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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봤자 자폐잖아"…그래서 되레 판타지 '우영우' 만들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졌지만 서울대 수석졸업, 아이큐 164의 변호사 우영우(박은빈)는 첫 재판에서 배심원과 방청객을 향해 자신의 장애를 먼저 설명한 뒤 변론을 시작한다. 사진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양해말씀 드립니다. 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가지고 있어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 말이 어색하고 행동이 어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을 사랑하고 피고인을 존중하는 마음은 여느 변호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큐 164, ‘어차피 일등은 우영우’란 뜻의 ‘어일우’가 별명이었고,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 졸업했지만 졸업 후 6개월간 직장을 찾지 못했던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그는 로펌 취직 후 나선 첫 재판에서 이렇게 변론을 시작한다. 우영우는 한번 읽은 책 내용을 모두 기억하는 비상한 기억력을 가졌지만, 동시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도 가진 변호사다. 천재 자폐 변호사 우영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야기다.


‘힐링 드라마’ 입소문… 케이블 시청률 5.2% ‘대박’
자폐 장애를 가진 의뢰인과 대화를 하기 위해 '펭수' 노래를 부르는 우영우(박은빈)의 아이디어에 기꺼이 함께해주는 동료들(하윤경, 강기영)이 있는 판타지적 회사를 그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인을 부담이나 동정의 시선으로 보지 않아 '힐링 드라마'로 입소문을 탔다. 사진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이 드라마는 케이블 채널 ENA에서 시청률 5.2%로 ‘대박’을 쳤다. 첫회 시청률 0.9%로 출발했지만 입소문을 타며 3회 4.0%, 4회 5.2%까지 기록했다. 채널 최고 시청률 기록을 깬 건 물론, 굿데이터 집계 드라마 화제성 점유율 53.86%로 2위인 tvN '환혼'(10.63%)을 5배 차이로 누르는 압도적 1등을 차지했고, 넷플릭스 국내 시청 순위 1위를 기록 중이다.


이 드라마를 '착한 드라마' '힐링드라마'로 만드는 건 주인공 우영우의 장애를 따뜻하게 감싸안는 주변 사람들이다. 특이사항으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적어 낸 이력서 뒷장은 떼고 앞 장만 남긴 로펌 대표, 우영우의 ‘반향어’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반향어 금지”라고 즉시 반영해 상대해주는 상사, 우영우의 눈높이에 맞게 사회생활을 알려주는 동료 변호사 등 우영우의 장애를 신경 쓰지 않고 '능력 있는' 동료로 대하는 커뮤니티가 우영우를 둘러싸고 있다. 우영우에게 "그래봤자 너도 자폐잖아!"라고 소리치는 의뢰인, 법정에서 우영우의 장애를 들먹이며 변론의 신뢰를 떨어뜨리려는 검사 등 냉혹한 바깥 세상과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집단이다. 정덕현 평론가는 “‘어떻게 이런 사람이랑 일합니까’라며 편견에 차 있던 상사는 어느덧 우영우를 지지하는 사람으로 변하고, 주변에는 흔한 '빌런' 한 명 없다”며 “능력 있는 우영우가 장애로 인한 일상의 불편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편견 없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구성”이라고 분석했다. 김성수 평론가는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은 어찌 보면 판타지일 수 있지만, '언젠가 현실이 되겠지'라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고 말했다.


'중얼중얼' 우영우라서 가능했다… 어려운 용어도 술술
통째로 외운 법률용어를 읊어가며 설명하는 우영우의 사고 흐름은 화면에 입혀진 그래픽으로 보강했다. 어려운 법률용어와 의학용어, 고래에 대한 긴 설명도 그래픽으로 함께 전달되며 시청자의 이해를 돕는다. 사진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한 번 읽은 책은 모두 기억하고, 관심사를 빠르게 읊어대는 우영우의 '특별한' 자폐는 드라마를 끌어가는 동력이 된다. 자폐에 관한 의학용어, 어려운 법률용어가 숱하게 등장하지만, 드라마는 우영우의 독백으로 이를 가볍게 풀어낸다. ‘손해’의 3가지 종류, 뇌출혈의 종류를 설명하는 장면 등에서 우영우는 마치 '인간 백과사전' 같다. 정덕현 평론가는 "의학, 법률 용어를 대사로 풀면 어색한데, 우영우가 AI처럼 또렷하게 읊어주는 게 시청자에게 이해하기 쉽게 다가간다"며 "장애가 오히려 장애 요소가 아니라는 걸 거꾸로 보여주는 드라마 작법"이라고 설명했다.

