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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승자독식의 한국정치, 이제 혁신이 필요한 때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오는 11월 8일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요즘 안팎으로 편안한 날이 없다. 국제적으론 미궁에 빠진 우크라이나 전쟁에 희망이 안 보이는 이란 핵 협상, 그리고 미·중 격돌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국내에선 혹독한 인플레이션, 반낙태 등 민주당원과 진보층을 곤혹스럽게 하는 판결 등 악재가 줄을 잇는다. 9·11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의 오른팔이자 후계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를 미 중앙정보국(CIA)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인기로 제거한 것도 지지율에는 일시적인 호재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은 코로나19에 연속 확진돼 백악관에서 격리 생활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국민에게 메시지를 발신한다. 방미한 최태원 SK 회장 일행과 화상 회의를 하고, 베란다에서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모습은 대통령으로서 투자 유치와 일자리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다. 유권자인 국민을 향한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5년 단임 대통령제 부작용 노출
미국은 중간선거 때도 평가받아
집단지성 살아있는 유럽 내각제
국민을 위한 개헌 논의 시작해야

초당적 협력 불가피한 미국 정치

조 바이든, 보리스 존슨, 올라프 숄츠(사진 왼쪽부터 순서대로)
잘 알려진 대로 미국 대통령은 4년 연임에 임기 중간의 2년 차 때는 중간선거로 국민 평가를 정례적으로 받아야 한다. 이런 엄한 시스템 때문에 제아무리 강력한 권력자라도 유권자인 국민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업적을 내기 위해 의회의 여야 지도자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초당적인 협력을 구해야 한다.

한국은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도 1948년 제헌 이래 10번째로 마련된 87년 헌법에서 그 임기를 5년 단임으로 제한했다. 과거 장기 집권을 노렸던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반작용이 컸을 것이다. 87년 체제를 탄생시킨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등 훗날 대통령이 되는 정치 거목들의 정치적 타협도 한몫했을 수 있다.

문제는 이 때문에 연임 가능성이 사라진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 임기가 5년인데 국회의원은 4년이라 동시에 선거를 치르려면 20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 때문에 총선으로 대통령의 신임을 물을 여지가 사실상 사라졌다. 4년 연임 ‘원포인트’ 개헌 주장이 수시로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우리는 왜 대통령제 말고는 눈을 돌리지 않는가. 과거 권위주의 시절, 우리 국민은 내각제가 비생산적이어서 안보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학교와 관영 매체 등을 통해 끊임없이 교육받았다. 정권이 자주 바뀌어 정치적 혼란을 일으키고, 정쟁과 대치로 시간을 낭비하는 비효율적 제도라는 주장이다. 4·19 혁명과 5·16 쿠데타 사이에 있었던 장면 정권을 사례로 들었다.

영국 의회의 자체 정화 기능

주목할 점은 평가와 견제, 균형 장치가 있음에도 대통령 중심제는 미국과 남미에서 주로 채택됐을 뿐, 유럽에선 프랑스·러시아 정도 말고는 꺼린다는 사실이다. 유럽은 의원 내각제를 바탕으로 집단 지성, 집단 지도체제를 구성해왔다.

사실 웨스트민스터식으로 흔히 지칭되는 영국의 내각책임제는 결코 불안한 제도가 아니다. 역사가 말해준다. 정책·평판에 따라 지도자가 집권당 대표와 총리로서 안정적으로 장기집권을 할 수도, 정책에서 무리하면 단기간에 교체될 가능성도 모두 열려있다.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1979년 집권해 11년 208일을 재임했으며,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97년부터 10년 56일간 자리를 지켰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총리였던 H.H 애스퀴스는 8년 244일, 제2차 세계대전 전시지도자인 윈스턴 처칠은 8년 239일간 재임했다. 브렉시트를 국민투표에 부쳤다가 물러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6년 63일간 자리에 머물렀다. 오는 9월 물러나는 보리스 존슨 총리도 재임 3년을 넘겼다.

주목할 점은 존슨 총리가 파티 게이트와 성 추문 정치인의 고위직 임명 같은 정치적 실책으로 비난을 받자 보수당에서 들고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정당 지지율이 추락해 다음 선거에서 패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존슨 총리는 보수당 신임투표에서 살아남았지만, 재무부·보건부 장관을 비롯한 핵심 각료가 잇따라 물러나는 정치적 압박으로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 정치에 국민을 두려워하는 자체 정화 기능이 도도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그 바탕에는 국민인 유권자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선출직 정치인들의 실존적 고민이 자리 잡고 있다.

정치 신인에 길 터준 독일

독일식 내각책임제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역구와 정당명부제를 함께 적용해 풀뿌리 신인의 정치 입문을 용이하게 해준다는 평가다. 게다가 연정 구성을 위한 끈질긴 대화·협상·양보를 통해 포용과 집단지성 정치의 전통을 유지한다. 지역정당 등 다양한 제도로 소수의 목소리가 의회에서 들리도록 보장한다. 정치의 자율 정화 기능은 이런 다양성 속에서 꽃필 수 있다.

스위스는 승자독식을 배제하는 독특한 제도를 운용한다. 정당별 의석에 따라 각료 자리를 나누며, 각료들이 윤번제로 대통령을 맡으면서 권력집중을 방지한다. 논쟁적이거나 중요한 사안은 국민투표로 결정한다.

승자독식과 독단의 권력이란 한국 정치의 폐단을 극복하려면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 고장 난 제도는 고쳐 써야 한다. 세상은 넓고 정치 모델은 수없이 많다. 정치인들이 기득권과 욕심을 버리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 의지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개헌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채인택(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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