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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딸 성희롱 당했다"…'멘' 감독이 파헤친 '男 폭력의 문법'

'멘'을 연출한 알렉스 가랜드 감독. 그는 이 영화 각본을 15년 전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사진 판씨네마]
“전형적인 남성의 성향, 행동이 계승되고 재생산되고 복제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죠.”
남성 중심 사회에 대물림돼온 폭력성을 괴이한 출산 장면으로 표현한 영국 감독 알렉스 가랜드(52)의 말이다.
13일 개봉한 공포 영화 ‘멘(Men)’은 소설가 출신인 그가 감독 데뷔작인 SF ‘엑스 마키나’(2012), ‘서던 리치: 소멸의 땅’(2018)에 이어 각본‧연출한 세 번째 장편. 남편의 죽음을 목격한 충격을 달래기 위해 외딴 시골에 간 하퍼(제시 버클리)가 마을 남자들의 기묘한 습격에 시달리며 겪는 공포를 그렸다.
숲에서 그를 쫓아오는 발가벗은 부랑자부터 부랑자를 신고한 하퍼를 오히려 과민반응으로 모는 경찰, 하퍼에게 남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강요하는 교회 목사, 바텐더, 동네 소년 등. 하퍼에게 다가온 남자들은 자신은 다른 척하지만 결국 하퍼를 통제하려 든다. 이처럼 같은 본성의 남자들을 배우 로리 키니어가 1인 9역을 도맡아 연기한 것부터 신선하다.

부천영화제 개막작 "욕 먹을 각오로 틀었다"
'멘' 촬영 현장에서 주인공 하퍼 역의 제시 버클리(왼쪽)와 알렉스 가랜드 감독이 장면에 대해 의논하고 있다.[사진 판씨네마]
남자들이 서로를 자가 복제하며 하퍼를 총공격하는 유혈 낭자한 마지막 10분은 최근 어떤 공포영화 엔딩보다 파격적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첫 공개됐을 때부터 “시기적절한 진실”(타임)이란 칭찬부터 “짜릿하기보다 터무니없다”(타임아웃)는 혹평까지 반응이 엇갈렸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측은 7일 ‘멘’을 개막작으로 공개하며 “욕먹을 각오로 틀었다”고 밝혔을 정도다. 100개가 채 안 되는 상영관에서 개봉했지만, “올해 본 가장 충격적인 엔딩” “현실적인 공포” “어렵다”(이상 메가박스 예매앱 실관람평) 등 다채로운 관람평이 쏟아진다.
개봉 당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가랜드 감독은 이 영화를 15년 전 처음 구상했다고 밝혔다. 올해 15살인 그의 딸이 태어났을 무렵이다. “남자들을 가르치려고 만든 게 아니라 오히려 영화를 만들며 저 스스로 학습하는 강의 같았다”는 그는 “이 영화를 보며 스스로 느낀 공포도 있었다”며 “나도 모르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오랜 관습이나 생각하는 방식, 남성들의 전형성”을 예로 들었다. “예를 들어 하비 와인스타인(할리우드 거물 제작자)은 ‘미투’ 가해자로 유명한 악마 같은 사람인데, 그가 한 행동을 조금씩 수위를 낮춰보면 (평범한 남성도) 어느 순간 ‘나네? 나도 이런 행동을 하네?’하는 지점이 있다”면서다.



Q : -15년 전 이야기를 구상한 계기는.
“영화에도 나오는 ‘그린맨’(주로 자연에의 동경, 남성의 힘의 상징물로 알려짐)이란 나무 얼굴의 오래된 조각상은 유럽 술집‧교회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지만 정확한 기원을 알 수 없다. 15년 전 문득 그 정체가 뭘까 상상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화 '멘'에서 나체의 부랑자는 유럽 도처에서 발견되는 기원 미상의 '그린맨' 조각상처럼 이미지가 달라져간다. [사진 판씨네마]


Q : -극중 남성들이 물리적인 공격 외에도 미묘하게 하퍼를 거슬리게 하는데,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매일 매일 관찰하고 느낀다. 영국이나 유럽에서 가끔 남자들과 대화하다보면 계속 서로 주먹을 가격한다는 느낌을 받는 때가 있다. 이렇게 대화가 될까, 싶을 정도로 불쾌한 순간들이다. 15살인 제 딸이 대중교통을 타면 남자들이 촬영하거나 만지려 하기도 한다더라. 그런 게 굉장히 일반적이다. 피해자가 비명을 지르지 않았더라도 이런 순간은 계속 있었다. 오히려 이 영화를 실제보다 너무 순화시켜 만든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Q : -로리 키니어에게 1인 9역을 맡긴 의도는.
“관객이 왜 이렇게 캐스팅했을까, 의문을 품어보길 바랐다.”



