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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문재인과 박시환, 인혁당 피해자

고정애 논설위원
인혁당 사건 자체는 박정희 정권 때인 1975년 전후의 일이다. 간첩으로 조작, 8명이 사형당하고 17명이 장기투옥됐다. 33년 지나서야 무죄로 바로잡혔다. 노태악 대법관이 2년 전 인사청문회에서 역사상 가장 아쉬웠던 대법원 판결로 이걸 뽑으며 ‘사법 살인’이란 표현을 썼다.

최근 주목받은 인혁당 사건 피해자 소송은 좀 다르다. 거칠게 정리하면 ‘진보 대법관’에서 기인했고 ‘진보 대통령’조차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게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원인 자체는 2011년 대법원 판결이다. 앞서 피해자들은 국가정보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위자료 279억원과 유죄 판결이 확정된 75년 4월 9일 시점부터 지연이자(연 5%)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모두 759억원이었다. 이 중 490억원이 가지급됐다. 그런데 대법원이 지연이자 발생 시점을 항소심인 2009년으로 변경, 확정했다(파기 자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됐고 통화가치 등에 상당한 변동이 생겼다”는 이유를 댔다.

금태섭 전 의원이 2017년 전한 내막은 이랬다. “보수-진보로 팽팽하게 갈려 긴장이 높던 대법원의 내부 형편상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는지(싶었는데), 돌아온 전언은 그런 사정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냥 그 대법관이 보기에 손해배상금이 너무 많다고 여겼다고 한다.”

2017년 2월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낸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의 한 영화관에서 사법피해를 주제로 한 영화 '재심' 관람에 앞서 영화의 실제 주인공 들 및 사법피해 가족들과 만나고 있다. 이날 만남에는 김태훈 감독, 박준영 변호사, 황산만 군산서 전 수사반장, 최인철-장동익 엄궁동2인조 살인살건 피해자를 비롯해 인혁당 유가족들이 참석했다. 국회사진기자단
‘그 대법관’은 ‘진보 사법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박시환 대법관이었다. 4인 소부의 주심 판사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끄럽지 않게 양심에 따라서 자기의 직업을 수행하면서 인생을 살 수 있는 권리가 무엇이며 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말하기 위해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고 상찬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대법원장이 되어달라”고 요청했던 인물이다. 그는 “소수자, 소외된 자, 약자의 행복”(“『대법원, 이의 있습니다』)을 외치곤 했다. 왜 그런 판단을 했던 것일까.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은 한마디도 못 하고 34년 치의 지연이자를 토해내야 했다. 반환해야 할 돈이 211억원이었다. 변제하지 않으면 연리 20%의 지연이자도 물렸다. 이번 소송의 당사자는 반환 원금이 5억원이었는데, 여기에 붙은 지연이자가 9억6000만원까지 자랐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5년도 기이했다. 국정원이 환수에 나서자, 문 정권과 가까운 이들이 뛰었다. 2017년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에 이어 2019년 국가인권위에서 구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미온적이었다고 한다. 금 전 의원은 “총리실이 관심을 가지고 해보려고 했으나 청와대가 움직이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한다.

문 정권은 이런 논리를 댔다. KBS 정연주 사장이 세금을 더 환급받을 수 있는데도 법원 조정을 통해 이를 포기해 배임죄로 기소됐으니 이번 건도 포기할 수 없다고 말이다. 정 사장 건은 무죄로 확정됐다. “국가채권관리법상 국내 채권을 포기할 규정이 없다”고 했다고도 한다. 정작 윤석열 정부의 법무부는 길을 찾아냈다. 채무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하지 아니할 경우 연체금(지연이자분)을 면제할 수 있는 조항(제32조 2항,시행령 제32조 3항)을 적용했다.

사실 문 전 대통령과 진보 진영에 인혁당 사건은 ‘심장’ 가까이 있는 사건이다. 문 전 대통령이 인혁당 사건 사형 집행 다음 날 유신 독재 화형식을 주도하다 구속됐다는 건 널리 알려졌다. 종종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을 만난 일도 있다. 의당 해결 의지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도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능력이 없어서? 대법원 확정판결이어서? 진보 대법관이 걸린 문제라?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정치적 이해에 반하는 일이면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긴 하다(『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 이게 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이해에 반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진정한 의문은 이거다. 이 사건도 풀지 못한(또는 안 한) 진보가 진보인가.



고정애(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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