“자폐를 발견한 사람은 한스 아스퍼거 (…) 일탈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이 모두 반드시 열등한 것은 아니다” 등 자칫 작위적으로 비칠 수 있는 대사도 우영우의 독백을 통해 의미 있는 메시지로 거듭난다. 김성수 평론가는 "장애를 가진 우영우 본인이 나레이터로 나서면서, 시청자도 우영우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보게 만드는 구성“이라며 "비장애인을 가르치려 하거나 질타하지 않고,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균형을 잘 잡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관찰, 표현 디테일…"'미안해 놀이'는 당사자만 알 수 있는 디테일"
박은빈이 표현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는 소음에 취약해 헤드셋을 쓰고 다니고, 고래를 좋아해 마음이 힘들 때는 고래를 떠올리는 캐릭터다. 박은빈은 "특정 영상이나 행동을 따라하는 것도 부적절할까봐, 텍스트를 기반으로 공부했다"고 제작발표회에서 밝혔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도 행동 특성은 개인마다 매우 다른 점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사진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우영우는 소음에 극도로 예민해 늘 헤드셋을 쓰고 다니고, 고래를 좋아해 틈만 나면 고래 이야기를 꺼낸다. 자폐인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다. 영화 ‘증인’에서 자폐인 주인공을 등장시켰던 문지원 작가는 김병건 나사렛대 유아특수교육과 교수에게 자문을 받으며 1년 간 이 작품을 준비했다. 자폐 1급의 자녀를 둔 이미영(56) 전 경기장애인부모연대 부회장은 "우영우가 학교 다닐 때 '미안해 놀이'로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는 대목은 실제로 겪은 당사자라야 알 수 있는 이야기"라며 "작가가 자폐인에 대해 얼마나 많이 관찰하고 고민했는지 느껴져서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자폐 자녀를 키우는 우영우 아버지의 심경을 표현한 대사도 "심정적으로 외로운 걸 표현한 드라마는 정말 드문데, 공감 가는 부분"(서울 장애인부모회 정순경 부대표)이라는 평가다.

물론 주인공이 예쁘고 똑똑하고, 자폐의 정도가 약하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자폐인 사랑협회 회장인 KCL 김용직 변호사는 "드라마가 자폐인의 요소를 담백하게 표현했다. 자폐를 가지면서 동시에 지능이 높고 실제로 변호사가 되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지만, 사람들이 자폐 장애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이미영 전 부회장도 "일단 사람들이 자폐에 관심을 갖게 하고, 덜 낯설게 하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1년 기다린 박은빈… 텍스트로 만든 캐릭터, 그래픽으로 펼쳤다
회의 중에도 수시로 고래 이야기를 꺼내는 우영우(박은빈)에게 상사인 정명석(강기영)은 아무렇지 않게 "고래이야기 금지~"라고 말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특성을 유별나게 보지 않고 무심하게 대하는 풍경이다. 사진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우영우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는 박은빈은 제작진이 1년을 기다려 섭외했다. 박은빈은 제작발표회에서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어떻게 연기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섣불리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면 안될 것 같았다”며 망설인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서강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박은빈은 “특정 인물을 따라하는 게 부적절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자폐 이론과 텍스트를 기반으로 우영우 만의 특성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에 자연스레 포개지는 그래픽도 우영우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수시로 떠오르는 고래 생각이 10페이지 넘게 펼쳐진 모습,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여러 ‘금지’를 지우고 나니 남은 말이 없어 돌아서는 모습 등을 그래픽으로 구현해 시청자가 우영우의 독특한 생각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게 했다.



제작사 에이스토리, 콘텐트주 약세에도 주가 상승
고래를 좋아하는 우영우는 상상으로 일과 중에도 수시로 고래를 불러낸다. 종이모형을 바탕으로 한 그래픽이 빌딩 숲, 한강 다리 위 고래를 표현하며 우영우의 머릿속을 보여준다. 사진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에이스토리, KT 스튜디오 지니, 낭만크루가 공동 제작한 드라마의 인기는 주가에도 반영됐다. 지난해 대작 드라마 '지리산'의 부진으로 최고 5만 300원이던 주가가 지난달 1만 6050원까지 떨어지며, 8개월 만에 68% 하락세를 보였던 에이스토리는 최근 콘텐트주 약세에도 불구하고 지난 4일부터 11일까지 6거래일 연속 상승했고, 시가총액도 1696억원에서 2988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드라마의 인기를 바탕으로 웹툰도 제작된다. 에이스토리 측은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4개 언어로 연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정연(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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