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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3차례 출연 거절"…이정재 감독 데뷔작 '헌트' 전말

첩보 액션 영화 '헌트'(10일 개봉)로 감독 데뷔한 이정재를 3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이 영화를 이정재가 연출했다고?’ 지난달 27일 첩보 액션 영화 ‘헌트’(10일 개봉) 언론시사 후에 터져나온 반응이다. ‘헌트’는 30년차 배우 이정재(50)가 충무로 절친 정우성과 공동 주연한 감독 데뷔작이다. 전두환 독재 정권 시기 안기부에 숨어든 북한 간첩을 찾으려는 요원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 간의 불신과 갈등을 긴박감 넘치게 그렸다. 실감 나는 첩보 액션, 정치적 분열의 시대상을 새겨넣은 캐릭터 묘사가 돋보인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최근 미국 프라임타임 에미상 비(非)영어권 작품 최초 작품상‧남우주연상 등 14개 부문 후보에 오른 그가 연기 인생 정점과 함께 감독 변신까지 성공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3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이정재는 전날 VIP 시사 일정에 더해 영화 마무리 작업을 하느라 얼굴에 피로감이 가득했지만, 기분 좋은 긴장감 또한 감돌았다.

칸 반응 엇갈린 '헌트' 개봉판 업그레이드
영화 '헌트' 포스터. 영화는 1980년대 안기부 내부 첩자를 밝히려던 요원들이 대통령 암살 음모에 다다르는 과정을 그렸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지난 5월 ‘헌트’가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첫 공개됐을 때만 해도 호평 일색은 아니었다. 한국 현대사를 설명한 긴 자막, 복잡한 이야기에 호불호가 엇갈렸다. ‘신인 감독’ 이정재는 지적을 받아들여 사족을 걷어내고 보완해 완성도를 높였다. “(칸에서) 잘 통하지 않았구나 자책도 했다”는 그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곧바로 각색을 다시 했다. 찍어놓은 영상에서 쇼트를 바꾸고 대사를 후시녹음으로 꽤 많이 수정했다”고 했다.
‘헌트’는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던 작품이다. 2016년 평소 좋아하는 첩보 장르의 원작 시나리오(‘남산’)를 알게 된 이정재는 처음엔 제작을 염두에 두고 영화화 판권까지 샀다. 그러나 각본에 참여한 감독들이 잇따라 하차하자 직접 노트북을 펴고 4년에 걸쳐 각색을 했다. 그는 이념 갈등이 극심했던 1980년대 초반 시대 배경은 “어마어마한 부담이었다”고 했다.
“굳이 이런 역사적 사실을 영화에 넣어야 하나 고민이 많았죠. 자칫 잘못했을 때 비난이 연기자 커리어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공포감까지 느꼈어요. 첩보 장르에 집중해 현대극으로 만들려고도 했는데 주제가 잡히면서 80년대에 도전해보고자 했죠.”

80년대 신촌 토박이, 최루탄 일상이던 어린시절
엄청난 부담에 “글쓰기를 포기할 뻔한” 그를 번번이 노트북 앞으로 돌아오게 만든 건, ‘그릇된 신념으로 분쟁하지 말자’는 주제였다. “어릴 때 신촌에 살아서 최루탄 냄새가 익숙하다”는 그는 “민주화 시위가 가장 격렬했을 땐 초등학생이었고 일상이 되다 보니 그런가 보다 했는데 고교 졸업 후 문민 정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뉴스가 공개되고 ‘다른 게 있었구나’ 알게 됐다”고 했다.
첩보 영화 ‘헌트’에선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만에 영화로 만난 스타 배우 정우성, 이정재의 존재감이 팽팽하게 주제를 받친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이후 정치에 큰 관심 없이 살았지만, ‘헌트’를 만날 즈음 세상이 뒤집혔다.
“대통령 탄핵이 있었고 새 대통령이 선출됐죠. 저는 중도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때 국민들이 편이 나눠진 것 같은 모습을 봤어요. 저렇게 심하게 갈등 해야 할까, 누군가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 건 아닐까, 우리의 신념은 과연 옳은 것일까 등 주제가 잡히면서 좀 더 용기 내게 됐죠.”
그는 “나와 다르다는 것 때문에 싸우지 말자는 주제인 만큼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밸런스를 잡는 게 목표였다”고 했다.
출연 제의 4번 만에 승낙한 절친 정우성에게 4년 간 매번 새롭게 매만진 시나리오를 들이밀며 이야기를 다져나갔다. 동북아 첩보전이 치열했던 80년대 미국‧일본‧태국 등을 무대로 안기부 요원들이 극단적 일탈을 저지르는 전개가 무리 없이 다가오는 건 탄탄한 심리묘사 덕분이다.

"해외 '오겜' 반응 상상X100, 제2 '오겜' 기다리죠"
정우성은 ‘헌트’ 촬영 내내 카메라 앞뒤를 오가며 야위어가는 이정재가 “안쓰러웠다”고 돌이켰다. 이정재는 연출과 연기를 동시에 해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촬영을 할수록 체력이 떨어졌고 태국 장면에선 달려가다 햄스트링이 파열돼 열흘 간 목발을 짚었죠. 연기자인 제가 연출‧주연하는 것에 대해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위험 부담을 안고 시작한 작품이라 작은 실수도 해선 안 된다는 압박감이 있었어요.”
완성된 영화에서 아쉬운 연기가 자꾸 보인다는 그는 “역시 무엇을 해봐도 연기가 가장 어렵다”고 했다.
이정재 감독 데뷔작 '헌트'가 올해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다. [사진 칸국제영화제,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다음 달 12일로 다가온 에미상 시상식에 앞서, 그는 ‘오징어 게임’ 캠페인에 뛰어들었다. ‘헌트’ 홍보 일정과 동시에 3일 새벽부터 매일 외신 화상 인터뷰가 잡혀 있다고 했다.
유럽‧미국에서 접한 ‘오징어 게임’ 호응도가 “내가 상상한 것의 곱하기 100이더라”면서 “‘오징어 게임’이 14개 부문 노미네이트된 게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의 위치에 이르게 된 원동력으로 “독특하고 실험성이 강한 것에 도전하며, 젊을 때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했던 것”을 꼽았다. 이어 “‘오징어 게임’ 시나리오가 내게 온 것은 진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어떤 성공이든 운 또는 실력, 스태프들이나 상대 연기자의 도움이 작용한다”고 했다.
“청춘 스타나 아이돌이 아닌데 해외 여러 나라 길거리에서 알아봐 주시고 외국 식당에 가면 서비스 음식까지 받는 배우가 됐다는 게 신기하고 즐겁고 기쁘죠. 더 잘 만들어서 제2의 ‘오징어 게임’이 나올 기회를 빨리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료들이 축하 문자를 줄 때마다 항상 ‘다음은 당신이야’라고 답장하고 있습니다.”



나원정(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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