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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빛의 '달동네'... 화가 정영주 "집 하나하나가 생명체"

가족의 온기와 정감이 담긴 정영주 그림들. ‘여름저녁 1128’, 2021, 41x53㎝. [사진 학고재]
작은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끝없이 이어지고, 다같이 누군가를 기다리듯 불을 훤히 밝혔다.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빛, 골목을 비추는 가로등 빛, 현관을 밝힌 빛···. 어두운 밤 풍경이지만, 그곳은 마음이 지친 누군가를 한달음에 반겨주고 등을 도닥여줄 듯이 포근한 빛으로 가득 찼다. 정영주(52) 작가가 그린 달동네다.

지난 15년 가까이 달동네 풍경을 그려온 정 작가의 개인전 ‘어나더 월드(An other World)’가 서울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서 27일 개막했다. 2016년 이후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개인전으로, 2018년부터 2022년까지의 신작 28점을 모았다. 세로 2m에 달하는 대작부터 소품까지 단 한 점도 빠짐없이 달동네 풍경이다.

그의 달동네는 친근하면서도 신비로워 보인다. 언뜻 보면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산동네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무한대의 별을 품은 우주에 가깝다. 그의 그림은 2020년 방탄소년단 리더 RM(김남준)이 소장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관심을 모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인기를 방증하듯 이번 전시 작품 중 가장 큰 그림인 ‘어나더 월드’(194x259㎝) 한 점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 전시 개막 전에 판매됐다.

“처음엔 초라한 나를 닮은 것 같아 그리기 시작했지만, 온기 가득한 풍경을 그리며 내가 치유됐다”고 말하는 정영주 작가. [사진 학고재]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에콜 데 보자르를 졸업한 작가가 느닷없이 집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무렵부터다. 그림의 영감은 그의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시기에 찾아왔다. 미국에서 작업하다 IMF 외환위기 때 한국으로 돌아온 지 10년이 됐을 때였다. “어느 날 고층 건물들 사이에서 곧 허물어질 듯한 판잣집을 보았다. 고층건물과 대비되는 그 모습이 초라하고 힘든 나 자신 같았다.” 그때부터 추상화를 그리던 그의 캔버스에 집이 담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빌딩 사이에 아주 희미하게 붉 밝힌 집이었다. 그러나 그림을 계속 그릴수록 빌딩은 화면 밖으로 사라지고 작은 집들이 주인공이 됐다. 캔버스 위에 콜라주 하듯 한지를 오려 붙이면서 집의 존재감은 더 뚜렷해졌다.

그는 캔버스에 스케치한 뒤 지붕과 벽 모양으로 한지를 구겨 찢어 붙이고, 모양을 잡아가며 집을 하나씩 완성한 다음 말려서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한다. 종이를 굳이 구겨서 쓰는 이유는 “시간이 흘러 노화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눈내린 저녁 203’, 72.7x91㎝. 두 작품 모두 캔버스에 판잣집 형상의 종이를 붙인 뒤 아크릴로 채색했다. [사진 학고재]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가장 마지막에 칠하는 불빛이다. 화면에 불빛이 더해지며 어둡고 스산했던 밤 풍경에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작고 초라한 집들이 서로 기대어 내일을 꿈꾸는 보금자리로 변화하는 순간이다. 정 작가는 “집 하나하나가 생명체라고 생각하며 그린다”고 말했다. 서울과 부산 변두리에서 나고 자란 작가에게 달동네는 눈에 익숙한 고향 모습이지만, 화폭에 담긴 달동네는 어떤 지역의 실제 풍경이 아니라 상상 속 세계다. 전시 제목이 ‘또 다른 세계’라는 뜻의 ‘어나더 월드’인 이유다.

그의 그림에서 꼭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끝도 한도 없이 지평선 너머, 화면 밖으로 퍼져가는 동네와 그 불빛이다. “끝이 있다는 게 싫다”는 그는 “제가 생각하는 세상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먼 곳의 집과 불빛까지 그려 넣는다”고 했다. 남루한 판잣집을 정성 들여 그리고 캔버스에 밝고 따스한 불빛을 채워가는 과정은 작가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시간이 됐다. 그는 “갈수록 불빛이 밖으로 나오고, 더 넓게 비추고 있다”며 웃었다.

그의 달동네 그림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그는 “매번 새 캔버스를 대할 때마다 대표작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그린다”며 “아직 멀었다. 제 그림이 언젠가 추상화로 바뀔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달동네로 더 시도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이 많다”고 했다. 전시는 8월 21일까지.



이은주(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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