Q : -이 역할에 가장 중요했던 캐스팅 기준은.
“연기력이다. ‘영화 스타’보다 배우들이 존경하는 ‘배우들의 배우'를 원했다. 또 하루의 3분의 1을 몸매 가꾸기에 쓰는 배우는 피했다.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전형성을 각 캐릭터에서 볼 수 있길 바랐다.”


공포 영화 공식 비틀어…"남성성 속성 탐구했죠"
 영화 '멘'에서 하퍼(왼쪽)가 만난 저택 관리인. 배우 로리 키니어가 분장과 CG(컴퓨터그래픽)의 도움을 받아 나체의 부랑자, 경찰, 소년, 목사, 마을 농부 등 극중 남자들을 1인 9역으로 연기했다. [사진 판씨네마]
주연을 맡은 제시 버클리는 2008년 영국 BBC 방송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가창력으로 2위에 오른 가수 출신. 여러 영화‧드라마의 조단역을 맡다, 지난해 뮤지컬 ‘캬바레’로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즈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가랜드 감독은 “캐릭터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제시 버클리의 다양한 의견이 중요한 열쇠가 됐다”면서 특히 숲속 터널에서 하퍼가 메아리를 이용해 자신의 목소리로 화음을 만드는 장면을 들었다. “하퍼가 터널에서 으스스한 메아리를 만들어낼 때 배우가 마치 악보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면서다.
자연음과 배우의 목소리를 섞어 서늘한 긴장감을 주는 ‘멘’의 사운드는 그가 쓴 동명 소설이 원작인 영화 ‘비치’(2000)부터 각본에 참여한 ‘28일 후’(2002) 등 전작을 모두 함께해온 음향감독 글렌 프리맨틀의 솜씨. 영화에서 터널 장면은 본격적인 공포가 펼쳐지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가랜드 감독이 공포영화의 공식을 깨려고 시도한 장면이다. “보통 공포영화를 보면 하지 말라는 걸 해서 끔찍한 일이 생겼다는 식인데 그에 대들고 싶었어요. 이 어린 여성이 비극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시골에 와서 아름다운 소리를 발견하고 단순하지만 힐링을 했을 뿐인데도, 마치 당연히 겪어야 한다는 듯 공포가 이어지죠. 그 여성이 잘못한 게 없는데도 이런 공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식의 스토리 전개를 하고 싶었습니다.”



Q : -하퍼를 기존 공포영화 여성 캐릭터와 차별화한 점은.
“보통 공포영화는 주인공을 궁지에 모는 괴물이나 초자연적 존재가 점점 강력해지고 주인공이 어떤 식으로든 엔딩을 맞는데 ‘멘’에서 하퍼는 무서워하고 도망가기도 하지만 점점 강해진다. 악당이 강력한 존재가 된 마지막에 가선 오히려 비명도 지르지 않고 훨씬 침착해진다.”

영화 '멘'에서 남편의 죽음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하퍼는 휴양차 간 시골 마을에서 의문의 남자들에게 습격을 받는다. [사진 판씨네마]

가랜드 감독은 “살다 보면 어떤 규칙이나 관습을 특별히 의아해하지 않고 따르게 되는데 어느 순간 멈춰서 ‘왜 그렇지?’ 자문해보면 그 안의 모순점과 위선을 보게 된다. 이 영화를 만드는 건 저에게 그런 탐구의 과정이었다”고 했다. “저 역시 (남자로서) 어릴 때 사람들과 문제가 있으면 싸우면서 해결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웠어요. 폭력이 내적인 문법 같은 게 된 거죠. 개인적으론 이번 영화를 통해 이런 경험이나 폭력, 남성성의 관습‧속성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해본 것 같습니다. 관객분들도 각자의 해석을 해주길 바랍니다.”



나원정(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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