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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의 한반도평화워치] ‘힘을 통한 평화’가 토대, 호혜성 없는 대화·거래 그만둬야

7·4 공동성명 50돌과 김정은 정권
박영호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 한반도포럼 위원장
지난 4일은 7·4 남북공동성명 50주년이었다. 그동안 남북 간에 667회의 회담이 열렸고 258건의 합의서가 채택됐다. 회담에는 정상회담, 고위급회담, 장관급회담, 적십자회담과 각종 실무회담 등이 있었다. 합의서에는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6·15 공동선언, 판문점 선언을 비롯해 적십자, 경제협력, 개성공단 관련 합의서 등이 있다. 사실 지난 2월에는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발효 30주년을 맞았었다. 두 합의서가 제대로 이행되었다면 통일 32주년을 맞는 독일이 크게 부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남북관계의 현실은 어떤가. 북한은 핵탄두 20개 등 45~55개의 핵폭탄 제조에 충분한 핵 물질을 갖고 있다(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김정은은 지난 4월 25일 군사 목적 외에 ‘어떤 세력이든’ 북한의 근본이익을 침해할 경우 핵을 사용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의 핵 위협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변명으로부터 강력한 국방력(핵)으로 통일을 앞당기겠다고 당규약을 개정(2021년 1월)한 후, 이제는 독재자 임의의 결정으로 남한을 핵으로 선제 타격할 수 있다고 위협한다.

북한의 핵 교리가 군사용에서 정치용으로 확대됐다. 푸틴의 핵무기 사용 위협에서 배운듯하다. 그리고 김정은은 6월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남한을 겨냥해 ‘대적 투쟁’ 강화를 재천명하고, 전방 부대의 작전계획을 이에 맞춰 변경했다. 대남 군사행동 계획에 ‘전술핵’ 운용을 포함한 것이다.
김정은, 대남 군사행동 계획에 전술핵 포함한 ‘대적 투쟁’ 선언
엘리트 250여 명이 지배하는 나라, 권력집단 내부 응집력 강해
북한이 핵을 대남 전략도구로 활용 못 하도록 무력화 조치 필요
상호주의 지원 원칙 지키되 북이 약속 어기면 대가 치르게 해야

북한 정권에 유리한 신냉전 정세

박영호의 한반도평화워치
이러한 김정은 정권의 대남 강경 전략이 윤석열 정부의 ‘강력한 억지와 대화’ 전략과 충돌하면서 가까운 시기에 남북관계가 풀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전략에 대한 대증적 접근으로는 북한의 공격적 행태는 변하지 않고 일방주의적 남북관계를 지속시킬 뿐이다. 이러한 행위 양태를 변화시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려면 김정은 정권의 성격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그에 맞는 전략과 행동 계획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첫째, 김정은 정권은 현존하는 가장 오랜 1당-1인 지배의 세습 독재정권이다. 권위주의 연구에 따르면 북한처럼 견고한 1당 지배의 개인화 독재정권은 그 지속성이 매우 크다. 특히 이웃한 중국과 러시아는 매우 크고 강력한 독재국가로 미국과 대척점에 있다. 북한 핵무기는 그들에겐 위협이 아니며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묵인할 수 있다.

둘째, 지난해 세계 민주주의 수준은 1989년 수준으로 퇴화했다. (스웨덴민주주의연구소·V-Dem) 현재 세계 인구의 70%가 독재 통치 아래에 있다. 북한과 국교 관계에 있는 국가 대부분이 권위주의 체제다. 세계는 민주주의 진영 대 권위주의 진영 간 새로운 냉전 시대로 진입했다. 이러한 상황은 가장 폐쇄적 독재국가인 북한에 유리한 국제 환경을 제공한다.

셋째, 김정은 정권은 어떤 독재국가보다 권력 엘리트집단의 내부 응집력이 강하다. 김일성 유일 지배체제가 성립된 이래 250명 내외의 당 중앙위원회 정·후보위원이 북한의 당·정·군을 움직인다. 때때로 숙청·처형과 지휘부 교체가 이뤄지나 이 집단에 들어가면 체제 이익을 공유하므로 충성심이 견고하다. 경제 위기에도 고도의 충성심을 유지하며 핵심 엘리트 주위로 응집해 분열을 피할 가능성이 크다.

넷째, 오랜 기간 권력 엘리트집단 내의 핵심으로 소수의 ‘승리 연합’을 구성하는 효과적인 권력 분배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승리 연합은 권력과 부를 공유한다. 장성택 처형처럼 특정인이 제거되면 충성의 새 인물이 충원되면서 그 연합의 성격은 그대로 유지된다. 김정은 정권은 그가 정점(당 중앙)인 승리 연합의 현재진행형이다.

중국은 북한의 절대 후원국

다섯째, 북한 주민은 생활의 일부인 사상 학습과 고도의 통제 아래 거대한 동굴 속에 갇힌 존재다. 통신 수단인 손(휴대)전화는 보이지 않는 감시 도구다. 주기적인 공포 통치는 지위 고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이러한 체제에서 대다수 북한 주민은 동굴의 우상을 극복하기 어렵다. 삶의 어려움은 미 제국주의 탓이고 독재자는 ‘인민의 어버이’인 북한에서 체제 도전은 언감생심이다.

