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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 의도 없었다” “사지 보내고 호도”

2019년 11월 발생한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을 두고 신구 권력이 17일 정면 충돌했다.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오전 강제북송된 탈북 어민들을 “희대의 엽기적 살인마”로 규정하며 당시 결정이 정당했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냈다. 통일부가 지난 12일 판문점에서 찍은 강제북송 사진을 공개하고, 검찰도 수사를 본격화하자 내놓은 반박 성격의 글이다. 그로부터 약 다섯 시간 뒤 최영범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궤변” 등의 표현을 쓰며 정 전 실장의 주장을 재반박하는 이례적인 풍경이 벌어졌다.

발단은 정 전 실장이 이날 오전 10시30분쯤 배포한 ‘흉악범 추방 사건에 대한 입장문’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정 전 실장은 입장문을 통해 “아무리 전 정권을 부정하고 싶더라도 우리 법에 따라 결정하고 처리한 사안을 이제 와서 관련 부처를 총동원해 번복하는 것은 스스로 정부 체제를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건을 다시 파헤치는 윤석열 정부의 움직임을 사실상 ‘반정부 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실이 추가로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현 정부가 기존의 판단을 어떻게 번복했는지 특검과 국정조사에서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부적으로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서도 정 전 실장은 반박에 나섰다. 탈북 어민 합동신문 절차를 끝낸 직후 북측에 관련 내용을 통보한 이유에 대해선 “추방할 경우 상대국의 인수 의사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북측에 의사를 먼저 타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탈북 어민들이 자필 귀순의향서를 작성했음에도 귀순 의사가 없다고 판단한 배경으로는 “나포된 후 동해항까지 오는 과정에서 귀순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근거를 들었다. 국내 사법절차에 따른 재판 과정을 생략한 이유와 관련해선 “북한 주민이 다른 북한 주민에게 저지른 흉악범죄와 관련해 우리 법원이 형사관할권을 행사한 전례가 없다. 또 이들의 자백만으로는 사실상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약 다섯 시간이 지난 오후 3시40분, 최영범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야당과 지난 정부 관련자들이 해야 할 일은 정치공세가 아니라 조사에 성실하게 협조해 진실을 밝히라는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라며 반박 브리핑을 자청했다.

정의용 “엽기적 살인마” 대통령실 “조사도 않고 결론내나”

정의용
최 수석은 특히 정 전 실장이 북송된 탈북 어민 2명을 ‘엽기적인 살인마’라고 칭한 데 대해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탈북 어민을 엽기적인 살인마라고 규정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당연히 우리 정부 기관이 우리 법 절차에 따라 충분한 조사를 거쳐 결론을 내렸어야 마땅한 일”이라는 것이다.

최 수석은 또 “북송 어민들이 귀순 의사가 없었다는 것도 궤변”이라며 “이 사람들이 자필로 쓴 귀순의향서는 왜 무시했단 말이냐. 이 사안의 본질은 우리 법대로 처리해야 마땅한 탈북 어민을 북측이 원하는 대로 사지로 돌려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최 수석은 이어 “국회 보고도 현장 지휘자의 문자메시지 보고가 언론에 노출되자 마지못해 한 것 아닌가”라며 “그렇게 떳떳한 일이라면 왜 정상적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국가안보실 차장이 국방부 장관 모르게 영관급 장교로부터 문자로 보고받았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2019년 11월 7일 국회를 찾은 김유근 안보실 1차장이 공동경비구역 대대장에게 문자메시지로 ‘북한 주민 2명 송환 예정’ 등의 내용을 보고받은 게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해당 사건이 알려진 걸 꼬집은 것이다. 정경두 당시 국방부 장관 역시 ‘북한 주민 두 명을 북측으로 송환 예정인 사실을 알고 있나’라는 질문에 “언론을 통해 확인했다”고 답해 논란이 일었다.

탈북 어민 북송 논란 공방전
대통령실은 브리핑 외에 별도의 보도 참고자료도 배포하고 ▶조사 과정의 조기 종료 ▶탈북 어민의 귀순 여부 ▶법 적용 등 세 가지 문제점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본인 자백 외에는 물증이 전무한 상황에서 추가 조사가 필요함에도 청와대는 신호 정보에만 의존해 탈북 사실을 사전에 파악하고, 어민들이 우리 측으로 넘어오기도 전에 ‘흉악범 프레임’을 씌워 해당 어민의 북송을 미리 결정했다”는 지적이다. 이어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사건을 언급하면서 “해당 공무원의 북측 해역 표류 시에는 신호 정보를 장시간 방치해 북한군에 의한 피살을 막지 못했으면서도, 탈북 어민 처리에서는 신호 정보를 기민하게 활용해 흉악범으로 간주해 강제북송 조치를 결정하는 등 모순된 행태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귀순 의사 여부와 관련해선 “탈북 어민들은 NLL(북방한계선)을 넘기 전 ‘이제 다른 길이 없다. 남조선으로 가자’며 자발적인 남하를 결정했다. 나포 후 보호신청서 자필 서명 등을 통해 귀순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고 강조했다. 또 “인권과 법치를 강조하는 문재인 대통령도 과거 페스카마호에서 우리 국민을 살해한 외국인 선원도 우리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한다고 한 바 있다”며 문 전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페스카마호 사건은 1996년 참치잡이 원양어선에서 조선족 선원 6명이 선상 반란을 일으켜 한국인 선장 등 11명을 살해한 사건으로, 문 전 대통령은 이 사건의 2심 변론을 맡았다.

여권은 공세 수위를 계속 끌어올릴 분위기다. 대통령실의 반박 브리핑과 별도로 권성동 국민의힘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역시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나포 5일 만에 강제북송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부실 검증”이라며 정 전 실장을 비판했다. 북송 어민들을 ‘엽기적 살인마들’이라고 규정한 데 대해서도 “과거 태영호 의원을 향한 북한발 가짜뉴스가 연상된다. 2016년 태영호 주영국 북한공사가 탈북했을 때에도 북한은 그를 범죄자로 낙인찍으며 탈북의 의미를 축소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븍송 어민
이런 가운데 통일부는 강제북송 당시 영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이날 밝혔다. 통일부는 입장 자료를 통해 “당시 현장에 있던 직원들을 대상으로 개인적으로 촬영한 영상이 있는지에 대해 확인한 결과, 직원 1명이 개인적으로 북송 과정을 휴대폰으로 촬영했음을 확인했다”며 “통일부 공식 관리 자료가 아닌 만큼 국회 등에 해당 영상을 제출할 수 있는지 등에 법률적인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영상에는 북측으로 넘어가지 않으려고 강하게 저항하며 남긴 음성과 표정, 몸의 상처 등이 담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브리핑 등 여권의 전면 공세에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출신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저녁 페이스북을 통해 “(합동신문은) 다른 북송 사례에 비춰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다”며 재반박에 나섰다. ‘엽기적 살인마 규정은 문제’라는 대통령실 주장에 대해서도 “스스로 16명을 죽였다고 자백했는데, 어떤 이유로 이들이 살인마가 아니냐. 자백만 있었던 게 아니라 사전에 군이 입수한 첩보 내용과 일치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차원에서는 “국민의힘이 탈북 어민의 북송 문제까지 국정조사나 특검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사적 채용 비선 논란 국정조사를 같이 할 필요가 있다”(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며 동시 국정조사 요구로 맞받아쳤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급한 일부터 처리하는 게 순리다.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의 진상이 뭐냐는 여론이 비등한데 그것(탈북 어민) 먼저 처리해야 맞다”고 말했다.



현일훈.정진우.윤지원(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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