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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ZZLE] 하나의 방, 하나의 여지…그 미완의 삶

[PUZZLE] 최창연의 원룸일기(1)

그런 느낌을 아시는지? 허겁지겁 내리고 보니 엉뚱한 역에 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기분 말이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낯선 곳에 홀로 서서 고개를 돌려보아도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알지 못한다. 처음으로 세대주가 된 내 기분이 그랬다. 보라매공원 후문 4층 건물, 좁은 계단을 올라 3층 복도 끝에 있는 302호. 그곳이 나의 첫 원룸이었다. 누워서 팔을 쭉 뻗으면 1m 남짓 남는 6평의 직사각형 원룸, 아래에는 세탁기와 맞춤형 싱크대가, 오른편에는 옷장과 냉장고가 벽을 채웠다. 책상 앞 창문을 열면 파란 하늘 대신 옆 건물의 빨간 벽돌이 빼곡하게 보였다. 이사 첫날, 어지러운 방바닥에 짐과 함께 앉아 있으니 희미하게 들어오는 오후 햇살과 함께 낯선 기분이 나를 덮쳐왔다.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도착해 있었다.

서른둘에 만난 6평짜리 첫 원룸
2013년 5월, 6년간 함께 살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외할아버지가 삼촌네로 합치면서 따로 나와 살게 되었다. 근사한 남자 친구도, 넉넉한 전세자금도 없는 상태에서 인터넷 카페를 통해 급하게 집을 알아봤다. 일을 마친 뒤, 집을 둘러보고 오는 길엔 번번이 눈물이 터졌다. 내가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평수가 턱없이 작아서 울고, 보러 간 집의 벽지가 너무 낡아서 울고, 그나마 마음에 들던 집을 코앞에서 놓치고 울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꾸 신세 한탄이 되었다. 이렇게 초라하고 막막한 느낌이라니. 이게 나의 서른둘이라니. 내가 생각한 서른 둘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결혼까지는 아니더라도 미래를 약속한 남자는 있을 줄 알았고, 혼자 살더라도 넓고 근사한 오피스텔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달을 돌아다닌 끝에 이사 갈 집을 구했다. 그곳에서 4년을 살았다. 1년 후부터는 동생이 서울로 올라와서 함께 살게 되었고, 차곡차곡 두 사람분의 짐이 쌓였다. 집이 너무 좁아져서 힘들어질 때까지 견뎠다. 이사할 때의 신세 한탄을 또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날 옆에 누운 존재가 짜증이 난다고 느끼고 나서야 나는 두 번째 집을 구하게 되었다. 두 번째 집으로 이사할 때는 그보다 더 의젓했다. 여전히 미래를 약속한 남자도 없고, 넓고 근사한 오피스텔은 아니었지만, 조금 더 큰 원룸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낡은 건물이었지만, 베란다가 있고 새로 도배를 해준다고 해서 바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근처에 작은 공원과 서점, 작은 카페가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처음 집을 구할 때보다 수월했던 이유는, 한 칸이지만 내 집에서 생활을 해보니 내가 어떤 환경에 있을 때 행복한 사람인지 알게 되어서일 것이다. 나는 일요일이면 산책을 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조용한 카페를 좋아하며, 서점에서 책 냄새를 맡으며 신간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두 번째 이사를 마치고, 처음 며칠은 책을 분류해 책장으로 넣고, 철 지난 옷들을 정리했다. 냄비와 그릇을 정리해 싱크대로 넣고, 시장에서 산 계란과 우유를 냉장고에 채웠다. 구석구석 쓸고 닦으면서 조금씩 낯선 느낌을 지워갔다.

물론 내가 생각한 마흔하나도 이런 것이 아니었다. 서른둘처럼 사십 대도 여전히 낯설다. 나는 또 10년 뒤에 ‘내가 생각한 쉰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라고 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인생이란 뜻하지 않은 낯선 곳에 도착하는 일의 연속일까? 인생이라는 여행을 얼마나 더 해야 이런 낯설고 외로운 기분이 사라지게 될까? 그런 날이 올까?

때로는 불안, 때로는 행복
처음 ‘원룸 일기’라는 말을 떠올렸을 때 지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원룸(One Room)은 ‘한 개의 방’이라는 뜻이지만, ‘하나의 여지’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고. 여지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나 희망’이다. 원룸에서 생활하는 일은 때때로는 불안하고, 때때로는 행복하다. 순간순간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던 삶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아마도 삶이 완성형으로 느껴지지 않아서일 것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완성형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나에겐 어떤 여지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떨 때 행복한 사람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내가 어떤 식으로 확장되어 가고 싶은지 탐색해 볼 수 있는 여지가 말이다.


어쨌든 나는 낯선 기분이 들더라도 방을 쓸고 구석구석을 쓰다듬으며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구석을 찾아낼 것이다. 이렇게 작아도 결국은 내 삶이니까. 낯설지만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니까. 그리고 한 발씩 걸어가는 것만이 인생을 확장시켜가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최창연(puzzlet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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