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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 진노하자 윤지오에 고개 숙였다…'견찰'이 된 경찰 수뇌 [달나라금토끼가 고발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과 김창룡 경찰청장. 배경은 행안부 경찰국 신설을 반대한다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는 경찰청 청사. 그래픽=김은교 기자
정권마다 국정 운영 청사진과 국정 과제 추진 현황을 공직 사회에 알리는 홍보자료를 배포한다. 지난 문재인 정부 초창기에 배포된 자료의 한 장(章)은 ‘국민안전 강화’였는데, 그곳에 수록된 세부 정책 두 개 중 하나는 자치단체가 맡던 소방사무를 국가 사무로 환원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거꾸로 국가 사무인 경찰업무 일부를 자치단체에 넘겨주는 자치경찰제 도입이었다. 정반대 방향의 정책 두 가지가 어떻게 동일한 목표를 지향한다고 결론을 내렸는지 아직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문재인 정부는 국민 안전을 명분으로 내세워 이 두 가지 정책을 모두를 실현했다.

이와 비슷한 인지 부조화를 최근 경찰국 신설 논의에서 느끼고 있다. 법무부 장관에게 휘둘리던 검찰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한쪽에서 추진되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독립적이던 경찰을 통제하기 위해 행안부 내에 경찰국을 설치하겠다고 한다. 장관의 권력으로부터 검찰은 독립적이고 경찰은 종속적이어야 두 기관이 일을 잘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고작 경찰 실무자 따위가 이해하기에 너무 심오해서 도통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견찰' 조롱받는 문화가 더 심각
경상북도 25개 경찰 조직의 직장협의회가 지난 17일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입장문을 냈다.
하여간 지금 경찰 조직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경남, 경기북부, 경기남부, 전남, 광주에 이어 부산경찰직장협의회도 '경찰국 신설 반대' 입장문을 냈다. 반발이 거세지자 김창룡 경찰청장은 "경찰 독립성은 영원불변의 가치"라면서 "직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발언의 진정성을 믿기도 어렵거니와 경찰국 설치를 둘러싼 반발엔 정작 다뤄야 할 경찰의 진짜 문제는 빠져 있다. 바로 ‘견찰’ 소리를 들을 만큼 강자 앞에서 한없이 약하고 법치를 외면해온 경찰의 내부 문화 말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국정원 업무 이관 등으로 공룡이 된 경찰 견제 논의에서 출발한 정책 검토의 종착역이 행안부 장관에 대한 종속인 걸 보면 비단 경찰 조직뿐 아니라 정권이 바뀌어 지금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국민 안전과 권리 보장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경찰을 행안부 장관 아래 종속시키는 건 경찰의 고질적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우선 경찰의 권력 지향적 속성을 가속화할 수 있어서다. 경찰이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모습은 부끄러운 과거 역사 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현재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경찰은 늘 수사에 자부심을 갖는다고 하는데, 정작 권력 심장부를 겨냥해 대대적으로 수사를 진행했던 사건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경찰 지휘부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신성시하면서 정보 경찰 개혁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정권에 비판적인 보수단체 집회 때는 달랐다. 코로나19를 핑계로 무관용 운운하며 서울 광화문 광장을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보이는 공터로 만드는 이중성을 보일 때, 부끄러움과 자괴감은 오로지 최일선에서 그 어처구니없는 상부 지시를 집행하는 경찰관의 몫이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최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면접을 봤던 치안정감 승진자 6명 중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면접을 거절한 사람이 있었을 거라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권력 종속에 개의치않는 경찰 수뇌부
지난 2017년 김부겸 당시 행안부 장관(왼쪽에서 둘째)과 이철성 경찰청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김 장관은 직전에 “차렷, 국민께 경례!”를 외쳤다. 맨 오른쪽이 강인철 당시 중앙경찰학교장. [중앙포토]
김 청장은 지난 17일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하며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사실 수뇌부는 행안부 종속에 크게 거부감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정권 실세였던 행안부 장관에게 경찰이 스스로 머리를 숙였던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고를 친 후 부모님에게 손목 잡혀 교무실에 끌려가는 학생처럼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18년 민갑룡 경찰청장은 김부겸 당시 행안부 장관과 함께 김명수 대법원장 차량 시너 투척 사건에 사과하러 갔다. 앞서 2017년 강인철 중앙경찰학교장의 항명 사태가 있었을 때도 김부겸 장관이 담임선생님처럼 이철성 당시 경찰청장과 강 학교장을 양쪽에 앉혀놓고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다. 지난 정부 마지막 날까지 경찰청 간부들이 전해철 행안부 장관에게 수시로 불려 다녔다는 말이 도는 걸 보면, 언제부터인지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공허한 구호에 그친 게 아닌지 모르겠다. 조직 독립성을 직접 훼손할 수 있는 사안이 공공연하게 논의되고 있는데도 경찰 수뇌부는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경찰 수뇌부의 입이 전혀 무겁지 않았던 걸 떠올려보면 경찰 수뇌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정치적 중립은 한참 뒤로 밀려있는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경찰 통제’라는 효과를 낼 수 없다는 점이다. 경찰이 전례 없이 큰 권한과 인력을 갖게 되면서 논의되기 시작한 게 경찰 통제다. 즉, 경찰의 권한 오남용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지가 논의의 핵심이어야 한다. 하지만 행안부 종속은 경찰 통제를 오히려 약화할 수 있다. 오랫동안 경찰은 외부의 인사 청탁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있었다. 최소한 그런 척이라도 해왔다. 하지만 앞으로 행안부가 경찰 인사의 중요한 키를 잡을 것이다.

