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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캄캄한 밤 별을 보라

이기희

이기희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붉은 댕기 매고 새끼손가락 걸던 사랑의 맹세도 아득한 추억 속에 흘러간다. 떠나는 것들은 매정하다. 뒤도 안 돌아보고 후딱 지나간다. 롯의 아내처럼 소금기둥이 될까 봐 앞만 보고 달린다.
 
살면서 ‘멘붕’ 상태가 된 적이 있었던가. 멘붕는 멘탈 붕괴를 말한다. 멘탈은 사물을 생각하거나 판단하는 정신이다. 나는 여지껏 정신끈 안 놓치고 살려고 아둥바둥 살았다. 남에게 모범은 안돼도 피해는 끼치지 않게 살고 싶었다. 지도자는 못되더라도 주변에 이익을 끼치며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눈치껏 잘 지냈고 비교적 평탄하게 충돌을 피하며 살아왔다.
 
근데 문제가 발생했다. 바늘구멍이 손가락만큼 커지더니 두 손을 벌려도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해가 오해를 낳고 거짓이 또 거짓을 생산하며 어제의 전우가 오늘 웬수가 되는 일이 발생한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구축한 조직을 수호하기 위해 편을 가른다. 투쟁하는 사람들은 아군이건 적군이건 옳고 그름을 판단 할 권리가 없다. 둘 다 틀린 것이 맞다.
 
여지껏 피해자의 입장에 서 본 적이 있었던가. 내가 하는 일들은 옳다고 믿었고 믿음을 설득하는 언어에도 능숙했다. 그렇다면 가해자가 돼 타인을 억압하고 코너에 몰며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베푸는 친절과 관용, 사랑의 말들은 과장된 언어의 유혹이고 비단으로 수놓은 화려한 날갯짓이 아니였을까.
 
지난 몇년간 단순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홀로서기 연습을 했다. 필요 없는 일은 마침표를 찍을 때라 생각했다. 모든 직책 내려놓았다. 외로움도 견디면 따스해진다. 삶의 여유로움을 나눌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참 편안했다.
 
지역사회봉사나 책임도 때와 시기가 있다. 한인사회에 만연하는 갈등과 논쟁은 기득권과 신진세력의 불화에서 발생한다. 밥그릇 싸움이다. 비우지 않으면 자리 비집고 들어오기 힘들다.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더 많은 사고가 발생한다. 쉽게 생각하고 발을 헛디디기 때문이다. 새 밥이 설고 새 술이 덜 익어도 뜸이 들고 달달한 포도주가 될 때가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한인회 생존에 위기감이 감지된다. 큰 도시 몇 곳을 빼곤 한인회가 사라진 도시가 많다. 기성세대는 교만해 신진세력을 양성하지 못했다. 한인의 적은 한인이다. 한인사회는 침몰하는 배에 갇혀 울부짖는 아포리아(Aporia)의 군상처럼 보인다.
 
배는 침몰하는데 그 배를 구해낼 선장은 보이지 않는다. 아포리아는 위기보다 더 심각한 현상을 말한다. 위기는 극복할 수 있지만 멘붕 상태로 판단력과 자생 능력을 잃고 아포리아에 빠진 민족의 앞날은 예측하기 힘들다. .
 
소크라테스는 두번의 지옥 같은 전쟁을 경험하며 인간의 탁월함(Arete)은 신체적인 아름다움과 용맹, 용기가 아니라 절제와 헌신, 조화로운 정의, 지혜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기울어진 바닥에서는 바로 서기 힘들다. 네 탓 내 탓 남 탓 하지 말고, 패거리 만들어 오합지졸로 엮여 다투지 말고, 정당하고 정의로운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갈 사람이 하루 빨리 퇴진하면 희망의 물꼬는 트인다.
 
캄캄한 밤 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라. 다정히 이름 불러주지 않아도 항상 그 자리에서 빛난다. 떠나가고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서 별이 없는 어둔 밤 창을 두드리며 ‘울지 마라’ 손수건 건네주던 그대 손길처럼.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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