여섯째, 북한은 경제적 지대 추구 사회다. 독재자와 핵심 엘리트, 당·정·군 간부, 일반 주민에 이르기까지 뇌물 사슬로 얽혀있다. 만성적 공급 부족 상태에서 뇌물은 소득 재분배 효과를 낳는 일종의 윤활유다. 부패 구조의 심화가 체제 취약성을 가중할 수도 있다.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를 표방하며 주기적으로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해 고위층부터 단속하는 이유다. 북한의 거버넌스 수준은 거의 밑바닥이다. (베르텔스만변혁지수·BTI)

일곱째, 김정은의 가장 믿을만한 수단은 핵과 미사일이다. 총대는 당과 정권, 사회주의제도를 수호하는 담보다. 핵무기는 소위 미국의 위협에 대한 억제력이며, 생존권과 발전권을 주장하는 뒷받침이고, 대남 전략의 강력한 수단이다. 독재자가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한 사례는 없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역설적으로 김정은에게 더욱더 핵을 품게 하는 교훈을 준다.

여덟째, 북한과 접한 동맹국 중국이 있다. 중국은 북한이 ‘하나의 운명’이자 ‘불패의 전략적 관계’로 간주하는 절대 후원국이다. 북핵·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은 중국의 국가 전략에 활용되는 하나의 수단이다. 중국의 장기 전략 목표는 미국의 지위를 대체하는 것이다. 중국 국가 정체성의 본질은 공산당 지배다.

북한 GDP, 한국의 1.8% 수준

7·4 남북공동성명 반세기가 지난 현재 북한의 경제력은 국내총생산(GDP) 기준 한국의 1.8%에 불과하다. (통계청) 그러나 북한 정권과 체제의 내구력을 결코 낮게 보아선 안 된다. 그러면 남북관계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첫째, 평화와 안보에 대한 철학은 ‘힘을 통한 평화’에 토대를 둔다. 김정은 정권이 핵의 사용이나 사용 위협을 대남 전략의 도구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무력화해야 한다. 대북 정책의 기본 전략은 충분한 억지에 기반을 둔 상호주의 관여다. 억지와 강압, 대화·협상으로 북한 비핵화를 추진하면서 북한을 국제사회의 정상적 일원으로 편입시키는 전략적 관여정책을 추진한다. 관여는 포용이 아닌 변화를 이끄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선 효율적 국제 협력이 필수적이다. ‘글로벌 중추 국가’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며 한반도 문제에 대한 촘촘한 국제협력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자유민주주의, 인권, 평화의 실천 방식으로서 남북관계를 진화시켜야 한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남북관계 정상화’ 국정과제는 매우 적절하다. 모든 남북 간 상호작용이 국제법, 국제규범·관행의 기반 위에 이뤄지도록 방식을 바꿔야 한다. 호혜성 없는 대화나 거래에 의존할 필요 없다. 경제 지원과 약속의 불이행에는 대가가 따라야 한다. 북한 인권 문제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와 시민적·정치적 권리의 통합적 접근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북한인권법과 북한인권재단을 조속히 정상 가동·운영해야 한다. 그리고 실용과 유연성을 이유로 상호주의 원칙의 근본을 손상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 비핵화’ 담대하게 견인해야

셋째, 윤 정부의 ‘담대한 계획’은 북한 비핵화가 전제가 아닌 이를 견인하는 계획이다. 북한 비핵화와 경제 패키지와 함께 북한의 대미·대일 관계 정상화, 남북 정치 관계의 제도화, 군사적 신뢰 구축과 군비 통제, 경제 관계, 평화체제 구축과 국제안보협력 등이 포괄적·구체적이며 연동하도록 디자인해야 한다. ‘남북 공동경제발전계획’을 수립·추진할 경우, 북한의 정책 변화 수용성, 주변국의 발전 구상, 국제 정치 현실 등과 동떨어진 공허한 청사진이 아니라 현실 정합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

넷째, 독재체제의 공고화와 자원 전용에 활용되는 상호작용은 차단하고 장기적인 변화 이행을 견인하는 관여 방안을 개발·추진해야 한다. 다양한 접촉과 교류협력은 북한 주민의 각성, 사회의 개방과 체제 변화를 고무하는 환경 조성의 수단이다. 남북 교류협력을 민간 자율에 맡기되 정부는 국가 간 거래의 법적·제도적 규율로 지원하도록 한다.

다섯째, 통일은 장기 국가 발전 전략의 일환이다. 서독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유럽공동체(EC) 틀 속에서 원칙 있는 정책 추진으로 동독의 체제 전환에 영향을 주고, 자유민주적 질서로의 통일을 달성했다. 우리의 국가 정체성에 토대한 국제 연대 강화와 지구촌 평화·번영에 대한 역할 제고는 남북관계의 정상화와 북한 체제의 변화를 이끄는 구심력이다. 남북관계가 정상화되면 북한 지도부의 정권·체제 안보 우려가 완화되고 체제 전환의 길을 선택할 기회가 증대할 것이다. 남북관계 정상화 목표의 달성은 간단치 않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 한반도포럼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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