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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물뿌리개

비가 오지 않는다. 강과 댐이 메말라 있고 흙이 갈라져 거북이 등을 연상케 한다. 로스앤젤레스는 사막기후로 겨울철이 우기가 되어 강수량을 채워 주었다. 지난 겨울엔 비 온 날이 몇 손가락이나 꼽혔을까?
 
 넓은 뜰 덕분에서 코로나19팬데믹 상황이었지만 남편 은퇴 행사와 내 출판기념회를 가질 수 있었다. 신선한 바람 속에서 여유를 만들어 주는 뜰을 좋아했던 마음이 근심으로 바뀌었다. 누렇게 변한 잔디를 바라보니 마음마저 황량해진다.  
 
 봄철이면 텃밭에 갖가지 야채를 심는다. 손주를 돌보듯이 그들을 키우는 보람이 날 젊게 했다. 초록 고개를 들고 넝쿨을 뻗어가던 수박, 호박, 오이 이파리가 시들시들 기운을 잃는다. 가지, 토마토, 고추도 예전처럼 열매를 맺지 못한 채 주춤거리고 있다. 뜰에서 화사하게 웃어주던 꽃잎도 고개를 숙여 쉬 떨어지고 만다. 다알리아꽃이 봉오리를 활짝 열지 못하고 뾰로통하게 오므린 입술 모양을 하고 있다. 이를 어쩌나! 정성 들여 키운 초록 가족을 방치할 수 없다.  
 
 남편이 수동 호스를 끌어와 키 작은 묘목에 물을 준다. 절수의 방법으로 고심 끝에 선택한 방법이다. 나는 물뿌리개에 물을 담아 꽃의 뿌리 부분에만 물을 부어준다. 마른 입술에 물을 축이듯이. 몸에 기별이나 가려는 지 모르겠다.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서 부지런히 물을 준다. 입 벌린 손주에게 수유한다고 생각하니 힘든지 모른다.  
 
 암스트롱 화원에서 볼록한 배에 목선이 미끈하게 빠진 앙증맞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얼른 그의 손잡이를 잡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가벼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초록색 물뿌리개다. ‘Watering Can’으로 포르투갈의 분출이라는 어원에서 온 일본어 ‘조로, 조루’가 합치고 변형되어 ‘물조리개’가 되었단다. 나는 그를 ‘물뿌리개’로 부르기로 했다.
 
 손잡이를 기울이면 기다란 목을 타고 가느다란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분사기 역할을 하는 휴대용 용기이므로 손으로 식물에 물을 주는 데 편리하다. 필요한 곳에만 집중적으로 물을 주니 낭비를 막는다.  
 
 화씨 90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날씨에 텃밭 가족이 걱정되어 눈을 뜨자마자 정원으로 향했다. 여린 채소는 어린아이와 같아서 자주 먹어야 하는데 어제도 물을 주지 못했다. 죽은 듯 숨죽인 모습을 예상하며 가까이 다가섰는데 웬걸! 다행이다. 흙이 촉촉했다. 하루의 기온 차이가 큰 탓에 새벽에 이슬이 내렸나 보다.  
 
 물뿌리개는 메마른 마음을 소리 없이 적셔주는 이슬비와 같다고 할까. 이슬비는 담담하고 유연한 자태로 어려움을 건너며 다가온다. 흙과 같은 내 안 깊숙이 찾아와 마음을 다독인다. 물뿌리개의 줄기가 채소와 꽃잎을 부드럽게 두드린다. 가뭄의 아픔을 만져주며 성장토록 한다.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돕는 자다. 

이희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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