법무부 검찰국이 검사 승진의 필수 코스였던 것처럼 행안부 경찰국은 경찰 고위직 승진의 필수 관문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청장 한 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전국 14만 경찰관들은 앞으로 행안부 장관 한 마디 한 마디를 주목하게 될 것이다. 현직 장관은 물론 차기 장관으로 유력한 차관이나 장관 물망에 오른 정치인 등 외부인사 입김이 작용할 개연성은 결코 작지 않다.

반면 경찰 징계는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 경찰은 음주운전 한 번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할 정도로 징계 수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일반 공무원 사회에선 찾아보기 힘든 감봉이나 정직 징계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만약 행안부 장관이 징계한다면 다른 행정직 공무원과 징계 수위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른 징계처분을 내릴 법적 근거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수사 역시 마찬가지다. 정통 행정관료나 지방행정 전문가인 장관이 수사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경찰 수사를 통제할 수 있을까. 도리어 장관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수사를 좌우하도록 악용될 소지가 있다. 이쯤 되면 경찰의 행안부 종속 안을 내놓은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경찰’도 없고 ‘제도’에 대한 고민도 없으며 ‘개선’할 생각은 전혀 없는데, 대체 뭘 ‘자문’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경찰 정치적 동원 늘어날까 우려
경찰은 원래 그런 조직이라고 비아냥과 냉소만 던지고 넘어가기엔 우리 사회의 안전과 안정을 위해 경찰의 역할이 너무 크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즉, 행안부 종속은 치안서비스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행안부 종속에 대한 내부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고민 중인 카드가 현장 인력 증원이라고 한다. 이미 지난 수년간 의경 대체를 위한 증원이 진행되어 경찰은 단일 기관으로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그런데도 더 증원하겠다는 게 과연 국가의 재정 건전성과 정부의 효율 측면에서 정당한지 의문이다.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법무부와 대척점에 서서 경찰을 대변하던 행안부가 과연 객관적 입장에서 경찰을 견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국가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고유 업무와 관계없이 인력을 동원하던 경찰이 앞으로는 행안부 행사에까지 동원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크다. 코로나 시국에 전국 경찰관들은 순번을 정해 자가격리자의 격리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밤마다 초인종을 누르고 다녔다. 사립유치원의 집단폐원 움직임이 있을 때도 관내 사립유치원이 실제로 폐원을 했는지 확인하고 다닌 게 경찰들이다. 학교폭력 이슈가 나올 때마다 전국의 학교폭력 담당 경찰관들은 어깨에 띠를 두르고 교문 앞에 서 있거나 일진 학생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 업무가 된다. 지금도 이미 경찰의 핵심 업무가 아닌 변두리 업무에 치중하고 있는데, 정치인 장관이 자신의 정치 이슈에 경찰을 동원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장치는 생각이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인천 논현경찰서 경찰관들이 지난 3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예방 활동을 하고 있다. 경찰은 이처럼 수사와 치안 유지 업무 이외의 일에 자주 동원된다. [뉴스1]
슬프게도, 퇴임이 코 앞인 현 김창룡 경찰청장과 차기 경찰청장 승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최고위급 지휘관을 비롯해 승진을 못 하면 직장생활을 이어가지 못하는 경찰 지휘부가 실제로 직을 걸고 행안부 종속에 저항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더욱 슬픈 건 지금까지 경찰은 권력자의 뜻만 따라왔기 때문에 행안부 종속 후에도 국민이 체감하는 치안서비스가 아주 급격하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듯이 경찰청장이 단일 사건(버닝썬) 수사에 "조직의 명운" 운운하고, 권력자가 진노했다는 말 한마디에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채 스마트워치 미작동(※실제는 조작 미숙) 불만을 토로한 장자연 사건 참고인 윤지오씨에게 경찰 간부가 고개 숙여 사과하는 일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정말 슬프지만, 경찰 통제가 거론되기 시작할 때 정책 결정자들에게 기대했던 치안에 대한 이해와 법 집행 현장에 대한 고민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김대근의 반박불가] 경찰 통제 주체는 권력이 아니라 시민이어야
행정안전부에 경찰 사무를 관장하는 경찰국을 두면 정권에 대한 경찰의 종속성이 커질 것이라는 현직 경찰관 달나라금토끼(필명)의 칼럼과 관련해 김대근 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이 동의한다는 취지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그는 통치 권력의 경찰 통제 권한을 강화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전문은 중앙일보 사이트 '나는 고발한다' 섹션(www.joongang.co.kr/series/11534)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달나라금토끼(c_projec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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