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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 장물 내놓으란 격" 법사위 전쟁, 1년 전 합의문 따져봤다 [팩트체크]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4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 강행처리를 규탄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양당은 최근 후반기 법사위원장을 누가 맡느냐를 두고 대치 중이다. 김상선 기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자리가 입법부 마비 사태의 원흉으로 떠올랐다. 1년 전 합의 청구서를 꺼내 든 국민의힘은 하반기에 법사위원장을 맡겠다며 벼르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원점에서 재협상하자고 버티고 있다.

여야는 2020년 4월 총선 직후, 지난해 7월 원 구성 협상 등 해마다 법사위원장을 누가 맡느냐를 두고 대립했다. 지난해에는 윤호중 의원의 당 원내대표 선출로 공석이 된 법사위원장 자리를 놓고 싸우다가, 하반기부터 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을 맡는 조건으로 원 구성 협상을 마무리했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고, 민주당은 합의를 뒤집었다. “법적 주체도 아닌 전직 원내대표간 합의”이고 “법사위 기능 정상화가 (합의) 전제였는데 현재까지 지켜지고 있지 않다”(박홍근 원내대표)는 이유였다. 대신 민주당은 ‘양보 조건’이라며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를 협상 카드로 꺼내 들었다. 체계·자구 심사란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이 다른 법과 충돌하지 않는지, 법안 문구가 적절한지 등을 심사하는 기능이다. 졸속으로 올라온 법안을 심사하는 일종의 ‘품질 보증’ 기능도 있지만, 심사를 명목으로 특정 법안을 본회의 테이블에 올라가지 못하게 뭉갤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민주당이 돌연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를 꺼내 들자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이 눈 하나 깜짝 않고 말을 뒤집는다”고 펄쩍 뛰었다. 민주당이 지난해 여야 합의 때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해 합의는 체계·자구심사권 ‘폐지’ 아닌 ‘제한’
2021년 7월 23일 박병석 당시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등 양당 원내대표단이 23일 상임위원장 배분 등에 합의 후 합의문을 읽고 있다. 임현동 기자

2021년 7월 23일 국회의장실에는 박병석 당시 국회의장과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모였다. 당시 5차 재난지원금 예산이 담긴 추가경정예산 확정과 상임위원장 배분을 두고 여야가 기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여야 합의가 극적으로 타결됐다. 2020년 총선 이후 민주당이 독식했던 상임위원장 자리를 국민의힘 7곳, 민주당이 11곳을 맡기로 결정했다. 특히 법사위원장은 민주당이 다시 가져가되, 2022년 대선 이후 하반기부터는 국민의힘이 맡기로 했다.

특히 양측은 박 의장의 중재안에 따라 법사위의 기능을 일부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법사위의 기능을 체계·자구 심사로만 한정하고, 본회의로 부의될 때까지 걸리는 심사 기간을 기존 120일에서 60일로 단축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윤 원내대표는 “상원 노릇을 하던 법사위가 정상적인 상임위가 될 수 있도록 단초를 열었다”고 평가했다. 두 원내대표는 합의안에 서명한 뒤 사진도 촬영했다.

‘법사위 기능 제한, 심사 단축’ 법안도 공포
2021년 8월 윤호중 국회 운영위원장 명의로 발의된 국회법 개정안. 법사위의 권한 범위를 체계 자구 심사로 한정하고, 심사 기간을 기존 120일에서 60일로 단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안정보시스템 의안 원문 캡쳐]

기념사진만 찍은 게 아니었다. 두 달 뒤인 그해 9월 14일 문재인 정부 국무회의에서 관련 법안이 공포됐다. 양당 원내수석인 한병도 민주당 의원,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통합·조정해 윤호중 당시 국회 운영위원장이 발의한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법안에 따르면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는 심사로 신속성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다”며 “법 개정으로 합리적 의사 진행을 통한 효율적 국회 운영을 보장하려는 것”이라고 개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국회법 86조 3항에는 심사 기간을 60일로 하되, 이의 제기 시 상임위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을 거쳐 본회의에 부의하도록 하는 내용이 삽입됐다. 같은 조 5항에는 법사위는 ‘체계·자구 심사 범위를 넘어서면 안 된다’는 내용도 적시됐다. 즉 당시 여야 합의는 체계·자구 심사권을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체계·자구 심사를 넘는 권한을 제한하자는 취지였다.

법사위의 권한 범위를 체계 자구 심사로 한정하고, 심사 기간을 기존 120일에서 60일로 단축하는 국회법 개정안은 2021년 9월 14일 문재인 정부 국무회의에서 공포됐다. [관보 캡쳐]

합의 당사자였던 김기현 의원은 15일 통화에서 “도둑이 장물 내놓으라고 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김 의원은 “법사위의 기능 정상화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말로 법사위원장을 못 주겠다는 것은 적반하장”이라며 “법사위를 비정상화시킨 주체는 국민의힘이 아니라, 위장 탈당 등 온갖 꼼수로 국회법을 무력화시킨 민주당”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돌연 체계·자구 심사 폐지를 꺼낸 것을 두고 “거대여당 시절 민주당을 휘감았던 강경파 논리가 부활했다”(국민의힘 3선 의원)는 평가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2020년 주호영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사찰 잠행’ 사태도 재소환되고 있다.

2020년 6월 24일 강원 고성군 화암사에 사흘째 머물던 주호영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4일 오전 경내에서 웅산주지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당시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상임위 독식 움직임에 반발해 전국 사찰을 돌며 잠행했다. 연합뉴스

2020년 총선에서 대승해 180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원 구성 협상 과정에서 법사위원장직을 통합당에 넘기되 체계·자구심사권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를 거부했고, 항의의 표시로 전국 사찰을 돌며 잠행했다. 당시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민주당에 상임위원장을 다 줘도 된다. 거대 여당의 폭주만 부각될 뿐”이라고 주 원내대표를 독려했고, 민주당은 그해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했다.

민주당은 법사위원장을 줄 수 없다는 반대 논리로 지난 4월 권성동 원내대표가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 중재안을 뒤집은 것을 거론하기도 한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14일 “먼저 약속을 어긴 여당이 야당만 약속을 지키라는 건 독선과 오만”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은 국민의힘 입장 변화와 관계없이 검수완박 법안을 국회에서 완력으로 통과시켰다. 지금과 상황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손국희(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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