 차에 함께 앉아 “기원아, 엄마가 기도해줄게” 하고는 눈물이 나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Ruth 언니, 미안해요. 나 왜 이리 찌질한가요. 결국 아들이 “아이구 하나님, 우리 엄마 좀 울지 말게 해주시구요 뉴저지 잘 돌아가게 해주세요” 기도를 했다. 뭔가 소중한 보배 하나를 떨어뜨려 놓고 가는 듯한 허전함에, 공항 가는 내내 울었던 기억. 개학하고, 동료 선생님들에게 이 이야길 했다. 그런데 듣고 있는 선생님들이 다 눈물이 글썽글썽해진다. 자기 아이들 대학 갈 때 다 그런 마음이었던 거다!
 


여름이다. 아이들이 떠나간다. 대학으로, 첫 직장으로, 새로운 일을 찾아, 가정을 이루어, 이 넓은 미국 땅 곳곳으로 마구마구 떠나간다. 아이들은 떠나기 위해 자라고, 부모들은 보내기 위해 키운다. 부모님을 떠나온 우리가, 이제 아이들을 미래를 향해 떠나보낸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 나오는 ‘자녀들에 대한 시’ 구절을 자꾸 마음에 새겨보는 요즘이다.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갈망하는 큰 생명의 아들딸이니 그들은 그대를 거쳐서 왔을 뿐 그대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중략)
 
그대는 활, 그리고 그대의 아이들은 마치 살아있는 화살처럼 그대로부터 쏘아져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활 쏘는 자인 신은 무한의 길 위에 과녁을 겨누고 자신의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온 힘을 다해 그대를 당겨 구부리는 것이다. 그대는 활 쏘는 이의 손에 의해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그는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는 만큼 흔들리지 않는 활 또한 사랑하기에.”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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