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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발자국 쫓기에 아기 걸음으론 역부족…한은도 빅스텝 밟나

저만치 뒤떨어져 있던 미국의 기준금리가 단숨에 한국과 같은 수준이 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으며 한·미 금리 역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동안 '아기 발걸음'(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만 했던 한은이 보폭을 키워 이르면 다음 달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0.5%포인트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Fed는 14~15일(현지시각)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했다. Fed가 거인의 발걸음을 내디디며 미국의 기준금리(연 1.5~1.75%)의 상단(1.75%)과 한국의 기준금리(연 1.75%)가 같아졌다.


이제 한은의 추가 금리 인상은 상수가 됐다. 16일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거금회의) 직후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은 “물가에 보다 중점을 둔 통화 정책 운용”에 방점을 찍었다. 경기 둔화를 감수하더라도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금리 인상 속도다. 한은은 지난해 8월부터 선제적으로 금리 인상을 한 만큼 그동안 빅스텝 가능성은 적다는 입장이었다. “숙제를 틈틈이 미리 해둔 만큼 마감일이 다가와도 초조함이 없다”(홍경식 한은 통화정책국장)는 의미였다.

그런데 치솟는 물가와 역전이 임박한 미국과의 금리 차는 한은 또한 금리 인상의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게 할 수 있다. 제롬 파월 Fed 의장도 지난 5월만 하더라도 “0.75%포인트 인상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했지만, 한 달 사이 입장을 바꿨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이날 거금회의 후 한은의 빅스텝 가능성에 대해 “다음 금융통화위원회 때까지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다. 시장 반응 등을 보고 결정할 문제”고 말했다.

다음 달 한·미 금리 역전은 기정사실이 됐다. 한은이 다음 달 13일 열리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연 1.75→2.0%)하더라도, Fed가 다음 달 26~27일(현지시간) FOMC 회의에서 금리를 0.5%포인트 인상(연 1.75→2.25%)하더라도 금리는 역전된다. 파월은 이미 기자간담회에서 7월 회의에서 0.5%포인트 또는 0.75%포인트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한은이 베이비스텝만 밟을 경우 한·미 간 금리 역전 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Fed는 이날 공개한 점도표에서 연말 기준금리 수준을 연 3.4%로 예고했다. 글로벌투자은행 골드만삭스(IB)는 “이번 점도표 의미는 7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린 뒤 9월 0.5%포인트, 11월 0.25%포인트, 12월 0.25%포인트 인상한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은이 남은 4번의 금통위 회의(7월·8월·10월·11월)에서 매번 베이비스텝을 밟아 끌어올릴 수 있는 기준금리 수준은 연 2.75%다. 이렇게 되면 양국 금리 차는 0.75%포인트까지 벌어진다.

한·미 금리가 역전되면 자본 유출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더 높은 금리를 좇아 자본이 빠져나가고 그에 따른 달러 강세 심화로 원화가치가 하락(환율 상승)하며 다시 자본 유출을 부추길 수 있다.

한은은 금리 역전이 발생하더라도 대규모 자본유출 가능성은 적다는 입장이다. 박종석 한은 부총재보는 지난 9일 “소비 회복세와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는 등 우리나라 펀더멘탈을 고려했을 때 급격한 자본 유출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실제 한은이 금리목표제를 도입한 1999년 5월 이후 한미 금리 역전은 1999년 6월~2001년 3월, 2005년 8월~2007년 8월, 2018년 3월~2020년 2월 등 3차례 발생했다. LG경영연구원 보고서와 한국은행의 통계 등에 따르면 해당 기간 대규모 자금 유출은 나타나지 않았다.

가장 최근의 금리 역전 기간(2018년 3월~2020년 2월)에는 외국인들이 주식시장에서 53억7000만 달러의 자금을 빼갔지만, 채권 시장에는 219억1000만 달러의 외국인 자금이 들어와 총 165억4000만 달러의 자금이 유입됐다.

다만 이번에는 안심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인 자본 유출에 있어 금리 차이 외에 환율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최근 원화가치 하락(환율 상승)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라며 “무역수지 적자와 한국 경제의 회복세 등을 고려했을 때 시간이 갈수록 자본 유출의 우려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잡히지 않는 물가도 빅스텝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국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지난 1월 3.6%(전년동월대비)에서 지난 5월 5.4%로 뛰었다. 일반인들의 기대인플레이션율 역시 지난 1월 2.6%에서 지난 5월 3.3%로 점차 오르고 있다.

메리츠증권 윤여삼 연구원은 “경기를 희생해서라도 물가 불안 확산의 고리를 끊는 것이 우선으로 판단된다면 한은 역시 빅스텝은 고려할 수 있는 카드”라며 “오는 7월 빅스텝을 단행하면 연말 금리는 3%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부풀어 오른 가계부채와 경기 둔화 가능성이다. 빅스텝을 밟을 경우 충격이 예상보다 클 수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은 대외신인도가 높고 금리 수준도 유럽이나 일본 등과 비교했을 때 높은 편인 만큼 한미 금리역전에도 자본유출이 크지 않을 수 있다”며 “반면 가계 부채가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웃도는 만큼, 미국과의 금리 차이에 중점을 두고 금리를 급격히 올렸을 때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안효성(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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