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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도 자부심도 사라졌다"…中 코로나 봉쇄에 '탈출학' 떴다

지난해 8월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 제3터미널의 홍콩행 부스에 유학을 떠나려는 중국 학생과 가족들이 몰려 있다. 중국이 엄격한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고 교육 규제가 강화되면서 중국을 떠나려는 젊은이들의 출국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신경진 특파원
#1. 지난 2018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상하이로 돌아왔던 1985년생 양(楊) 씨는 최근 이민을 위해 태국 유학 비자를 신청했다.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단지에서 매일 다툼이 벌어진다. 주민 단체대화(단톡)방도 마찬가지다. 흰 방호복을 입은 요원은 수시로 현관을 두드린다. 언제 이런 상황이 끝날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양 씨가 태국행을 서두르는 이유는 지난 3월 겪었던 사건 탓이다. 당시 양 씨의 아파트에 각혈 증상을 보이는 코로나19 여성 확진자가 발생했다. 집중 격리소조차 환자 수용을 거부하면서 아파트 정문 앞에 버려졌다. 일부 주민은 여성에게 쇠사슬을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씨가 위법이라며 겨우 말렸다.
“무차별 봉쇄에 동정심 없이 다툼만”
“당시 주민 중 기본적인 동정심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양 씨는 홍콩 명보에 당시 상황을 토로했다. 양 씨는 이 사건을 겪은 뒤 국제도시 상하이에 품었던 애착과 귀속감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봉쇄가 풀리자마자 단지 내 다른 젊은이들은 고향이나 홍콩으로 떠났다. 양 씨 역시 아직 현지 조사와 출판 작업이 남아 있지만, 미련 없이 상하이를 떠날 계획이다.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두 달여 이어진 상하이 봉쇄가 풀린 지난 6월 2일 방호복을 입은 인부가 황푸강변 와이탄을 청소하고 있다. 상하이 봉쇄 이후 중국의 방역 정책에 환멸을 느낀 시민을 중심으로 탈중국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2. 상하이에서 컨설팅 업체에 근무하는 토박이 리키(Ricky) 씨도 이민을 생각 중이다. 봉쇄를 겪은 그는 “상하이에 일말의 환상을 품었다는 점이 놀랍다”며 “상하이 역시 중국의 한 도시일 뿐이란 점을 무시했다”고 토로했다. 봉쇄 직전까지 2500만 시민 전체 핵산 검사조차 하지 않았을 정도로 정밀 방역을 자랑했던 세계적인 대도시 상하이 시민의 자부심은 봉쇄 두 달 동안 완전히 사라졌다.

리키는 “지금 상하이는 어릴 적 실무를 중시하는 현지 간부들이 다스리던 상하이가 아니다”며 “외지에서 온 간부들로 이미 특색 없는 베이징의 한 지역구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중앙에서 파견된 간부가 뉴스에서 “상하이 보위전”을 외쳤지만 현장에서 이들을 본 적이 전혀 없다면서다. 리키 씨는 당뇨와 혈압으로 고생하는 90세 외조부모만 안 계시면 곧 이민을 떠날 계획이다.
홍콩대가 운영하는 차이나 미디어 프로젝트 사이트에 올라온 중국 신조어 ‘윤학’을 설명한 화면이다. 영어 RUN과 발음이 같은 한자 윤(潤)을 차용해 윤학(潤學)이라고 명명했다. [차이나미디어프로젝트 사이트 캡처]
2년 넘게 고수하는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에 환멸을 느낀 젊은층을 중심으로 중국에서 ‘윤학(潤學·Runology)’이라는 유행어가 인기다. 한자 ‘윤택할 윤(潤)’의 중국식 발음인 ‘룬(rùn)’이 ‘도망치다·탈출하다’는 영어 단어 ‘RUN’과 같은 표기인 데서 나왔다. 중국 젊은이들은 ‘RUN’에 ‘학문’을 뜻하는 학(學)을 붙여 ‘중국을 탈출하다’, ‘해외 이민’을 뜻하는 대명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봄부터 젊은 MZ(밀레니얼과 제트)세대 사이에서 번진 집·차·결혼·아이·소비를 포기하고 평평하게 드러누워 살겠다는 ‘당평(躺平·중국식 발음은 ‘탕핑’) 운동’이 이젠 윤학으로 진화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中 젊은이들, 경쟁→눕기→탈출로 눈 돌려
중국의 새로운 사회 트렌드를 연구하는 홍콩대 차이나 미디어 프로젝트의 데이비드 밴더스키 국장은 “경기 부진과 숨이 막힐듯한 정치·사회 환경에 처한 중국 젊은이에게는 ‘내권(內捲·involution)’, ‘당평’, ‘윤학’ 세 가지 선택이 있다”고 설명한다.

