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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文-박지원 함께 제막한 '신영복 글씨' 원훈석 교체 추진

국가정보원이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서체로 적힌 원훈석 및 원훈 교체를 추진한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처벌받은 신 교수의 글씨로 대북 정보 활동을 하는 국정원의 정신을 담기엔 부적절하다는 국정원 안팎의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6월 4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에서 원훈석을 제막을 마친 후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에게 개정된 국정원법을 새긴 동판을 증정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22일 정보당국 및 정치권 등에 따르면 국정원은 원훈 및 원훈석 교체를 위한 내부 여론 수렴 절차를 곧 시작할 계획이다. 다만 교체 방침을 확정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앞서 국정원은 창설 60주년을 맞이한 지난해 6월 박지원 당시 국정원장 주도로 원훈을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이란 문구로 교체했다. 바뀐 원훈은 신 교수의 생전 글씨체를 본뜬 ‘어깨동무체’로 새 원훈석에 새겼다. 당시 원훈석 제막식엔 문재인 전 대통령도 참석했다.

국정원 원훈은 정권의 부침에 따라 수차례 변경됐다. 1961년 창설 이후 1998년까지는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1월 ‘정보는 국력이다’로 처음 변경됐다. 이어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08년 10월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6월엔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로 바뀌었다. 이를 문재인 정부가 5년 뒤 교체했고, 윤석열 정부가 다시 새 원훈 교체 작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원훈석 교체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신영복 글씨’로 새긴 원훈에 대한 국정원 전ㆍ현직 직원들의 반발이 있다고 한다. 신 교수는 1968년 북한 연계 지하당 조직인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20년간 복역하다가 지난 1988년 특별 가석방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용산 청사 접견실에서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 3월 초 국정원 전직 직원 1000여명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국정원의 정신이 상징적으로 함축된 원훈석을 북한 공작원 출신 신영복 글씨체로 바꿨다”며 “국정원의 정신까지 말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전옥현 전 국정원 1차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대북 정보 활동에 주력하는 국정원의 혼을 되살리기 위해 새 원훈석이 제작될 때까지 ‘신영복 글씨체’로 적힌 원훈석을 검은 천으로 덮어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훈석 교체 방침은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비공개로 열린 김규현 국정원장 인사청문회에서도 언급됐다. 한 국회 정보위원이 “‘신영복 글씨가 적힌 원훈석을 교체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김규현 원장이 ‘국정원 직원들은 다 교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체 추진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고 답했다.

2018년 2월 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장에 고 신영복 교수의 '춘풍추상(春風秋霜)' 이란 글이 걸려 있다. '춘풍추상(春風秋霜)' 밑에는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관대하고 자기를 지키기는 추상같이 엄격해야 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에선 국정원의 원훈석 교체 추진이 윤석열 정부의 ‘전 정부 지우기’ 및 ‘국정원 개혁’의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신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현 개성고) 선배로, 문 전 대통령과도 오랜 인연을 쌓았다.

신 교수는 노무현 정부 당시 노 전 대통령에게 ‘춘풍추상(春風秋霜)’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자신의 글씨를 선물한 적이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문 전 대통령 진영의 대선 슬로건이었던 ‘사람이 먼저다’의 서체도 신 교수 작품이다.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2월 청와대 소회의실에 ‘춘풍추상’이란 족자를 내다 걸었는데 이 역시 신 교수 글씨였다.



김기정(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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