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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부자'도 인플레 우려 시작했다…잘나가던 명품, 외면받을까 [뉴스원샷]

갈수록 먹고 살기가 힘들다. 기름값을 필두로 먹고 입고 노는 데 드는 돈과 전기·가스 같은 공공요금이 일제히 치솟고 금리 인상으로 이자부담까지 커지고 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상품의 물가가 전반적·지속적으로 오르는 인플레이션의 시대다. 당분간 물가는 계속 오를 전망이고, 경제는 침체되는데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강력한 스태그플레이션이 지구촌을 덮치면서 한국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주가 폭락, 환율 폭등, 금리 급등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복합위기다. 연합뉴스
지갑열기가 두려운 요즘이지만 불과 얼마 전만해도 ‘보복소비’란 말이 흔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억눌린 소비 욕구를 분출하듯 돈을 쓰는 이 현상은 명품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명품들은 코로나 기간 수차례 큰 폭으로 가격을 올렸지만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많아 해외 명품 기업들은 큰돈을 벌었다. 샤넬만 해도 지난해 국내에서 네 차례, 올해도 1월과 3월 두 차례 가격을 올렸다. 최근에도 6~7월 인상설이 돌며 주요 백화점 샤넬 매장 앞에 다시 줄 서기가 시작됐다. 고통스러운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도 명품 열풍은 계속되는 걸까.
샤넬 루이비통 구찌 까르띠에 불가리 등 '명품'이라 불리는 럭셔리 브랜드들은 코로나19 이후에도 매년 수차례 가격을 올리고 있다. 사진은 샤넬이 입점한 서울의 한 백화점. 연합뉴스
흔히 명품을 살 정도의 고소득자들은 경기침체나 가격인상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 15일 구찌가 ‘재키1961’(스몰 호보백)을 272만원에서 310만원으로 올리고, 앞서 3월 샤넬이 인기제품인 ‘클래식 플랩백’(미디엄)을 1124만원에서 1180만원으로 올려도 38만~56만원 때문에 사려던 물건을 안 사는 일은 없다는 얘기다.

샤넬 클래식 플랩백(미디엄) 가격 추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문제는 명품 구매자가 모두 고소득자는 아니란 점이다. 특히 코로나 기간엔 해외여행 등에 못 쓴 돈을 명품에 쓴 사람, 명품을 되팔아(re-sell) 재테크 수단으로 삼은 사람, 밥값을 아껴가며 모아모아 명품을 ‘장만’한 사람도 적지 않다. 각종 생활비가 오르고 화폐가치가 떨어져 사실상 임금이 깎이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들의 명품소비는 줄 수밖에 없다.

‘진짜 부자’들 사이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딜로이트는 매달 한국을 포함한 23개 주요국 소비자들을 설문조사해 소비자 동향을 분석하는데, 최근 몇 개월간 부유층과 중산층의 인식이 비슷해지고 있다.
일례로 지난 5월 말 현재 ‘생활 물가가 계속 오르는 것이 걱정된다’는 중간소득자가 77%인데 같은 걱정을 하는 고소득자도 74%나 됐다.
‘3년 안에 재정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보는 중간소득자는 46%에 불과했는데 고소득자도 이 비율은 54%정도였다. ‘6개월 안에 새 차를 살 계획’이라는 답도 중간소득자(28%)와 고소득자(31%) 간 큰 차이가 없었다.

〈세계 소비자들의 항목별 물가 인상 인식〉
※ 직전 달보다 물가가 올랐다고 인식하는 세계 23개국(한국포함) 2만3034명 소비자 평균. 자료 : 딜로이트
무엇보다 주머니 사정과 별개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하나 있다. 코로나19와 이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거세지는 인플레이션 등 모두가 어려울 때 아랑곳하지 않고 가격을 올려온 명품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감정’이다.
명품은 품질뿐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애정·동경·충성·신뢰 등이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 몇 년간은 ‘코로나 탓에 어쩔 수 없이 올렸다’는 말이 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로 인해 호황을 누리고 역대급 실적을 올린 명품 기업들이 다시 ‘인플레이션 탓에 올릴 수밖에 없다’는 자세를 취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기업이 필요 이상으로 가격을 올린다고 생각하는 소비자 비율(파란막대)〉
※ 2022년 5월말 조사 기준. 자료 : 딜로이트
딜로이트 조사 결과 세계 소비자의 절반 이상(54%)이 기업이 자신들의 이익을 늘리려고 실제 늘어난 비용 이상으로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고 답했다. 분노까진 아니라도 기업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생필품이 아닌 명품은 가장 먼저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 실제 소비자들은 기업이 필요 이상으로 가격을 올린다고 느껴진다면 의류·레저·외식·유흥 등의 분야에서 지출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굳이 지출을 줄일 필요없는 부유층도 원칙없고 불투명한 가격인상이나 소홀해진 고객 관리 등으로 신뢰를 잃은 브랜드 대신 다른 명품 브랜드로 발길을 돌리면 그만이다. 더불어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인플레이션 시기엔 명품 대신 금이나 부동산 같은 안전자산 투자를 선택할 수도 있다.
밤을 새워서라도 명품을 원했던 소비자들과 몸값을 올리며 희소가치를 더해가던 명품들. 어쩌면 전염병 이후 맞은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의 시기가 이 기울어진 관계에 변화를 가져올지 모른다.





이소아(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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