중국 젊은이에게 주어진 세 가지 선택 중 첫째 ‘내권’은 중국에서 극소수의 승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을 위해 치열한 경쟁 속에 뛰어드는 것을 말한다. 진화(Evolution), 혁명(Revolution)과 다르게 개인이나 사회가 발전하지 못하고 소모적으로 퇴보하는 현상을 일컫는 인류학 용어에서 나왔다.

당평은 두 번째 선택지다. 야망이나 욕심을 버리고 남에게 착취당하는 과로를 거부하면서 평평하게 누워 인생을 살자는 주장이다. 인생에서의 목표 설정이나 타인과의 경쟁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새롭게 등장한 선택이 ‘윤학’이다. 중국의 사회적 문제와 개인적인 좌절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는다는 제3의 선택이다.
상하이 봉쇄가 한창이던 지난 4월 16일 인맥을 동원해 상하이 푸둥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이주한 자양칭(賈揚淸) 알리바바 기술담당 부총재.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윤학의 시조로 불린다. [자양칭 페이스북 캡처]
윤학의 시조도 등장했다. 상하이 봉쇄가 한창이던 지난 4월 14일 인맥을 동원해 미국으로 탈출에 성공한 자양칭(賈揚淸) 알리바바 기술담당 부총재를 말한다. 구글과 페이스북에서 근무한 뒤 알리바바에 합류했던 자 부총재는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뒤 중국에서는 막힌 페이스북에 탈출기를 올리면서 파장을 만들었다.
자녀 데리고 유학 이민 인기
‘윤학’이라는 유행어가 보여주듯 중국에서 유학 이민이 인기다. 지난달 23일 중국 국가이민관리국이 “필요하지 않은 출국을 엄격히 제한하고, 출입국 증서 비준과 발급을 엄격히 심사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유학을 출국이 가능한 필요 활동으로 분류했다. 여기에 쌍감(雙減, 학교 안과 바깥의 학업 부담을 줄이는 중국 교육 정책)으로 불리는 중국의 교육 규제도 유학 이민을 부추기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6일 ‘제로코로나’와 교육 규제로 위기에 처한 중국 내 국제학교 현황을 고발했다. 주중 영국상회(주중 영국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외국인 교사 60%가 올해 중국을 떠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45만 재학생의 사립 국제학교 535곳과 재학생 9만9000명의 외국인 국제학교 113곳이 존폐 위기에 처했다. 이들 학교의 중국 학부모들 사이에선 초·중생 자녀와 함께 부모가 MBA 유학을 내세워 이민을 준비하는 가정이 크게 늘고 있다.

자산가의 탈중국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이주 중개 업체인 헨리&파트너스는 지난 13일 ‘백만장자들이 다시 이주한다’는 보고서를 내고 올해 안에 금융자산 100만 달러(13억원) 이상의 고액 순자산 보유자 중 중국인 1만 명, 홍콩인 3000명이 이민을 떠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제재를 받는 러시아에 이어 2위에 올랐고, 홍콩은 인도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표)

글로벌 이주 중개 업체인 헨리&파트너스가 추산한 2022년 한 해 동안 자산가들의 이민 추정 수치와 순위다. 글로벌 제재에 시달리는 러시아가 1위, 중국이 2위, 홍콩이 3위를 차지했다. [헨리&파트너스 캡처]
물론 ‘윤학’ 현상이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한 중국 이민 중개업자는 19일 홍콩 명보에 “상하이 봉쇄 기간 접수된 이민 자문이 평소 10배로 증가했지만, 봉쇄가 풀린 뒤 평소 수준을 회복했다”며 “지난 2020년 우한(武漢) 봉쇄, 2018년 개헌(국가주석 임기 제한 조항 폐지) 당시와 비슷하다”고 밝혔다. 그는 “겉으로 ‘윤(潤)’은 보기 좋지만 실제 이민 과정에서 겪는 고통을 숨긴다”며 “이민을 떠난 많은 이들이 과거와 이별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큰 대가를 치른다”고 지적했다.


한편 최근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百度)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5월 ‘이민’ 검색량은 4월 대비 300% 증가했다. 또 베이징이 상하이를 제치고 이민 검색량이 가장 많은 도시로 부상했다. 코로나 확산으로 5월 한 달 식당 내 취식이 금지되고 봉쇄 아파트가 늘면서 생긴 불안감을 반영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경진(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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