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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르포] "대통령 믿을 수 없다…진짜 물러날때까지 안 떠나"

시위대, 대통령 집무실·관저 계속 점거…관저는 구경 온 시민들로 북적 "모든 게 몇배씩 올라…휘발유 사려면 2박3일 대기" "고 홈 고타" "훔친 우리돈 돌려내라" 분노

[스리랑카 르포] "대통령 믿을 수 없다…진짜 물러날때까지 안 떠나"
시위대, 대통령 집무실·관저 계속 점거…관저는 구경 온 시민들로 북적
"모든 게 몇배씩 올라…휘발유 사려면 2박3일 대기"
"고 홈 고타" "훔친 우리돈 돌려내라" 분노


(콜롬보=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우리는 대통령을 믿을 수 없다. 대통령이 정말 사임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전까진 여기에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라자팍사 가문을 믿을 수 없다."
11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대통령 집무실 앞 시위 현장에서 만난 딜람 라나싱하씨는 아직은 시위대가 철수할 시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지난 9일 반정부 시위대는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등을 점령했고 고타바야 대통령은 결국 오는 13일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시위대는 고타바야 대통령이 실제 사임을 해야 시위는 끝날 것이라며 여전히 대통령 집무실을 점령한 채 "고 홈 고타"를 외치고 있었다. 집무실 인근 갈레 페이스 광장에는 지난 4월부터 점령하고 있는 수십 개의 시위대 텐트들로 가득했다.


대통령 집무실이 대통령의 완전한 퇴진을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성난 시위대의 무대라면 이곳에서 500m 정도 떨어진 대통령 관저는 마치 관광지 같은 풍경이었다.
고타바야 대통령이 떠나고 시민들이 차지한 대통령 관저를 구경하러 온 입장객들로 긴 줄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질서를 지켜가며 침실과 정원, 수영장 등을 구경하면서 함께 온 가족, 친구들과 웃으며 기념 촬영을 했다.
대통령 관저에서 만난 한 여대생은 "그동안 대통령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습을 구경하고 싶어 친구들과 왔다"고 말했다.
시위대가 집무실과 관저를 점령하기 직전에 피신한 뒤 퇴임 의사를 밝힌 고타바야 대통령은 현재 스리랑카 해역의 해군 함정에 머무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리랑카에서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점령하는 격렬한 시위가 발생한 배경은 1948년 독립 이후 최악의 상황인 경제난에 있다.
2019년 4월 '부활절 테러'와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맞으면서 핵심 외화 수입원이었던 관광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2018년 44억달러(약 5조7천500억원)에 달했던 관광 수입이 지난해 2억6천만달러(약 3천400억원)로 추락했다.
이 영향으로 국내총생산(GDP)도 2018년 880억 달러에서 2020년 807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수년 전부터 중국과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벌이다 빚더미에 올라 가뜩이나 돈이 없는 상태에서 위기가 엎친데 덮친 형국으로 발생하면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
결국 외환이 바닥났고, 지난 5월 18일 국채 이자를 갚지 못하면서 국가 부도가 났다.
이 와중에 정부는 민생을 살리겠다며 돈을 찍어내고 감세 정책을 폈고, 일부 품목들의 수입을 제한했다.
하지만 달러는 바닥난데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과 식량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가 치솟기만 했다.
6월 콜롬보의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54.6% 치솟았다. 경제 전문가들은 물가상승률이 50%를 넘어가면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진입한 것으로 판단한다.


콜롬보 시내 골피티 마켓에서 만난 상인 찬드라씨는 "작년 이맘때는 오렌지 가격이 1㎏에 450 스리랑카 루피(약 1천620원)였는데 지금은 1천600 스리랑카 루피(약 5천700원)까지 올랐다"며 "달러가 없으니 모든 물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스리랑카에서는 휘발유나 가스 등 각종 수입품을 구하기 어려운 상태다.
이날 콜롬보의 관문인 반다라나이케 국제공항에서는 개인 차량이나 호텔과 여행사가 제공하는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는 콜롬보 시내로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반다라나이케 공항 직원은 "과거에는 택시로 가득 찼지만, 지금은 연료 문제 때문에 택시가 없다"며 "여행사나 호텔에 연락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휘발유를 구하기 어려워 콜롬보 시내버스도 간간이 운행되고 있고, 도로에 차량도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주유소에는 기름을 받으려는 차들로 가득했다. 시내의 한 주유소에는 기름을 넣기 위해 기다리는 차량으로 줄이 600m가량 길게 늘어섰다. 몇 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한 운전자는 그나마 이 주유소는 하루에 한 번 인도에서 휘발유 탱크가 들어와 기다리면 기름을 얻을 수 있다며 "지난번에는 2박 3일을 기다려 휘발유를 샀는데 이번에는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통받는 시민들의 분노는 2005년부터 사실상 스리랑카 정계를 장악해온 라자팍사 가문으로 향했다.
라자팍사 가문의 마힌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2005∼2014년까지 독재에 가까운 권위주의 통치를 주도했다.
이후 정권이 바뀌었지만, 그의 동생 고타바야 라자팍사가 2019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부활했고, 형인 마힌다 전 대통령을 총리에 앉히는 등 주요 요직을 라자팍사 가문 출신으로 완전히 채웠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유튜버 찬드라 세카르씨는 "대통령과 그의 가문이 나라의 돈을 훔쳤다"며 "스리랑카 경제가 어려운 것은 대통령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타바야 대통령이 사임 의사를 밝힌 현재 각 정당은 마힌다 야파 아베이와르데나 국회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또 야권 지도자들은 전날 현 정권 퇴진 이후의 정부 구성 방안 등을 협의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합의는 이뤄지지 않아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변성철 스리랑카 한인회장은 "스리랑카에서 27년을 살았는데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며 "현지 진출 한국 기업이나 교민 사회도 생활하기 너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laecorp@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박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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