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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는 대만에 갈 수 있을까... 25년 전과 달라진 미·중 역학 [박현영의 워싱턴 살롱]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나는 ‘우리는 대만을 방어할 것임을 당신들이 이해하기 바란다.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1997년 3월 중국을 방문한 뉴트 깅그리치 미국 하원의장은 중국 최고위층과 회담 후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미국은 군사적으로 개입할 것이라고 중국에 분명하게 경고했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 12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당시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깅그리치 하원의장은 동아시아 4국 순방 중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리펑 총리 등 최고지도자와 만났다. 중국 지도부는 면전에서 듣기 불편한 말을 듣고도 침착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뉴트 깅그리피 미국 하원의장이 1997년 3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판문점에서 미군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美 하원의장, 25년 전엔 중국·대만 동시 방문
중국 측은 “알았다”면서 더 이상 논쟁하지 않았고 내정 간섭이라고 반발하지도 않았다. 중국은 “우리가 (대만을) 공격할 의도가 없기 때문에 당신들이 방어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었다고 깅그리치 의장은 전했다. 깅그리치 의장은 한국에서 출발해 홍콩·중국·일본을 거쳐 대만에서 순방을 마무리했다. 미국 하원의장의 아시아 순방 일정에 중국과 대만을 나란히 넣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25년 전과 달리 올여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계획은 미·중 간 새로운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대만행 추진이 알려지자 중국은 즉각 반발하며 경고했다. 백악관이 “위험”을 이유로 펠로시 의장을 만류하고 나설만큼 무력 충돌 가능성도 제기된다.

펠로시 의장이 다음 달 대표단을 이끌고 대만 방문을 재추진한다는 소식은 지난 1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로 알려졌다. 깅그리치 의장 이후 25년 만에 미국 최고위 인사의 대만 방문이다.

같은 날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만약 미국이 자신의 길을 고집한다면, 중국은 국가 주권과 영토 보전을 확고히 지키기 위해 확고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미국은 이번 방문으로 인한 일체의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다음날 관영 환구시보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전략적 수준의 도발”, “절대 넘어선 안 될 레드라인”이라고 비판했다.

펠로시 의장은 지난 4월에도 대만을 포함한 아시아 순방을 추진했지만, 코로나19에 확진돼 일정이 취소됐다. 당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미국 정치 지도자인 하원의장이 고의로 대만을 방문한다면 중국 주권에 대한 악의적 도발이자 중국 내정에 대한 중대한 간섭이 될 것이며, 외부 세계에 극도로 위험한 정치적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든 "지금 대만 방문, 좋은 생각 아냐"
이번에는 백악관이 공개적으로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반대하고 나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일 관련 질문에 “군은, 지금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군의 판단을 공개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었다. 이에 펠로시 의장은 “대통령이 말하는 것은 우리 비행기가 중국에 의해 격추되거나 아마도 그와 비슷한 일이 생기는 것을 군이 우려한다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되받았다.

대통령 부재시 권력 승계 서열 2위인 하원의장이 탄 비행기를 격추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지만, 그럴 가능성까지 언급될 정도로 양안 관계에 중대한 위기가 촉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이 펠로시 의장이 탄 비행기 착륙을 막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할 것이고 그 자체가 현상(status quo) 변경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다.

후시진 전 환구시보 총편집인은 중국이 대만 상공을 비행금지(no-fly)구역으로 지정하거나 대만 상공에 전투기를 보내고 중국 전투기가 펠로시 일행이 탄 비행기를 ‘호위’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어떤 경우든 대만과 미국군이 대응할 수밖에 없다.

"중국, 펠로시 탄 군용기 한국서 이륙하는지 지켜볼 것"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전문가를 인용해 한국도 연관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일본 지상자위대 3성 장군 출신인 고이치이소베는 닛케이에 “중국군은 펠로시를 태운 미군 비행기가 어디서 이륙할지 면밀히 주시할 것”이라면서 “과거에는 대만으로 가는 미국인을 태운 비행기가 종종 한국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이소베를 비롯한 군사 분석가들은 대만해협에서 미·중이 가상으로 충돌했을 때 주한미군이 전투를 지원하는 임무를 맡을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따라서 한국에서 대만으로 가는 항공기 비행 훈련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펠로시 의장이 대만과 일본·싱가포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와 하와이에 있는 미군 인도태평양사령부를 방문할 예정이라는 FT 보도에는 당초 한국이 빠졌지만, 이번 아시아 순방에 한국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을 포함한 백악관과 국방부, 군과 정보 당국자들은 펠로시 의장에게 “여행 시기와 관련한 위험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3일 신장 위구르 자치지역을 방문했다. 시 주석은 오는 10월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지을 것으로 알려졌다. [신화=연합뉴스]

시 주석 3연임 앞두고 강경 대응 가능성
이 시기가 민감한 이유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장기집권을 공식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열리기 두 달 전이기 때문이다. 사상 첫 3연임을 확정지으려는 시 주석은 당 대회를 앞두고 어떤 모욕도 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고, 중국은 감지된 도발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시 주석이 중국 지도부와 원로가 참석하는 베이다이허 회의를 앞두고 미국과 관계를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중에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실현되면 엄중하게 대응할 것이고,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고 닛케이는 전망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이달 중으로 통화할 예정이다.

깅그리치 방문 당시인 1997년 중국은 효과적인 군사적 대응 능력을 갖추지 못했지만, 이후 군 병력을 증강했고 대만 주변에서 빈번한 무력시위를 해왔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펠로시의 대만 방문 갈등은 25년 새 미·중 관계 역학이 확 달라진 것을 보여준다.

중국은 바이든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에게 대만행 포기를 명령할 권한이 없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삼권분립이 명확한 미국에서 결국 결정은 펠로시 의장의 몫이다. 위험을 이유로 안 간다면 중국에 굴복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고, 시 주석이 미국 외교정책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런데도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이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다”면서 한사코 반대하고 있다.



박현영(park.hy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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