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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 내겐 오락영화 아니다…'음산한 묵시록'으로 느낀 이유 [이란 전문 변호사 신동찬이 고발한다]

영화 '탑건 매버릭' 포스터를 배경으로 이란 로하니 대통령 얼굴을 합성. 그래픽=김경진 기자
(※아래 글에는 영화 '탑건:매버릭'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개봉 4주차에 여전히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관객 수 500만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 '탑건:매버릭'을 최근 관객으로 가득 찬 극장에서 보았다. 주연 톰 크루즈는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환갑 넘은 나이에 스턴트맨 없이 온몸을 던져 열연을 펼친 덕분에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단순한 킬링타임 영화만이 아니라 나 같은 꼰대에게 주는 메시지도 묵직했다. 부친을 매버릭(톰 크루즈 분) 때문에 잃었다고 생각한 루스터의 신뢰를 끝내 얻어내는 모습은 영화적 감동을 넘어 우리 세대가 MZ 세대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교과서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탑건: 매버릭'의 장면. 톰 크루즈는 실제 전투기를 타고 이 장면을 찍었다. [사진 파라마운트 픽처스]
하지만 이란 전문 변호사 입장에서 아쉬운 점도 있었다. 영화가 적국으로 상정한 나라,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방식이 계속 맘에 걸렸다. 영화 속에서 미 해군은 항공모함에서 폭격기를 발진시켜 적국의 핵 개발 시설을 폭격하는 방식으로 핵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아무리 할리우드 오락영화라지만 이런 위험천만한 플롯이 사람들에게 실제로 그럴듯한 해결책으로 제시될까 우려스럽기도 했고, 적국이 이란으로 상정된 것 역시 찝찝했다. 물론 한국어 자막으론 특정 국가 이름 대신 '테러 지원국'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긴 했다. 하지만 내 귀엔 영화 속 심슨 제독이 이란을 여러 차례 거론한 게 들렸다. 내가 틀린 걸까. 한국의 어느 언론은 이 영화가 적국을 정확히 명시하지 않았다며 어느 나라인지 한번 추측해 보자는 식의 기사를 쓰기도 했다. 검색해보니 주요 언론은 아니지만 미국에서도 몇몇 블로거가 '탑건'이 이란을 노골적으로 다룬 데 대해 비판했다. 무엇보다 이란이 발끈했다. 이란어를 전문으로 하는 우리 로펌의 패럴리걸(법률사무 보조원) 도움을 받아 트위터 등을 찾아봤더니 자기 나라를 악당으로 그렸다며 할리우드와 펜타곤을 싸잡아 비난한 포스팅이 눈에 띄었다.
이란 트위터. '탑건'을 반이란 영화라고 칭하며, 펜타곤과 할리우드가 공모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사진 트위터 캡처]
어쨌든, 최소한 한국에서는 이 영화가 콕 집어 이란을 적국으로 다룬 게 정설이 아닌 만큼더 이상 이와 관련해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는 없겠다. 다만 만약 이 영화가 특정 국가 언급없이 한국어를 쓰는 가상의 적국 핵 시설을 폭격하는 내용이었다면 어땠을까. 그저 톰 크루즈의 활약상에 박수만 보내기엔 뒷목이 살짝 당기지 않았을까. 이런 상상을 하며 영화가 다루는 핵 위협 해결방식에 대해 꼭 한번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북한은 거듭된 핵실험 등으로 핵 개발을 진척시켜왔기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이미 국제 사회가 거듭 규탄해왔다. 반면 이란은 아직 단 한 개의 핵무기도 실제로 만들지 않았다. 비록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롯한 서구사회는 믿지 않지만 이란은 최소한 대외적으로는 자신들의 핵 프로그램이 철저히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존재하지도 않는 핵무기 파괴를 위해 그 나라 핵시설을 파괴하는 블록버스터라니. 이렇게 얘기하면 "당장 영화는 영화(허구)일 뿐"이라거나, "드라마를 왜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이느냐"는 비판을 하는 사람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하지만 국제정세에 큰 관심 없는 사람들이 이런 영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글로벌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요즘 시대엔 부적절해 보인다. 잘못된 여론은 때론 국가 정책 방향뿐 아니라 기업환경에도 영향을 끼치는 탓이다. 현실 속에서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실제로 이란 핵시설에 폭격을 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트럼프가 이란 핵 합의를 파기 의사를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에게 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 [사진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큰 관심이 없을 수 있지만 이란 핵 사태를 간략하게 한번 짚어보자. 대선 후보 시절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민주당)의 이란 핵 합의를 비판해 온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부터 미국과 이란과의 관계는 격랑에 휩싸였다. 북한의 제네바 핵 합의 위반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 이란과의 핵 합의에는 파기 시 국제사회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서까지 포괄적 공동 행동 계획(JCPOA)에 정교하게 반영했다. 이란으로써는 불공평한 합의라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란 로하니 대통령이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국제 사회에 정상국가로 복귀하고자 하는 자국민의 열망을 외면할 수 없어 합의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당선 후인 지난 2018년 5월 JCPOA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미국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상당 기간 핵 합의를 준수하던 이란도 결국 핵 활동을 재개했다. 악순환에 접어든 거다. 트럼프는 다시 이에 대응해 이란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Maximum Pressure) 정책을 구사했고, 중동 정세는 다시금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트럼프의 재선 실패, 그러니까 오바마 시절 부통령을 지냈던 조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 후 미국은 JCPOA를 복원하고자 협상을 재개했다. 안타깝게도 협상은 답보 상태다. 이제 몇 주 후면 이란이 핵무기를 손에 넣을 거라는 비관적 관측마저 나오는 형국이다. 만약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에 대한 공습을 감행할 거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고 나온다. 이스라엘은 실제로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핵시설이나 시리아 아사드의 핵시설 공습을 감행한 전력이 있는 터라 내겐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용 블록버스터라기보다 음산한 묵시록처럼 느껴졌다.
지난 2018년 네타냐후 당시 이스라엘 수상이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런 저간의 사정을 얘기해도 아마 많은 한국인은 설령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저 머나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일 뿐인데 왜 이리 급발진하며 열을 내느냐고 핀잔을 줄 거 같다. 그런 분들에게는 이런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고 싶다. 바로 지난해 초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던 우리나라 선박을 나포한 일 말이다. 표면상 이유가 뭐든 실질적으로는 국내 시중은행에 있는 이란의 동결자금 7조원을 내놓으라는 액션이었다. 당시 한국은 미국의 이란 제재 탓에 이란산 원유 구매대금 7조원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이 제재한다고 이란이 손 놓고 있는 게 아니라 이처럼 상대적으로 힘없는 우리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영화에서처럼 미국이 이란에 폭격한다면 지금 이 세계에서 가장 바쁜 원유 운송로 중의 하나인 호르무즈 해협을 항해하는 우리 유조선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는 우리 산업과 민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내가 '탑건'에 무조건 물개 박수를 보낼 수 없는 이유다.



신동찬(c_projec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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