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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아버지 마음

“엄마.”
 
10시가 지났다. 자고로 밤 10시가 넘어서 오는 전화치고 좋은 소식이 없다.
 
“왜. 무슨 일 있니?”
 
“케이티 차 고장 났어.”
 


“그래? 어떡하니? 넌 어디에 있는데.”
 
딸은 샌타바버러에 있는 학교에 다닌다. 차도 없고 운전을 해도 한 시간이 넘는 먼 길이라 매주 오지는 못하고 한 달에 우리가 두어 번 정도 데리러 간다. 작년에 운전 면허증을 딴 딸은, 가까운 거리는 운전해도 샌타바버러까지 갈 정도의 실력은 아니다.
 
일요일 오후에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기로 했는데, 고등학교 동창인 케이티와 린지가 마침 샌타바버러에 가는 길이라며 딸을 픽업해 갔다. 코로나19 끝 무렵이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있고 싶어서였다.  
 
어느덧 밤이 되자, 케이티와 린지가 LA로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케이티의 차에 시동이 안 걸렸다. 그 밤중에 차를 샌타바버러에 두고 집으로 갈 수도 없고, 차를 고칠 곳도 마땅치 않은 난감한 상황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날 밤으로 시빅을 견인해서 LA 집에 가는 것이었다.  
 
케이티의 아버지는 케이티가 학교를 졸업하자 중고 혼다 시빅을 사줬다. 그리고 자동차보험(AAA)을 들어줬다. 케이티가 보험사에 전화하자, 얼마 후 견인차 운전기사가 왔다. 사정을 들은 30대의 히스패닉계 기사는 잠시 이곳저곳을 보더니 얼터네이터가 고장 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케이티 보험 카드를 보더니 기본 보험이라 한 번에 3마일 무료 견인밖에 커버리지가 안 된다고 하며 딸과 린지에게 혹시 AAA 보험을 들었냐고 물어봤다.
 
우리가 든 AAA 보험은 한 번에 100마일까지 견인할 수 있다. 그래서 딸이 급한 마음에 집으로 전화한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남편은 흔쾌히 우리 보험을 쓰라고 허락했다.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 딸의 사진이 백미러에서 흔들리는 견인차로 운전기사는 딸을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두 아이와 함께 LA로 향했다. 왕복 세 시간이 걸리는 거리, 밤 11시가 넘은 상황이었지만 운전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밤에 낯 모르는 틴에이저들의 안전을 위해 LA로 떠났다.
 
세 사람은 밤중을 지난, 죽은 듯한 고요 속에 101번 프리웨이를 타고 한 시간 반이 넘는 케이티의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케이티의 아버지는 린지를 집에 데려다 줬다. 견인차 운전자는 한층 달에 푸르게 젖은 해안가 수풀을 지나며 흐뭇한 달빛을 받고 파도치는 캘리포니아 1번 도로를 따라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케이티의 아버지가 딸을 통해 고맙다며 사례를 하겠다는 연락이 왔지만, 남편은 케이티와 린지가 무사히 와서 다행이라며 괜찮다고 사양했다. 만약에 딸아이가 그 사정이었다면 케이티의 아빠도 똑같이 했을 거라고 믿는다.

이리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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